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장을 믿는다. 시장주의는 제일 공정한 시스템이다. 투자하는 대로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한 사람은 그만큼의 보상을 받고, 좋은 상품을 좋은 가격에 파는 사람은 상품을 더 많이 팔 수 있다. 이전 정권이 말하던 ‘경제민주화’란 모토는 사실 시장주의 개념과 다를 게 없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완전경쟁시장은 모든 경제 주체들이 정확히 똑같은 출발점에서 경쟁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적 민주화, 그러니까 경제적 평등과 시장주의는 동어반복적인 관계에 있다.
다만, 시장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시장은 물에 떠 있는 사람과도 같다. 사람이 물에 떠 있기 위해서는 다리로 계속 물장구를 쳐야 한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물속으로, 중력의 방향대로 계속 가라앉기 때문이다. 시장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시장은 항상 서서히 가라앉는 존재다. 시장실패라는 중력의 방향대로 침몰해가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가라앉지 않기 위해 계속 물장구를 치듯이, 시장 역시 이를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밀한 조정과 통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독과점, 정보의 불평등, 외부효과 같은 중력들이 끌어당기는 방향대로 시장은 서서히 가라앉게 될 것이다.
시장만능주의는 시장주의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시장만능주의라는 개념은 방임주의에 가깝다. 시장은 전능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아무런 개입 없이 그냥 놔둬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모든 ‘만능주의’가 그러하듯, 시장만능주의도 시장실패를 간과한다는 점에서 모순을 안고 있다. 시장을 방임한다는 건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그냥 물에 잠기고 있는 것과 같다. 시장실패라는 중력이 끌어당기는 대로 가라앉는 것이다. 이 시장만능주의가 시장과 경제 주체들을 어떻게 침몰시켰는지는 더 말해 입만 아플 정도다. 십여 년 전의 금융위기만 봐도 적나라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재벌은 반시장적이다. 시장주의를 저해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재벌은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 주체가 아니다. 재벌은 독과점의 주체일 뿐이다. 미국이란 나라도 덩치가 큰 기업을 최대한 쪼개기 위해 애를 쓴다. 그만큼 재벌은 시장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는 반재벌적인 아이디어들을 전부 반시장적인 사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반시장적인 재벌에 반하는 생각들을 되레 반시장적이라고 규정하는 건 일종의 모순이다. 그건 시장주의적인 사고가 아니다. 단지, 시장만능주의에 불과하다.
한국 사회에서 자신을 ‘시장주의자’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은 사실 ‘시장만능주의자’에 가깝다. 온전한 시장주의자란 시장이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의 장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장을 온전하게 지켜내려는 시도를 반시장적이라고 비판하는 건 결과적으로 시장을 자유롭지 못하고 불공정하게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시장을 지키려는 게 아니라 그저 방임하는 것뿐이다. 그들은 시장주의의 수호자가 아니라 독과점(시장실패)의 수호자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그 반대의 지점에 위치한 사람들, 민주적 가치를 근거로 시장주의를 공격하는 사람들, 이들 역시 시장주의를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공격하는 건 시장주의가 아니라 시장만능주의이다. 이들의 주요 타겟인 친재벌적인 경제정책, 낙수효과 같은 것들을 시장주의적인 정책이 아니라 오히려 반시장적인 정책들이다. 자유, 평등, 정의 같은 민주적 가치는 사실 시장주의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경제적인 민주주의란 공정한 경쟁시장, 곧 시장주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시장주의를 공격할 게 아니라 오히려 시장을 강조하고 시장을 지키려는 스탠스를 취해야 한다. 그래야 반시장주의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시장은 신성화된 영역이다. 그것을 건드리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주의라는 담론을 선점하고 있는 이들은 사실 시장주의자가 아니라 독과점을 방임하는 시장만능주의자에 불과하다. 여기서 시장주의 담론이 안고 있는 모순이 드러난다. 누구보다 시장이란 시스템의 공정함을 믿고 이것을 지키려고 하는 이들이 오히려 반시장적이라고 공격을 받아야 하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장주의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서로 뒤바뀐 위치에서 서로 뒤바뀐 언어로 싸우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