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인 코리아
혼자생각 |
2008/08/21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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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부터인가 '뉴라이트'란 말이 세간에 떠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곧 온갖 방송들과 신문들의 지면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럴만도 했다. 외환위기 이후 정권교체가 처음으로 이루어지고, 뭔가 새로운 것들을 해줄 것만 같았던 젊은 386 세대들이 정치의 중심에 대거 합류했다. 정치계에서도 혁신의 바람이 부는 듯 했다. 그러자 이와는 반대로 보수 정치세력과 언론들은 점차 '수구꼴통'의 이미지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대선에서의 잇달은 패배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보수세력에게는 뭔가 새로운 방식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리고 '뉴라이트'는 그런 그들의 새로운 카드였다.
'뉴라이트'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우선 기존의 '수구세력'과는 거리를 두려 애썼다. 같은 보수적 색채를 띄고 있지만 '뉴라이트'는 같은 보수 속에서도 혁신과 개혁을 추구했다. 정형근 전 의원과 같은 인물로 대표되는 독재정권으로부터 뿌리를 두고 있던 '구보수'세력과는 차이를 두려 했다. 보수진영의 발목을 잡고 있던 어두웠던 과거 시절로부터 탈피하고, 대중들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도세력을 흡수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의 새로운 보수의 주류적 흐름이 되고자 한 것이다.
그들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가 연달아 집권함에 따라 왼쪽으로 무너진 사회의 균형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운동권 세력의 성장, 노조의 영향력 확장, 국가 보안 기강의 해이, 효용적이지 못한 경제 규제 등을 문제 삼고 이는 현 우리 사회의 위기적 상황이라 진단했다. 그리고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유주의적 보수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뉴라이트'가 사회로의 직접적인 영향력 행사를 실행해야만 한다는 논리였다. 1980년대 영미권에서 처음 발생했던 '뉴라이트'의 움직임은 신자유주의의 출현으로부터 그리 자연스럽지 못하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했던 비유대로 '빵'보다는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동시에 '뉴라이트'의 본질적인 인식이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실 최근 몇 년 간 국내에서 일었던 '뉴라이트'의 열풍은 설득력있어 보였다. '빵'에 중점을 두었던 지난 십 년 간의 정권에 비해 이제는 '자유'에 더 무게를 실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그럴싸했다.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지난 몇 년 간의 '뉴라이트'는 결과론적으로 성공적이었다. 무엇보다 10년만에 정권을 다시 되찾아왔다. '뉴라이트'가 전면으로 부각되었던 지난 대선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들이 내세운 후보는 보수진영의 대표적 모델인 산업화세력이었지만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실력'이 입증된 기업인 출신이었고, 이런 기업인 출신 대선 후보라는 점은 '뉴라이트'와 얼버무려져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의 참신한 인물로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최근 '뉴라이트'의 행보는 새로운 보수의 흐름으로서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매우 실망스러워져 가고 있다. 얼마 전 또 다시 붉어진 독도 문제로 현 정권이 일본의 우경화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사실 우경화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 현 정권 자신도 그리 자유롭지 못한 것은 별 차이가 없다. 본래 기존의 구보수세력과는 차별을 두려 애쓴 그들이지만 정권을 잡은 후로 그들의 정치 방식과 국정 운영책은 구보수세력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뉴라이트'의 기조 아래 우선적으로 그들이 사회의 균형을 다시 되찾고자 벌인 사업은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이었다. 노무현 정권 때 잡음을 냈던 대미관계를 다시 그 이전의 상태로 완벽 복원하는 것이 '뉴라이트'가 말하는 사회의 균형 잡기의 첫 걸음이라 여겼을까, 냉철한 시각에서 보더라도 미국에게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하는 졸속 협상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고자 했고, 이는 곧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던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 후, 기나긴 촛불의 행진으로 정부는 어렵게나마 미국과의 재협상을 재개시키고, 국민들과도 어느 정도의 협상점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차 촛불 집회에 대한 여론이 예전만 못하게 되자, 그들은 촛불 집회를 반격의 계기로 삼아 급진적인 진보 진영을 몰아세우기 시작했고, 굳건한 공권력 앞에 무너진 진보연대와 같은 진보 진영은 군사 정권 이후 처음으로 '탄압'과도 같은 '탄압'을 받아야만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언론을 장악하고자 하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방송통신위원장을 차지하더니, YTN의 사장 자리 또한 직원들의 반대 등 여러 잡음에도 불구하고 노골적으로 차지하였고, '뉴라이트'의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였던 KBS 정연주 사장도 끝내 해임시켜버렸다. 정치 검찰도 부활시키는 듯 하다. 대선까지 나왔던 야권의 유력 국회의원이 체포 직전까지의 상황에 몰렸다. 그들이 외치는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와는 정반대의 길이었다. 외면적으로는 구보수세력과의 차별을 강조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구보수세력과 구보수세력이 사용했던 방법론적인 방식을 똑같이 차용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네오콘'과도 비교되고 있는 지금의 '뉴라이트'의 현실이다.
건국일을 따로 국가기념일로 제정하겠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과거의 수구 세력과는 그토록 차별을 두고 싶어 했던 '뉴라이트'세력이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과거 수구 세력의 전통성을 기념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더 이상 '뉴라이트'가 아니다. 말만 번지르르한 '뉴라이트', 새로운 혁신적 보수주의,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일 뿐 그저 몇 십 년 전 과거와 다를 바 없는 수구세력의 연장선이다.
올림픽이 한창이다. 올림픽에서의 우리나라 선수의 선전, 그리고 금메달 획득은 그 어떤 때보다도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통쾌하게 만든다. 우리 선수가 금메달을 딸수록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올림픽 스타들도, 스폰 기업들도 아니다. 바로 현 정권이다. 금메달이 하나 둘 늘어나고 우리나라가 선전할수록 현 정권의 지지도 또한 동반 상승하고 있단다. 물론 본의는 아니겠지만, 올림픽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보고 있는 현 정권을 보면서, 이십 여 년 전 우리나라가 떠오르는 것은 비단 유쾌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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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의 배후세력은 그의 헛된 자신감
혼자생각 |
2008/06/08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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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디 넓은 광화문 거리를 비롯해 안국동 사거리, 청계천, 시청 앞, 독립문 등 서울의 중심부가 촛불을 든 시민들의 인파로 꽉찼다. 연휴를 맞이해 72시간 릴레이 촛불집회가 이루어졌고, 하루 10여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연휴 내내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시청 앞 광장에는 난데없는 텐트촌이 형성되었고 밤낮 구분 없는 시민들의 축제의 장이 계속되었다.
연일 이어지는 촛불집회와 떨어지는 지지율, 들끓는 반대 여론도 모자라 보궐선거 참패까지도 모자른 것이었을까. 정부의 태도는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국민들이 그토록 원하는 재협상은 접어둔채 대통령이 대통령에게 전화로 30개월 이상 소의 수입을 제한할 것을 '요청'하였다. 더불어 재협상을 할 경우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며 이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을 나무라고 있다.
"불도저라는 별명이 있던데..."
두 달 전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 당시 부시가 이명박에게 한 말이다. 어쩌면 이 말에 지금 정부가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미국 쇠고기 수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배짱의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명박은 그의 별명인 불도저처럼 굉장한 추진력을 갖고 리더십을 발휘하며 묵직묵직한 사업들을 이룩해낸 전적을 갖고 있다. 그가 한 번 추진할 것이라고 마음 먹은 일이면 그 누구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일을 끝까지 추진시키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가 서울 시장 자리에 있을 때 추진시켰던 몇 가지 사업들은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말았다.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세웠을 때에도 많은 반대가 있었다. 청계천 일대의 상인들에 대한 생존권과 교통 문제, 환경 문제 등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또 시내버스 시스템을 정비할 때도 세금을 낭비한다는 등 많은 이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를 밀어붙였고 결국에는 성공적인 치적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가 한 대기업의 평사원에서 CEO까지 '샐러리맨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과정에 있어서도 그는 실패를 맛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해 축적되었던 그의 자신감은 서울시장의 당선과 청계천 복원의 성공적인 결과, 경선과 대선의 연승으로 더욱 굳건해져왔다. (자격을 잃기도 했지만 국회의원에도 당선된 적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총선에서까지 여당이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그의 자신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바로 이 점이 그를 탄핵으로까지 몰고 가는 시민들의 '배후세력'이 되고 있다. 그에게는 반대를 무릎쓰고도 이에 굴하지 않고 결단력 있게 일을 추진함으로써 성공을 거뒀던 경험이 풍부하다. 미국 쇠고기 수입 고시를 연기하고 청와대 인사 쇄신을 거행하는 등 나름대로 자성의 태도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미국 쇠고기 수입을 성사시킬 가능성은 충분하다. 수만 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와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그의 머릿 속에는 그의 추진력과 결단력을 믿는 헛된 자신감이 좀처럼 자리를 비우려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불도저와 같은 독단적 태도가 바로 촛불집회의 배후세력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의 현 상황이 그가 과거에 견뎌냈던 숱한 반대의 경험들과는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그는 성난 민심에도 불구하고 일단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시키면 시민들의 저항은 잦아들 것이고 오히려 이를 이용해 한미 FTA 협상에서 우리나라가 확실한 협상 카드를 쥐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쇠고기 수입의 여파와 견줄만 한 협상에 있어서의 미국으로부터의 양보를 확실하게 보장 받은 것도 아니고, '주권'문제가 부각될 만큼 쇠고기 수입 결정은 순전히 우리 정부의 양보에 입각한 것이었다. 즉, 여론의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입을 밀어붙일만큼 과연 이후에 이 같은 결정이 그가 운운하는 '국익'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불확실한 것이다.
 또 하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일어서는 이유는 단순히 미국 쇠고기 수입 결정에 반대해서가 아니다. 그가 버리지 못하고 있는 독단적인 국정 수행 방식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청계천 복원 때도, 버스 중앙차로 도입 때도 많은 사람들의 반대 여론이 있었지만 그 당시의 반대의 내용은 주로 그 추진 사업 자체에 대한 내용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좀 다르다. 그는 일개의 시장이 아닌 나라의 살림을 책임지는 최고 국가 통치자의 자리에 있고, 이 자리에 걸맞는 의사소통능력과 민주적인 국정 수행 능력을 보이지 못하는 그에게 시민들은 비판의 촛불을 들고 있는 것이다. 즉, 미국 쇠고기 수입에도 물론 문제가 있지만 그보다 더욱 큰 문제는 바로 그 자신의 독단적인 국정 추진과 의사소통능력의 부재에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대통령과 현 정권이 과연 자각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오히려 연일 터져나오는 측근들의 언행과 보수층의 터무니없는 주장들을 감안해 볼 때 현 정권의 자성적인 태도에 대한 기대는 무의미한 것처럼 보인다. 한 달이 넘었는데도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과 정부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욱 늘어나고만 있다. 6월 10일을 맞아 시민들과 진보세력들은 대대적인 집회와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이 자신들의 오만함과 독선적인 측면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정권과 시민들의 충돌은 불가피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대대적인 충돌은 양측의 깊은 갈등과 불신을 낳을 것이 뻔하고, 이 갈등과 불신은 훗날까지 우리 사회의 깊은 상처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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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snowall@melotopia 2008/06/08 23:53 x
제목 : 소크라테스의 변명
GRE도 끝난 김에, 집에 처박혀 있던 미독서적들을 읽으려고 책장 첫칸부터 안읽은 책들을 찾았다. 거기서 가장 처음에 걸린 책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다. 오오... 한눈에 보기에도 지루하고 고전적일 것 같은 제목이다. 내용은 소크라테스가 고발당해서 사형당할때 까지의 이야기와, 소크라테스가 참석했던 어느 잔치에서 했었던 연설을 모아둔 것이다. 저자는 무려 플라톤. 그를 고발한 자들은 그가 무신론자이고 청년들을 선동하여 죄악에 빠지도록 했다는 혐의로.. |
Tracked from TransAussie 2008/06/09 18:50 x
제목 : 문제는 국민에 대한 태도입니다.
이건희 전 회장이 삼성의 준천재급 인재라고 하는 참여정부 최장수 '천재장관'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이 한 강연 서두에서 '얼음을 깨려고' 꺼낸 100점짜리 인생이라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선 알파벳 A부터 Z까지 차례로 1~26점까지 점수를 매겨보면, 흔히 인생 성공에 중요한 것이라 생각되는 Knowledge, Money, Luck 는 각각 96, 72, 47점이 된다고 합니다. 과연 100점 인생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100점을 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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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운동권'에게 고한다
혼자생각 |
2008/05/29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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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택시를 탔다. 적막한 택시 안에서 라디오 뉴스가 또렷하게 들렸다. '지금 이 시간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로 인해 종로와 동대문 일대 도로가 정체되어있습니다....광화문 앞과 종각까지의 도로는 마비 상태입니다.' 그러자 기사 아저씨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에이, 아무리 시위라지만 일하는 사람들까정 방해하면 안되지." 세상의 민심을 가장 잘 읽는 사람들이 바로 택시 기사 아저씨들이라는데, 그들 중 한 명은 촛불집회에 나선 시위대를 향해 혀를 찼다. 당연히 국민들의 우려를 대신해 행동하고 있는 촛불집회 시위대를 두둔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일리있는 말이었다. 아무리 촛불집회이고 시위이고 좋지만, 최소한 생계에 바쁜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가는 행동은 되도록 삼갔어야 했다. 의도야 어떻든 차로를 모두 막고 행진을 벌이는 것은 좀 자제했어야 했다. 촛불집회가 외신들에 의해 보도되기까지 할 정도로 호응을 얻었던 점은 촛불이 담고 있는 '평화'의 덕이 컸다. 그런데 이 평화시위를 무단 차로 점거 등과 같은 불법시위로 전락시켜서는 안 될 것이었다.
오늘 아침 강의를 들으러 강의실에 들어섰다. 강의가 시작되기 전, 몇몇 학우가 들어오더니 전단지를 나눠주면서 오후에 있을 학생총회와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헌데 집에 와서 촛불집회에 대한 뉴스를 보던 도중 그 학우가 나누어주었던 전단지가 민주노동당이 배포하는 선전물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수하게 학생회에서 만든 전단지 같았는데 아니었다. 물론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러기에는 한구석이 찜찜한 기분이었다.
'배후세력이 있다.' '불건전한 세력이 집회와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현재 이명박 정권이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들이다. 집회를 통한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보다는 집회에 배후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구실로 오히려 집회에 참여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을 강제 진압하고 있다. 물론 평화로운 촛불집회를 강제로 해산하고 참여자들을 강제 연행하는 것은 과잉 진압임이 분명하지만 배후세력이 있다는 현 정권의 음모설은 과연 '설'에 불과한 것일까.
'운동권'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급진적인 색깔을 갖고 있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흔히 '운동권'이라 부른다. 대표적인 정당으로는 민주노동당을 꼽을 수 있겠고, 민주노총, 전교조, 한총련 등의 세력 또한 모두 소위 '운동권'에 속한다. 87년 이후 급격히 진행된 민주화로 잠깐 그 뚜렷한 노선을 잃기도 했지만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거세진 이후 다시금 세력을 가다듬고 응집하여 우리 사회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는 그들이다. '경쟁'이 점차 중요시되는 사회에서 '평등'을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는 분명 우리 사회에 꼭 필수적인 요소다.
순수한 시민들의 집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된다.
하지만 최근의 이른바 '운동권'의 행동은 정말 실망스럽다. 그들의 고질적인 행태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현되었다. 현 정권에 반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시민들이 조금이라도 응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항상 그들이 나타난다. 어쩌면 시민들의 순수한 행동들을 그들의 정치적 야욕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그들의 버릴 수 없는 습성인가보다. 6여 년 전 미군 장갑차 사건 때도 그랬고, 한미FTA에서 지금의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까지, 과연 진보가 맞나 할 정도로 그때만큼은 국민들의 민족주의적 감정을 교묘히 건들여 자신들의 정치 구호 아래 이용해버린다.
문제는 더 있다. 지금의 정권의 그들과 정치적으로 정반대의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이다. 운동권 그들이 얼마나 완벽한 논리를 갖춘 주장을 펼지라도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세력이 그들의 주장에 수긍해줄 가능성은 제로다. 그들과 정권은 상극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서로의 서로에 대한 신뢰가 전무하다. 이런 그들이 촛불집회를 전면에 나서 선동하고 주도한다면 과연 이 집회의 효과가 나타날까 의문이다. 오히려 지금 정권이 떠들고 있는 것처럼 '배후세력이 있다'는 식으로 공권력에 의한 과잉진압의 구실이 될 뿐이다. 그리고 정권의 무분별한 시위 진압은 시민들과 정부 사이에 감정과 폭력만이 얼룩지도록 만들 것이 뻔하다. 물론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바도 일리가 있는 논리다. 하지만 그 논리를 사회에 접목시키는 방법과 과정이 틀렸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시민들의 전면에 나설만한 권리도, 시민들과 정권의 대립을 과격하게 만들 권리도 없다. 단지 사회의 한 부분에서 그들 나름대로 그들만의 목소리만 내면 그만인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시민들의 구호로 쓸 것인가는 그들이 아닌 시민들의 몫이다.
더 이상 '중심 없는 시위'를 더럽히지 마라.
'운동권'은 더 이상 시민들의 순수한 촛불집회를 이용하고자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촛불집회는 중심없는 시위로 큰 반향을 낳고 있다. 이전까지의 시위나 학생운동에서는 중심 역할을 하던 배후세력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모바일 통신의 발달로 정치에 대한 시민 참여는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다. 중심이 없고, 주동자도 없고, 선동세력도 없다. 시민들 각 개인의 참여적 행동의 의지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고 인터넷과 모바일 통신은 단지 그 의지들을 하나로 응집시켜주는 역할만을 담당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집회에 외신들은 앞다투어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 아름다운 시민들의 참여를 그들의 야욕으로 얼룩지게 해서는 안된다. 시민들의 민주적 참여는 성스런 성역이다. 그 누구도 이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
미국의 위험성 높은 소를 수입하려는 정권을 말리고 싶은 그 간곡함만큼이나 순수한 촛불집회를 더럽힐 여지가 있는 운동권 그들에게도 간곡하게 말하고 싶다. 제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용기있는 행동들이 헛되는 일은 없도록 신중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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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반항아
혼자생각 |
2008/05/27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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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의 급식에서는 미국산 쇠고기를 절대 쓰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 각 학교 교장선생님들의 훈화 말씀에 단골로 등장하는 말이란다. 하긴, 요즘 그 어떤 한마디보다도 학생들에게 큰 꿈과 희망을 주는 말일지어니.
이전까지 길거리 시위는 주로 대학생들과 20대의 몫이였다. 기를 쓰고 미국으로부터 쇠고기를 들어오려는 지금의 정권도 2,30년 전에는 독재정권에 맞서 머리에 띠를 두르고 시위의 전면에 나섰던 대학생들로 채워져있다. 그리고 불과 십여 년 전만하더라도 대학의 캠퍼스들은 감옥을 연상케할 정도로 높은 벽으로 캠퍼스 내부를 감싸고 있었다.
그 후, 대학 캠퍼스의 높은 벽들은 민주화의 바람 아래 허물어졌다. 그리고 대학생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예전처럼 대학 공부는 접어두고 머리에 띠를 두른채 거리로 나와 시위하는 모습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대신 대학생활은 치열해졌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직후 무섭게 몰아닥친 신자유주의의 바람은 대학생들마저도 바꾸어놨다. '요즘의 대학생들에게는 뜨거운 피가 없어.', '캠퍼스의 낭만이 없어졌어.' 요즘의 대학생들을 보고 사회의 어른들이 혀를 차며 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 것이 어디 대학생들의 탓인가. '나이가 40을 넘어선 뒤로는 세상에 대해 투덜거려선 안 된다.'란 말도 있다. 대학생들로 하여금 대학생활 낭만을 만끽할 여유를 빼앗아간 것은 지금의 세상을 만든 그들 자신이 아닌가.
그러던 최근, 대학생들이 당장 졸업 후의 먹고 살아갈 문제에 대해 매달려 있을 무렵, 이번에는 10대들이 좀더 본질적인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학교 울타리에서 벗어나 거리로 나와 당당하게 세상에 향해 그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장점이자 소통의 장, 인터넷을 기반으로 너나 할 것 없이 거리로 나섰다.
그러자 이번엔 '괴담'이란다. 괴담에 따른 철없는 행동이란다. 학교에 공문까지 내려 학생들의 시위 참여를 막으려 한다.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그들 자신이 학창시절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사람들 아닌가. 그런 그들이 정당하게 할 말을 하러 거리로 나온 10대 학생들을 공권력을 투입해 잡아들이고 있다. 신문들은 정작 이 10대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는 커녕 그들의 장인 인터넷의 단점들을 꼬집고, 그 어느 세대보다도 세상과 가장 많은 소통을 나누고 용기까지 갖추고 있는 그들을 괴담에 휩싸이는 분별력 없는 '아이들'로 몰아가고 있다.
그래도 얼마나 기특한 10대들인가. 그들의 형과 언니들이 제도권에 편승하고자 안간힘을 쓰며 도서관 안 개구리가 되어가는 지금, 그들을 대신하여 거리로 나왔다. 박수를 쳐줘도 모자랄 10대들이다. 다행스럽다. 새롭게 들어선 정권, 그리고 그들과 의기투합하고 있는 세상의 '어른들'. 그들 때문에 하루하루가 조용하지 못한 우리네 사회지만, 동시에 그 어느 세대보다도 저항적인 지금의 10대들이 있어서 우리의 미래는 그리 어둡지만은 않은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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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있는 그대로 2008/05/28 00:02 x
제목 : 사람 취급 받고 싶다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080527102714587&cp=yonhap&RIGHT_COMM=R1 <`촛불시위'에 다시 시름잠긴 與>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8.05.27 10:27 ... 하지만 요 며칠 새 서울 도심에서 연일 대규모 촛불시위가 벌어지면서 분위기는 반전했다. 이번에는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도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공안정국 회귀'.. |
Tracked from [임프레스 매거진] 2008/06/03 19:50 x
제목 : 어쩌면 대학생들이 보수적인건 당연한게 아닐까?
현재 한국의 대학생들은 보수적이라고 한다. 촛불시위에 중/고생들도 참여하는데 종종 대학생들을 시위를 비판한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IMF를 겪어본 세대다. 보리고개니 뭐니해서 IMF보다 한국이 어려웠던 적은 많다. BUT! 처음부터 가난하게 살고 쭉 가난한 것과 왠만큼은 살다가 형편이 어려워지는 것. 어느 것이 더 불행할까? 개인적으로 후자라고 본다. 나라에 돈이 없고 집에 돈이 없어서 큰 회사들 부도나는거 눈으로 봤고, 집 평수 줄고, 부모님 이혼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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