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공’의 경계는 어떤 지점일까? 우선 ‘자연’과 ‘인공’ 두 가지의 의미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자연의 개념 정의는 상대적으로 쉽다.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본연 그대로의 사물이나 상태를 자연이라 한다. 그렇다면 인공은 무슨 의미일까? 사전적으로는 인간이 가공하는 것, 다시 말해 사람에 의해 모양이나 형질이 바뀌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실상 이 두 개념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일반 도시 가정의 가스레인지나 시골 주택의 오래된 아궁이나 모두 엄밀히 따지자면 사람의 손길을 탄 똑같은 ‘인공물’이지만 사람들은 아궁이에 나무를 태우고 밥 지어 먹는 것을 ‘자연적’이라 말한다. 때로는 건강에 좋고 나쁨을 기준으로 자연과 인공을 구분하기도 하고, 때로는 산업화나 근대화를 기준으로 두 개념을 구분하기도 한다.
원론적으로 접근하면 더 모호하다. 자연 상태와 문명을 가르는 기준인 문화라는 말은 ‘재배하다’ 혹은 ‘경작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culture에 근거한다. 이에 따르면 밭을 가꾸고 농작물을 재배하는 행위도 ‘자연적’인 행위라기보다는 인공적인 행위에 해당한다. 텃밭을 가꿔 직접 무친 나물 요리도 사실 자연의 음식이라기보다는 철저히 문명의 산물이란 것이다. 따지고 보면 culture란 의미처럼 인간이 만든 가공물들도 모두 자연의 것들을 축출하거나 혼합하는 등 변형하여 만든 것들이기에 자연에는 없는 인공물이란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다. 플라스틱도 자연에서 나온 원유 등을 합성하고 가공하여 만든 것 뿐이지, 플라스틱이란 물질이 어느 순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서론이 길었지만) 조미료도 마찬가지 아닐까? MSG(monosodium glutamate의 약칭)라 하여 최근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잡은 인공조미료도 사실 사탕수수 같은 천연의 재료에서 축출된 성분들로 이루어져 있다. 인공조미료의 주성분은 글루타민산은 소고기, 다시다, 멸치, 토마토, 치즈, 콩 등 일상의 식품은 물론 심지어 모유에도 포함되어 있는 성분이다. 단지 인공조미료는 천연 재료에서 글루타민산만을 축출하는 일련의 화학적 공정 과정을 거친다는 것 뿐이다. 물론 여기서 말한 ‘화학적 공정 과정’이란 말에 어감상 두려움을 갖기 쉽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 과정은 염전에서 소금을 축출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과정 자체의 유해성은 없다고 한다(글쓴이는 공학도가 아니므로 자세한 공정 과정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부작용 경험 등을 근거로 인공조미료에 대한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논의들이 진행 중인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비록 1987년 세계보건기구가 MSG 1일 섭취량 제한을 해제하고 1995년 미국실험생물학회연합의 정밀한 임상 실험 결과 MSG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긴 하지만 유명한 ‘중국음식 증후군’ 논란이라든가 개개인이 느끼게 되는 생리적인 반응 경험 등은 아직까지도 MSG의 안전성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걷을 수 없게 만든다. 더구나 과거 방사선 노출의 유해성을 몰랐던 것처럼 미래 과학 수준의 향상으로 MSG의 유해함이 새롭게 증명되는 일말의 가능성도 남아있다. 하지만 이 같은 논란의 여지는 말 그대로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나 가능성일 뿐, 어찌됐건 오늘날의 과학적 연구들에서는 MSG의 유해성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사람들은 MSG에 대해 막연한 공포감을 갖고 있지만 이는 대부분 MSG가 인체에 유해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는 매스컴의 영향이 크다. 시청자나 독자의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MSG의 유해성에 대해 소란스럽게 떠들며 공포심과 경각심을 조성하다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의 관심은 MSG 자체의 유해성 논란에만 함몰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MSG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점은 따로 있다. MSG 자체의 유해성보다는 이를 둘러싼 식습관이나 일률화된 입맛, 요식업자들의 편법 등에 대해서 고민해볼 때가 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MSG의 향미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2010년 일본에서 발표된 통계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1인 1일 MSG 추정 섭취량은 약 2g 정도다. 반면 유럽인들의 추정 섭취량은 0.2g 정도, 북미인들은 0.6g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럽이나 북미에 비해 많게는 10배에 이르는 MSG를 섭취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고작 2g 가지고 무슨 호들갑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MSG 2g을 섭취하기 위해서는 천연 상태의 멸치를 무려 17kg이나 먹어야 한다. 다시 말해 멸치 십수 개의 박스를 하루만에 전부 먹는 것과 마찬가지다.
MSG를 많이 먹게 되면 자연스럽게 소듐(나트륨) 또한 많이 섭취하게 된다. MSG는 글루타민산과 소듐이 결합되어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권장량을 넘어선 과도한 소듐 섭취가 우리 몸에 얼마나 나쁜 해악을 끼치는 지는 널리 알려져 있다. 각종 성인병은 물론이며 혈압이나 심장병, 위암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이나 찌개 같은 국물을 즐기는 식습관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나물을 간하기 위해서는 소량의 MSG로도 충분하지만 냄비 한가득 들어있는 찌개의 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MSG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소듐의 섭취량 또한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한 번 MSG에 길들여진 입맛은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 맵고 짜고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지면 덜 자극적인 음식들은 싱겁고 맛없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외식을 하고 오면 이따금 집에서 먹는 반찬들이 싱겁게 느껴지는 것도 혹은 집에서 온갖 재료를 넣고 아무리 열심히 떡볶이를 만들어도 분식점 떡볶이 맛이 나지 않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MSG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레 그 사용량은 늘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MSG의 자극적이고 강한 맛이 음식의 다른 맛들을 죽인다는 점이다. MSG는 비용도 적게 들 뿐만 아니라 매우 빠른 시간 내에 훌륭한 맛을 내게 해준다. 덕분에 요식업자들은 MSG만 있으면 굳이 질 좋고 싱싱한 재료를 쓰지 않아도 충분한 감칠맛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횟집에서 나오는 매운탕 맛이 어느 식당을 가든 똑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떤 해물을 넣든 야채를 무엇을 쓰든 일반인들이 느끼는 매운탕 맛은 결국 MSG의 맛 한 가지로 수렴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형편없는 조리 과정과 질 나쁜 재료를 MSG의 감칠맛으로 포장하는 식당들이 늘어났다. MSG의 맛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이 저렴한 가격과 감칠맛의 유혹에 넘어가 ‘불량식당’을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좋은 재료로 정성 들여 음식을 내던 식당들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문을 닫게 되었다. 결국 거리에 남게 된 것은 MSG만으로 맛을 내는 식당들 뿐. ‘먹거리 X파일’이라는 프로그램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도 이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MSG를 둘러싼 논의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냉정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 일부 매스컴이나 기업들이 조장하는 MSG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은 과학적 근거도 갖추지 못했을 뿐더러 사회적인 피로도만 높일 뿐이다. 그렇다고 MSG의 무분별한 남용을 방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과유불급이란 말처럼 과도한 MSG의 사용은 음식 재료 본연의 다양하고 기품 있는 맛들을 가려버리기 십상이다. 반면 적당한 수준에서 MSG를 사용한다면 요리 본연의 맛과 더불어 감칠맛 또한 느낄 수 있는 만족스러운 식사를 즐길 수 있을 테다. 따지고 보면 우리네 어머니들에게도, 시골 큰댁의 할머니들에게도 오랜 세월 ‘미원’은 부엌의 필수품이나 다름없었다.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은 단순히 MSG가 있냐 없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이 아득한 어머니의 손맛, 할머니의 구수한 시골 밥상을 그리워하는 것은 음식을 맛있게 먹을 식구들을 위해 직접 싱싱한 재료를 고르고 긴 시간 요리를 마다 않는 이들의 정성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