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판단과 정치적 판단은 전혀 다른 문제다. 법에서는 위반인지 아닌지를 따진다. 법적 판단의 기준은 bad or not이다. 반면 정치에서는 무엇이 더 중요한 일인지를 따진다. 정치적 판단의 기준은 good or not이다.
정치는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일이다. 정치인은 여러 선택지 중 무엇이 더 중요하고 급한 일인지 판단해야 한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있어 bad or not은 의미 없는 기준이다.
bad or not에서는 현상유지가 최선이다. 진보의 여지가 없다. 기존의 룰을 잘 지켰는지만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인은 not bad가 아니라 good을 제시하고 화두를 던지는 사람이다. 정치인에게 현상유지는 목표가 될 수 없다.
정치인의 책임은 bad or not이 아니라 good or not의 영역에 있다. 정치인은 법을 위반했는지가 아니라 어떤 가치 판단을 했는지에 따라 평가받아야 한다. 법적 판단과 정치적 판단이 다른 것처럼 법적책임과 정치적 책임도 다르다.
그럼에도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법조인들이 요직에 있어서 그런지 정치적 책임보다 법적 책임이 과잉된 상태다. 하지만 정치인이 정치적 책임보다 법적 책임을 이야기하는 건 책임 회피에 가깝다. 정치인의 입에서 사법부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말이 나온다는 건 스스로 정치인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음을 자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