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발리즘, 우리나라 말로 식인풍습. 수만 년의 인류의 긴 역사에서 식인풍습이 사라지게 된 것은 불과 수 십 년 전의 일이다. 그만큼 식인풍습은 우리 인간들과 멀지 않았다. 오세아니아의 한 부족은 참 애틋한 식인풍습을 갖고 있었다. 그 부족에서는 죽은 가족의 몸과 영혼을 자신의 몸에 영원히 간직한다는 믿음으로 부모형제의 인육을 먹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식인풍습 치고는 상당히 애절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인육을 먹는 풍습은 야만적인 악습이라며 당장 이를 그만하라고 강제할 수 있을까. 어느 날 낯선 이방인들이 와서 우리에게 죽은 가족의 장례를 치르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사람고기'는 안 된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언제부터인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고 말하는 것들, 다시 말해 '생명존중'이나 '인간에 대한 존엄성' 같은 개념들도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것이 아닌 이상 결국에는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이로 인해 지금 이 순간에도 '보편적 가치'라는 정체 모를 믿음에 의해 너무나 '인간적'이기만 한 인간의 모습들이 '야만적'인 모습으로 폄하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고기도 안 되는 이유를 모르겠는데 하물며 개고기는 왜 안 된다는 것인지 더더욱 이유를 모르겠다. 채식주의자가 일반 사람들에게 육식을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꼴과 대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차라리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지 말라고 주장한다면 일면의 일관성이라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개고기 문화를 반대하면서 드는 일관성 없고 무지한 논리와 생각들이란 참 갈수록 가관이다.

언제부터인가 '반려견'이란 말이 많이 떠돈다. 개는 인간의 반려동물이기 때문의 도의적 차원에서 개를 잡아먹는 것은 도리가 아니란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애완견을 반려동물의 하나로 키우는 사람들도 많지만 동시에 개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 또한 많다. 조물주가 인간과 개를 반려 동물이라고 짝지어준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개를 반려동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취향을 무슨 동물에 대한 범인간적인 의무라도 되는양 타인에게까지 강요하고 있는 노릇이다. 서로 자신의 범위 내에서 자신이 반려동물이라고 생각하는 동물들을 보살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커피전문점에서 에스프레소나 라떼를 마시는 사람이 설탕이 잔뜩 들어간 다방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촌스럽다며 흉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방커피는 촌스러운 취향이니 더 이상 마시지 말라고 커피잔을 빼앗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인간으로서, 어떻게 보면 생태계에서 가장 힘 있는 동물로서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것은 너무나 흔하고 자연스러운 광경이다. 어디 먹기만 하겠는가. 기름도 얻고 가죽도 얻는다. 하지만 이를 어렸을 적 개를 잡던 광경을 목격했던 불편한 기억과 오버랩시켜 유독 개를 잡아먹는 것만이 잔인하고 몰지각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참 편협한 태도가 아닐까. 그럼 소고기집 주인 아저씨는 인간답고 개고기집 주인 아저씨는 인간답지도 않단 말인가.

'톰과 제리'라는 만화영화가 있다. 고양이 톰은 귀여운 쥐인 제리를 쫓지만 매번 제리에게 골탕을 먹기 일쑤다. 그런데 어느날 톰이 제리를 잡아먹어버렸다고 해서 우리가 톰에게 왜 그런 몹쓸 짓을 했냐고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아무리 귀엽고 깜찍한 제리라 할지라도 톰이란 고양이 앞에서는 한낱 한 마리의 쥐에 불과할 텐데 말이다. 물론 마음은 편치 못할 것이다. 그 귀여웠던 제리가 잡아먹히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내 마음이 불편하다고 톰에게 제리를 잡아먹지 말라고 강제할 수 있을까. 아니면 톰이 제리 말고 다른 쥐를 잡아먹게 내버려둔다면 마음이 편해질까? 제리와 다른 쥐들은 뭐가 다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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