'헬조선'이란 말이 이 사회를 자각하는 일반적인 비유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만큼 세상에 대한 조소와 냉소가 가득하다. 부조리를 맞딱드리기보다 피하는 것이다. 진지하게 대하는 대신 비웃고 마는 것이다. 플레이어가 아니라 관전자처럼.

하지만 아이가 생기면 상황이 달라진다. 비웃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동안은 비웃음으로써 피해버리면 그만이었지만, 내 아이는 그럴 수 없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내 아이도 홀로 부조리의 소굴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비웃음보다는 식은땀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내 아이마저 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는 마당에 언제까지 관전자로서 지켜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야구장에서는 이종범이 이정후가 야구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이곳은 야구장이 아니다. 이곳은 현실이다. 지옥으로 비유되는 부조리의 세상인 것이다.

더 이상 비웃을 수 없다면 맞딱드려야 한다. 부조리를 없애야 한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내 아이를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할 수 있는 건 길어야 십수 년뿐이다. 그 사이 세상을 바꾼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부조리를 없애는 건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부모는 세월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나무를 심는 일 따위는 이들에게 전혀 의미 없는 일이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를 위해 부조리를 없애기보다 부조리에 편승하는 쪽을 주로 택한다. 플레이어가 될 아이에게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주기보다 반칙을 가르쳐주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너도 나도 다른 부모들 역시 반칙을 전수하고 있는 와중에 내 아이만 정직하게 세상에 밀어넣을 수는 없다.

헬조선은 세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부조리를 비웃는 관전자, 부조리를 답습하는 부모, 부조리를 배워가는 아이. 그렇게 관전자는 부모가 되고 부모는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다시 관전자가 되는 것이다. 탈조선을 입에 달고 살지만 사실 이 사회를 탈출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진정한 의미에서 헬조선을 탈출하는 길은 이 부조리의 굴레를 멈추는 방법밖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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