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금은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영상물등급제가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영상물로부터 미성년자를 보호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19세 이상, 성인은 보호 받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성인은 영상물을 문제없이 수용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갖췄다고 보기 때문이다.

게임에서는 상대를 칼로 찌르고 총을 쏜다. 그 중에는 너무 리얼하거나 잔혹해서 이용자를 19세 이상으로 제한하기도 한다. 간혹 이런 게임을 하다가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사람을 향해 총을 쏘거나 칼을 찌르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게임을 못하게 하는 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게임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리얼돌과 여성을 구분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면, 그것도 리얼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로 봐야 한다. 일종의 일탈인 셈이다. 리얼돌이 왜곡된 성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다는 게 리얼돌을 반대하는 대표적 논리이지만, 사실 대중적 장르인 영화나 소설에서도 강간, 성매매 같은 소재들은 비일비재하고, 포르노에서는 대놓고 성을 상품화하고 있다. 리얼돌은 여성을 본 딴 정지된 인형이지만, 포르노에서는 진짜 여성들이 나와서 열연을 펼치는 게 차이일 뿐이다.

정상적인 성인이라면 영화나 포르노 때문에 왜곡된 성 인식을 갖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리얼돌도 개인적인 성생활에 활용되는 내밀한 섹스토이일 뿐이다. 그것을 사용한다고 해서 장난감과 실제 여성을 혼동할 이는 거의 없다. 왜곡된 성 인식이란 야동이나 섹스토이를 규제한다고 잡을 수 있는 어떤 게 아니다. 그것은 가부장제의 모순이나 젠더 문제처럼 사회적인 요인이나 가정폭력 같은 개인사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페티시즘도 비인격적 사물에 성적 욕망을 물화시킨다는 점에서 리얼돌과 비교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스타킹, 교복, 구두 같은 것들인데, 페티시적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이 사물들을 섹스토이로 활용하거나 상대에게 착용시켜서 관계를 갖기도 한다. 그런데 리얼돌에 반대하는 논리라면 페티시즘은 리얼돌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이런 사물들은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착용하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거리에만 나가도 스타킹과 구두를 신은 여성은 쉽게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페티시즘 관련 성범죄가 폭증하는 건 아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은밀한 성생활과 일상생활 정도는 구분할 줄 알기 때문이다.

리얼돌이 수치심을 유발한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리얼돌이 눈앞에 있다면 남성들마저 고개를 돌릴 것이다. 민망하니까. 하지만 수치심이나 민망함 때문에 리얼돌을 없애야 할 당위가 생기는 건 아니다. 음란물도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다. 하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음란물을 보지 않는 이상 음란물 자체를 금지하진 않는다. 리얼돌도 마찬가지다. 존재 자체는 수치심을 줄 수 있지만, 그것을 사무실이나 야외에서 대놓고 사용하지 않는 이상 그 수치심은 일반론적인 의미만을 가질 뿐이다.

결국 리얼돌을 둘러싼 논란은 혐오의 문제로 귀결될 뿐이다. 일본에서는 인형과 결혼한 남성의 이야기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여성과 똑같이 생긴 인형을 아내로 대하는 남성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혐오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서 인형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누구에게도 그럴 권리는 없었으니까. 리얼돌도 다를 바 없다. 여성의 입장에서는 인체와 닮은 섹스토이를 만들어 사용하는 남성을 보며 혐오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혐오감만으로는 타인을 제재할 수 없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라면 개인의 자유는 불가침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리얼돌을 반대하는 주장은 성을 부끄럽고 더러운 것으로 인식하는 전통적 성관념에 빚지고 있다. 수음을 하면 타락한다는 명제는 종교 교리에서나 찾을 수 있는 말이다. 실제로 수음을 한다고 타락하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리얼돌을 사용한다고 해서 타락하는 것도 죄를 짓는 것도 아니다. 아이러니한 건 리얼돌을 반대하는 건 주로 페미니즘 쪽이라는 사실이다. 페미니즘이야말로 이런 전통적 성관념의 대척점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얼돌 반대를 위해서 상대 진영의 논리를 차용하고 있는 셈이다. 애초에 이들의 주장에는 논리라는 게 없었고 혐오만 있었기 때문이다.

리얼돌이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성범죄자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왜곡된 성 인식을 이유로 리얼돌 자체를 금지시키는 건 멀쩡한 남성들을 전부 잠재적 성범죄자로 간주하는 셈이다. 미성년자에게 하듯이 성인 남성들도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성갈등만 조장할 뿐 생산적인 논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리얼돌을 두고는 더 근본적인 논쟁이 있어야 한다. 스필버그의 영화 A.I.에서는 주 드로가 여성들에게 성적 만족을 제공하는 섹스로봇으로 등장한다. 당시에도 이 설정을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는데, 그때의 논의가 아직까지도 유효할 수밖에 없는 건 리얼돌이 머지 않아 섹스로봇으로 진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혐오감에 갇혀 있을 때가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할 때다. 리얼돌이 던져 주는 난해하고 철학적인 물음들, 그러니까 성에 대한 정의, 인간과 섹스의 관계 등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