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리 플래닛(Lonely Planet), 전 세계 배낭 여행자들에게 가장 있기 있는 가이드북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17개 언어로 발행되며, 여행 분야에서 손꼽히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이런 론리 플래닛이 새해들어 가장 가고 싶지 않은 도시를 조사하고 평가한 결과, 공교롭게도 서울이 최악의 도시 톱3에 선정되었다. 그 자세한 선정 과정은 잘 모르겠지만, 이에 대한 외신들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소식은 서울시에게도 전해졌고, 서울시는 평가가 잘못되었다며 불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서울시는 지난 수 년간 시의 브랜드 가치 높이기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한 터였다. 최근 어딜 가나 볼 수 있던 문구가 'Hi, Seoul'이었지 않았는가.(그나마 'Hi, Seoul'이란 표현도 잘못된 영어 표현으로 국제적 망신을 당했었다. 원래 제대로된 영어식 표현은 'Seoul, Hi'이어야 한단다)
"형편없이 반복적으로 뻗은 도로들과 소련식의 콘크리트 아파트 건물들, 그곳은 심각한 환경오염 속에 마음도 없고 영혼도 없다. 숨막힐 정도로 특징이 없는 이곳이 사람들을 알코올 중독자로 몰아가고 있다."
아쉽게도 대부분 맞는 말이다. 반박의 여지가 없다. 삭막한 아파트들, 더러운 공기와 물, 이외에는 어떠한 특색도 찾아볼 수 없는 무색무취의 도시 서울이다. 서울시가 서울이란 브랜드를 알리는데 아무리 많은 투자를 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정작 그 브랜드 안의 내용은 별로 볼 게 없는데 말이다.
600년 도읍지를 자랑하는 서울, 그 중심을 흐르던 청계천에는 조선시대 만들어진 많은 교량과 수문이 자리잡고 있었다. 역사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상당한 가치를 갖고 있던 유적들이었다. 실제로 청계천 공사가 시작될 무렵, 학계나 언론들을 중심으로 청계천의 옛 교량, 수로, 수문 등의 문화재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증폭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시장의 임기 시절, 하루 빨리 복개 공사를 완공해 시민들에게 청계천을 보여주고 싶었던 서울시는 이런 유적들에 대한 조사와 보존 작업을 제대로 진행시키지 않았다. 때문에 광통교나 오간수문의 석재 유적들이 아무렇게나 잘려나가고 버려졌다. 또 이 때 발굴되었던 많은 석재 유물들이 옮기기 좋게 잘려서 지금 서울의 한 하수종말처리장에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건 더 아는 사람이 없는 사실이겠지만,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문화재 훼손 혐의로 학계와 시민단체들에게 고발당하기도 했다.
청계천은 생태 복원에도 실패했다. 사실 청계천 복개 사업은 애초부터 친환경적이지 못했다. 콘크리트와 도로로 덮여있던 청계천을 말 그대로 '복개'만 했을 뿐이다. 뚜껑만 열어재낀 것이다.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여러 가지 장식물들을 설치한 덕분에 외관상으로는 단정해 보일지 몰라도 정작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지금 이 시간에도 썩어가고 있다. 청계천 수질 비용 관리에만 매년 100억에 가까운 비용이 들고 있다. 청계'천'으로 불릴 것이 아니라 청계'수로'라고 불려야 할 것이다. 지금의 청계천은 땅과 숨 쉬는 자연 하천이라기보다는 콘크리트로 쳐발라 만든 인공수로에 가깝다. 하천변도 흙과 수풀보다는 꽉 막혀있는 돌벽과 콘크리트 계단으로 되어있다. 대외적으로는 친환경 복원이라 했지만 겉으로 보기에도 흙이나 자연생물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인위적인 광경은 삭막하기까지 하다. 대체 어디가 친환경이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 마디로 청계천은 문화재 복원에도 생태 복원에도 실패했다. 도심 속 소중한 공간이 썩은 물로 오염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여행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도시, 체코 프라하. 뭐니뭐니해도 프라하의 명물은 '카를교'이다. 카를교에는 하루에도 수만 명의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이 많은 사람들이 왜 카를교를 찾을까? 물론 오랜 역사나 오래된 건축물로서의 아름다움도 매력이겠지만, 사실 실제로 카를교에 가보면 별거 없다. 너무 오래된 탓에 거뭇거뭇하고 생긴 것도 다른 다리들에 비해 별로 다를 바가 없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세체니 다리'도 유명한 다리다. 역시 많은 관광객이 몰려온다. 하지만 크게 아름답거나 하진 않다. 철근으로 만들어진 아치 모양은 서울의 한강대교와 다르지 않다. 아니, 진짜 똑같이 생겼다. 실제로는 그 자체로 큰 감흥을 주지 못하는 카를교와 세체니 다리. 근데 왜 그곳에 사람이 몰리는 걸까? 답은 하나다.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럼 누가 유명하게 만든 걸까? 바로 프라하 사람들과 부다페스트 사람들이 그렇게 만든 거다. 자신들의 역사적인 건축물에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애정을 가진 덕분이다.
그런데 왜, 서울시는 카를교나 세체니 다리 같은 명소를 만들지 못하고 있을까? 청계천의 광교나 광통교, 수표교 등등 유서 깊은 문화재들은 마음대로 깨부수고 내다버리면서 말이다. 어디 청계천만 망쳐놓았나, 인사동도 피맛골도 곧 불도저로 깔아뭉갤 판이다. 서울시가 그토록 자랑스러워 하는 콘크리트 고층 빌딩을 지으려고 말이다. 서울시는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 것 같다. 서울이란 브랜드도 중요하지만 정작 그 브랜드를 이루어가고 있는 속 내용은 텅 비어 있는 셈이다. 그야말로 속 빈 강정이 따로 없다. 파리에는 상젤리제 거리, 뉴욕의 브로드웨이, 부다페스트의 세체니 다리, 많은 사람들이 찾는 유명한 도시들은 저마다의 확실한 상징물을 갖고 있지만 서울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게 막대한 비용 들여서 해외 방송에 광고 내고 브랜드 가치 높인 덕분에 결국 듣는 소리가 '특징도 영혼도 없는 도시'다. 더 이상 '론리 플래닛'의 조사가 잘못되었다느니 별로 영향력 없는 곳이었느니 하는 핑계만 늘어놓아선 안 된다. 왜 그런 망신을 당해야 했는지 진지하게 되새여봐야 한다.
앞선 포스트에서도 계속 했던 말이지만 서울시에게는 어떠한 철학도 고민도 없는 것 같다. 그저 일회적으로 벌어지는, 상업주의에 찌든 이벤트들 뿐이다. 역사도 없다. 우리가 자부심을 가질만 한 소중한 자산들은 뒷전으로 한 채 매번 요상한 일에만 힘을 쏟고 있다. 일관성도 없다. 언제는 녹색 도시였다가 또 갑자기 디자인 도시란다. 모토고 뭐고 뒤죽박죽 제멋대로 섞여있을 뿐이다. 그러니 아무런 특색도 없는 회색의 도시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고, 해외로부터 최악의 도시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서울이란 도시, 얼마나 재밌고 이야기가 많은 곳인가. 이렇게 오래된 역사와 유적을 갖고 있는 도시가, 이렇게 아름다운 야경을 가진 도시가, 이렇게 다양한 먹거리가 있는 도시가, 이렇게 늦은 밤까지 술과 유흥을 즐길 줄 아는 도시가, 이렇게 네온사인이 화려한 도시가, 이렇게 멋있고 예쁜 젊은이들이 돌아다니는 도시가, 이렇게 치안과 질서가 좋은 도시가, 이렇게 역동적인 도시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서울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멋과 맛을 따지자면 정말 끝이 없다. 이런 서울을 알리고 가꿔나가는 건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바로 우리다. 우리가 진정으로 서울만의 멋과 역사를 즐기고 아낄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