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인 이론을 따라 인류사를 세 단계로 나눠본다면, 그러니까 농업·산업·정보혁명으로 구분한다면, 사회 변화의 크기도 시간순을 따랐을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빼면 산업화 시대를 살던 인간과 정보화 시대를 사는 인간의 생활상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농업혁명 이전에 수렵채집을 하던 인간과 작물을 재배하던 인간의 차이는 그야말로 동물과 인간의 그것만큼이나 다르기 때문이다.

각 단계를 거치며 인간은 생산성을 얻었지만 그만큼 잃는 것도 많았다. 유발 하라리는 농업혁명을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말한다. 식량생산의 총량은 늘어났을지 몰라도 농부 개인의 삶은 그 이전의 시대보다 열악해졌기 때문이다. 조직적으로 작물을 경작하면서 인류는 수렵채집인이 누렸던 자유롭고 초연한 삶을 잃게 된 것이다.

산업혁명도 마찬가지였다. 인류는 산업혁명으로 잃게 된 것을 인간성이라고 정의했다. 그만큼 인간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상실했다는 이야기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시도하는 것도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하는 작업이 주가 되었다. 그만큼 인류에게 산업화란 변화는 감당하기 힘든 혼란과 고통이었다. 뒤르켐이 말한 '아노미'의 개념처럼 무규범의 상태, 그러니까 기존의 모든 질서와 개념이 ‘무’의 상태로 초기화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컴퓨터의 리셋 버튼을 누른 것처럼.

결국 ‘세상이 미쳐돌아간다’는 말은 신조어가 아니란 말이다. 인공지능혁명, 나노혁명, 바이오혁명 등 현 시대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돌아다니는 것처럼 우리가 변화나 전환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다만 중요한 건 우리가 변화를 겪는 첫 세대는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에게 세상은 늘 미쳐 돌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유영철, 조두순, 고유정, 온갖 묻지마 범죄들, 최근에는 정인이 사건까지. 일련의 패륜 (혹은 불가해한) 범죄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이 미쳐가기 시작했다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최근에 국한되어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연쇄살인, 패륜 같은 범죄들은 오랜 역사의 기록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사 전체로 볼 때는 전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현재 벌어지는 사건들과 차이가 있다면 단지 이슈화 되지 않았다는 점뿐이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생긴 건 비교적 최근이었으니까.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거나 세상이 말세라는 사고방식은 종말론적 세계관에 불과하다. 세계가 점점 카오스적으로 타락해서 어느 순간 종국을 맞이한다는 건 사이비 종교의 단골 레퍼토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특별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건 사실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이야기다. 이미 수백수천 년 전부터 사이비 교주가 중생을 향해 속삭이던 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세대적인 선민의식을 낳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말처럼, 과거의 세대는 옳았지만 현 세대의 과오 때문에 세상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세대적 선민의식에 매몰된 사람들이 사회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우는지는 뉴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흔히 ‘꼰대’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사람들은 서울광장에서 태극기를 흔들기도 하고 청와대에서 학생 시절의 혈기만 앞세워 반쪽자리 정책을 입안하기도 하니까.

세상은 늘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할 거다. 아마 세상이 변할 것이라는 사실 빼고는 모든 게 변할 수도 있다. 세상의 변화가 주는 충격의 정도는 사람마다 그리고 세대마다 다를 수 있지만, 그 충격을 본인 또는 본인 세대만이 겪는 혼란으로 오인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특별한 시대인 것도 아니고 우리가 특별한 세대인 것도 아니다. 요즘 들어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세상은 원래 미쳐 돌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세상이 미친 게 아니라 세상은 원래 이 모습이었는데 우리는 이제야 그 사실을 발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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