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연예인의 나라이다. 텔레비젼을 켜면 온종일 연예오락 프로그램이 나온다. 라디오도 마찬가지다. 연예인들의 신변에 대한 잡담 천지다. 인터넷 뉴스도 팔할 이상이 연예인들에 대한 소식이다. 연예인이 어떤 이야기를 했고, 어떤 옷을 입었는지가 기사로 등장한다. 광고에도 연예인 천지다. 길거리를 가다가 연예인이 등장한 광고판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의 대화도 온통 연예인 이야기다. 누가 어디에 출연했고, 누구와 누구가 어떤 사이이고 하는 이야기들로 대화가 채워진다.

과학기술의 진보는 미디어를 양적으로 확장시켰다. 인터넷을 따라잡기도 버거운 마당에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모바일 미디어가 등장했다. 이로써 사람들은 신문, 잡지, TV, 라디오, 인터넷, 스마트폰 등 다양한 미디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정보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엄청나게 커진 셈이다. 하지만 그 그릇을 채우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다. 다시 말해 미디어는 무한히 확장되어갔지만 이를 채울 수 있는 콘텐츠는 한정적이었다. 결국 만만한 것은 연예오락이었다. 사람들은 집, 지하철, 공원 등 어디에서든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들이 읽고 보는 건 연예인들의 신변잡기에 대한 기사들 뿐이다.

사람들도 연예오락을 찾기 시작했다. 민주화 이후 사람들은 정치나 이념 같은 거대담론보다는 주변의 것에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각박해지는 삶, 학업과 업무의 부담, 그리고 날로 극심해지는 사회적 갈등과 이념 대립 속에서 연예계 이야기는 손쉽게 시간을 죽일 수 있는 부담없는 오락거리였다. 취향이나 관심거리에 있어 공통 분모가 점점 작아지고 있는 현대인들 사이에서 연예오락은 누구와도 쉽게 공유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대화의 소재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현재 우리 한국 사회는 '연예공화국'이라해도 무방할 정도로 연예계에 대한 관심과 연예 가십거리가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물론 연예계에 대한 관심 자체를 나쁘게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사회문화적 관심에 있어서 어느 것이 고급스럽고 어느 것이 천박하다는 기준은 없다. 다만 그 관심이 지나치게 어느 한 쪽으로만 편중되는 것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TV 프로그램의 하루를 생각해보자. 아침 뉴스의 상당 부분은 연예계 뉴스로 채워진다. 하지만 말이 연예게 뉴스일 뿐, 실상은 연예인들의 신변잡기에 대한 보도가 전부다. 어느 배우가 어떤 CF 촬영을 했고, 어느 탤런트의 다이어트 식단이 어떠하며, 어느 가수가 트위터에 어떤 말을 남겼다는 등등. 연예계에 대한 비판적 저널리즘은 찾아볼 수 없다. 뉴스가 끝나면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침 토크쇼'가 이어진다. 여기서도 역시 주인공은 게스트로 초대된 연예인에 대한 이야기다. 연예인의 집을 방문하고, 연예인이 자주 먹는 음식을 소개한다. 오후에는 전에 방영되었던 밤 시간 예능 프로그램들이 재방송된다. 역시 별다른 내용은 없다. 게스트로 초대된 연예인의 근황, 개인사와 같은 사생활에 대한 에피소드 등이 전부다. 그걸 물어보는 MC가 누구냐에 대한 차이만 있을 뿐.

문제는 사람들이 마치 거울을 보듯 TV를 보며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연예계를 닮아가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TV, 인터넷의 영상 미디어 속에서 연예인들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은 그들의 외양적인 이미지를 통해서다. 화려한 겉치레로 유행을 만들고 그 유행에 뒤처지는 이들을 촌스런 '루저'들로 만들어버리는 연예계의 외면적인 생리가 고스란히 대중들에게도 전해지고 있다. 외양이나 언변이 실력과 내공을 전도시키는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해졌다. 사람들은 TV 속 배우들처럼 되기 위해 성형을 하고, 과도한 다이어트를 감행하면서도 좀처럼 만족할 줄 모른다.

한창 자신만의 개성을 가꿔나가야 할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요즘 중학교나 고등학교의 여학생들을 보면 모두 하나 같이 연예인을 따라 짙은 화장을 한다. TV나 인터넷 이미지 속 연예인처럼 예뻐지고 싶어서다. 그들에게는 이미 여성 연예인이 예쁘고 예쁘지 않고의 기준이다. 그들의 대화도 대부분이 아이돌 가수에 대한 이야기들뿐이다. 서로가 연예인에 대한 관심을 나눌 때 비로소 또래로 어울릴 수 있게 된다. 

다른 세대에 비해 젊은층의 정치 참여가 현저히 부족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관심이 민주화 같은 정치적 담론에서 TV, 가요 같은 문화적인 담론으로 옮겨갔던 바로 그 시기에 태어난 이들이다. 때문에 정치나 사회적 담론에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 대신 연예오락 중심의 대중문화에 푹 빠져있다. 신문을 읽기보다는 인터넷으로 연예기사를 즐겨보며, 뉴스 대신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챙겨본다. 이들은 본인의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가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도 새로 데뷔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 이름을 모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울러 연예계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사회적으로 소모적인 논쟁과 부정적인 병폐를 낳고 있다. 사람들은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궁금해 하지만 모두 일회적인 관심에 불과할 뿐, 결국 연예인 당사자나 대중들 양쪽 모두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따금씩 터져나오는 연예인들의 자살 사건, 서태지와 이지아의 이혼 사건, 지금도 진행 중인 타블로 사건 등, 대중들은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자신들도 알아야 할 일종의 공유물로 여기고 흥미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의 문화는 연예, 대중오락을 중심으로 편중되어 있어 문화풍토가 매우 척박하다. 연예인의 사생활 소식이 일부 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소개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마치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건처럼 포장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최근의 현상은 후진사회가 보여주는 모습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선진 사회로 가려면 사회문화적인 차원에서 좀더 성숙한 모습이 필요하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


경제규모에 비해 정치사회적인 의식이 낮기로 유명한 나라가 일본이다. 3S 정책이 연상될 만큼 일본의 집권 보수 세력은 연예계에 대한 일본 사회의 높은 관심을 그대로 방치하고 이용했던 탓이다. 일본에서는 공중파 방송에서 연예인의 결혼식을 생중계한다고 한다. 우리가 보기에는 웃긴 일이지만 지금의 추세라면 우리 또한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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