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우경화에는 고령화, 경기침체 같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과거사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일본은 2차대전 패전국 중 전범 처리가 가장 미흡했던 국가였다. 일본 내 무질서를 염려하여 천황이나 실질적 전범들을 처리하지 못했다는 미국측 기록이 최근 공개된 바와 같이 공산화 위협, 비용적인 문제 탓에 미군은 전범 처리에 소극적이었다. 결국 제국주의의 잔존세력은 지금의 자민당까지 명맥을 유지해왔다.
이와 대조적으로 독일에서는 냉정한 과거사 청산 작업이 있었다. 이탈리아 역시 자국민들 스스로 무솔리니를 광장에 매달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독일과 이탈리아는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고 유럽의 일원이 되었다. 특히 독일은 전범 국가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성숙한 시민 국가의 전형이 되기도 했다.
이런 사례를 통해 과거사 청산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일본에는 아직도 제국주의를 영광의 시기로 추억하는 이들이 정권을 잡고 있다. 우경화란 흐름도 특정한 이익을 위한 고도의 계산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곪고 있는 내치를 민족주의로 타개하고자 하는 자민당의 고육지계에 가깝다.
문제는 그로 인해 잃을 게 너무 많다는 점이다. 우경화는 자민당 중심의 내부적 결속이나 집권 유지에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중국에선 벌써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미국마저도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을 정도로 주변국들의 시선은 싸늘해지고 있다. 일본이란 국가 브랜드에 심대한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고령화와 중첩되면서 일본 사회 자체가 경직되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경제는 1류, 정치는 3류'라는 평가대로 일본의 정치계는 늘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듯 하다.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을 때 권력을 유지하던 집권 세력이 얼마나 민도와 유리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진 속 차가운 돌벽에 상처 같은 구멍들은 무엇일까? 바로 총알 자국이다. 지금도 저 돌벽은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처형장에 고스란히 남겨져있다. 그 비참하고 처절한 모습 그대로 말이다. 벽에 총알이 튀고 피가 얼룩지면서 총살 당했을 수감자들을 생각하면 잔인한 역사에 대한 충격과 슬픔에 가슴이 먹먹해지기 마련이다.
폴란드 정부는 총탄 자국이 새겨진 돌벽을 치우지 않았다. 오히려 애써 보존하고 전시하기까지 했다. 자신들의 조상이 독일 나치에게 당한 그 처참한 현장을 과거 모습 그대로 드러냈다. 전례가 없었던 잔인한 학살을 당한 폴란드인들에게는 너무나 아프고 치욕스러운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 수용소를 개방하였다. 입장료 한 푼 받지 않으면서 말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경주가 수학여행지의 1순위로 꼽힌다면, 유태계 학생들의 수학여행지 1순위는 바로 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다. 이곳에 가면 단체로 수용소를 둘러보는 학생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폴란드인들과 유태인들은 왜 후손들에게 이토록 처참했던 공간을 직접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서울시가 2020년까지 1400억 원을 들여 남산을 새롭게 가꾸는 '남산 르네상스 마스터플랜'을 내놓았다. '르네상스'가 어떤 뜻인지 정확히나 알고 이런 명칭을 정했던 것이었을까? 서울시는 뚝딱뚝딱 새로 건물이나 짓고 공원만 보기 좋게 가꾸면 뭐든 '르네상스'가 되는 줄 알았나보다. 일제 통감관저 터, 안기부 본관 등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곳들을 굴착기로 밀어버리려는 그들이 '르네상스'라는 말 속에 '과거의 재생'이란 의미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했을까?
우리는 심한 편식을 하고 있는 듯하다. 기억에 대한 편식말이다. 그저 자랑스러웠고 영광스러웠던 기억만을 되뇌이려 한다. 부끄러웠던 순간, 치욕스러웠던 순간들은 애써 잊으려 할 뿐이다. 결국 되풀이 되는 것은 부끄러운 역사였다. 부모들은 아이를 혼내고 다그치지만, 아이들은 혼났던 기억은 잊은 채 제 멋대로의 잘못만 반복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반만 년이라는 긴 역사를 갖고 있고, 강대국들 사이에서의 격동의 근현대를 거쳤던 우리만큼 소중한 경험들을 갖고 있는 민족이 세상에 또 있을까. 설령 그 경험과 기억이 치욕스럽고 창피하다고 한들, 그 기억을 감추고 숨기는 것보다는 드러내고 함께 의미를 다지는 것이 더욱 가치 있는 선택이 아닐까. 우리가 과거로부터 얻어낼 지혜와 경험은 너무나도 많다.
수치스러운 기억을 되뇌이는 것은 절대 과거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요, 패배의식에 젖어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영광스러웠던 과거에서 자부심을 느꼈던 것처럼 수치스러웠던 과거에서 반성과 고민을 느끼는 것 뿐이다. 유태인들이 과연 여태껏 과거에 얽매여있는 탓에,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에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여러 유태인 수용소를 보존하고 있을까? 이미 그들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민족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에 대한 답은 너무나 뻔해 보인다.
과거 전범국가였다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성숙한 국가로서 주변국들에게 존경을 받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과거에 대한 반성 덕분이었다. 반대로 일본은 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주변국들의 질타를 받고 있다. 과거에 대한 반성은 커녕 과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 탓이었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망언을 일삼을 때마다 우리는 발끈하며 일본인들을 호되게 몰아친다. 그런데, 기억하지 싫은 역사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우리 또한 일본인들과 똑같은 부류가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