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주의’ ‘법치국가’...... 법조인 출신 대통령 시절에도 듣지 못했던 말들을 올해 들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것 같다. 여름의 촛불집회는 말할 것도 없고 갖가지 시위, 노동운동 할 것 없이 무슨 일만 벌어진다하면 항상 나왔던 이야기가 ‘법과 질서’였다. 우리 사회가 무슨 혼란정국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마냥 갑자기 법에 의한 질서가 최우선의 가치로 여겨지는 국가가 되었다.

물론 우리나라는 법치국가이다. 국가나 개인의 모든 권리나 의무, 행동 등은 기본적으로 법에 의해 규정된다. 그만큼 법을 존중하는 자세도 굉장히 중요하다. 법을 최우선의 판단 가치로 존중한다는 것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다. “법치주의는 법을 잘 지키라는 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자가 헌법과 법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라는 의미도 중요합니다. 이건 상식이거든요.” 지난 ‘100분토론‘에서 유시민 전 장관이 했던 말이다. 그의 말대로 법치주의에는 국민들이 법을 잘 따르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권력자 또한 법에 의거하여 권력을 행사하라는 의미 또한 담겨있다. 하지만 현 정권은 겉으로 법치주의를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헌법 등을 무시한 채 임기가 보장되어있는 기관장의 직위를 박탈하는 등의 어리석음을 보여주고야 말았다. 불법적인 시위나 파업 등의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법치주의를 운운하던 정권 스스로가 과연 그만큼 법치주의의 원리를 정확히 따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뿐이다.

법의 ‘내용’ 자체도 이런 논의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국가의 법이라 함은 어떤 특정사회의 절대적 이성과도 같은 것이다. 각 국가마다 자신들의 고유한 역사나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각기 조금씩은 다른 법의 내용을 갖고 있는 것처럼, 법이란 모름지기 한 시대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향하고 있는 방향을 담고 있는 것이다.

법 중에서도 가장 핵심인 헌법도 마찬가지다. 헌법이란 자고로 그 시대 그 사회의 가장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가치, 정신을 담고 있는 법이라 할 수 있다. 서구사회의 경우 헌법은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때론 피를 보면서- 조금씩 때로는 혁명으로 인해 그 내용을 바꾸면서 지금의 내용까지 오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했다. ‘제헌절’이란 국경일처럼 1948년 7월 17일, 헌법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주어졌다. 우리나라에서 헌법은 절대 오랜 기간 끊임없는 국민들의 상호작용과 토론, 역사적 경험 등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헌법 또는 법질서 그 자체에 대해 절대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법은 그 어떤 가치보다 존중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단지, 현 정권과 보수적 지식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처럼 헌법이 절대불변의 성질의 것은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무려 60여 년 전 ‘일제히,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헌법의 정신은 현 사회의 가치와 유리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제한적이나마 시민들의 힘으로 개헌을 이루어냈던 87년의 경험처럼 헌법이나 법질서는 시대의 흐름이나 이성에 따라 바뀔 수 있다. 단, 이미 제도적 민주화를 이루어낸 이상, 그 과정 역시 철저히 법의 질서에 기초하여 진행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순간 모든 것을 뒤집어엎자는 급진적 사고는 경계해야 함이 마땅하다. 다만, 지금의 현 제도권이 마치 법질서와 헌법을 절대불변의 최고의 가치인양 제멋대로 이용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보이지 않는 의도를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법에 대해 능동적인 자세를 갖는 것 또한 중요하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법치주의, 법치국가란 말들을 내뱉는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법치주의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