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실정 때문에 김재규에 대한 평가마저 재조명되고 있다. 의도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유신을 중단시켰다는 게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내가 박정희를 좋아하지 않는 건 그가 이 사회에 결과만능주의를 심어놨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의는 아니었지만) 스스로의 최후마저 그 결과만능주의의 뒤편으로 숨어버리고 말았다. 우리가 다뤄야 했던 많은 의미들이 죽음이라는 결과에 함몰되었다. 격발의 순간 심판의 기회는 영원히 사라졌다. 김재규가 쏜 총알은 박정희에게 면죄부가 되어 박힌 셈이다.
어쩌면 지금의 박근혜를 만든 건 김재규의 총알이었을지도 모른다. 박근혜에게 상식적인 사고가 결여된 것도 그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의 시간을 갖지 못했던 탓에 (심지어 부채감을 갖고 있었던 탓에) 사람들은 박근혜로 하여금 그의 뒤를 잇게 하였고 박근혜는 당시의 사고방식, 권위의식, 관행 등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것으로 부응했다. 결국 과거로만 생각했던 일이 세대를 건너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겪어야 했던 과정, 그러니까 포승줄에 묶여 플래시 세례를 받았던 그 시간은 먼저 박정희에게 주어졌어야 했다. 지금 보면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던 것인지 알 수 있다. 반성과 평가를 빠트린 대가는 혹독한 현실이 되어 되돌아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