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코프에서 장작 9시간의 기차여행을 통해 늦은 밤 부다페스트 동역에 도착했다. 무슨 비행기도 아니고 9시간 동안 기차에 꼼짝않고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워낙 혼자 기다리고 비행기타고 열차타고 지겹도록 돌아다닌 탓에 오랜 시간 홀로 있는 것은 그리 어렵고 지리하지만은 않았다.
미리 전화로 알아둔 숙소로 가기 위해 길을 걷다가 밤길이 너무나도 헷갈려서 그냥 택시를 탔다. 정말이지 유럽은, 그것도 특히 동유럽은 저녁 시간만 되어도 길거리가 컴컴하다. 때문에 어두운 밤 시간에 길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택시를 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너무도 친절했다. 밤가운 마음에 서투른 영어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별에 별 이야기를 다했다. 원래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끼리 만나면 영어로 더 대화가 잘 되는 법.
그 다음날, 구름이 잔뜩 낀 우중충한 날씨의 부다페스트는 역시 말 그대로 우울한 도시였다. 숙소에서 나왔는데 세차게 부는 바람이며 기분 나쁠 정도로 흐린 하늘 빛은 괜시리 우울하다 못해 암울했다. 바로 앞에 흐르는 도나우 강 또한 마찬가지였다. 유난히 자살률이 높다는 이 부다페스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도나우 강으로 몸을 던졌으리라는 침울한 생각을 해보았다. 이런 하늘빛과 강을 바라보자니 부다페스트가 왜 높은 자살률로 유명한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아름답다던 세체니 다리도 잔뜩 흐린 날씨에서는 회색 빛의 철색? 그대로의 본연의 우울한 색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세체니 다리를 건너 왕궁 언덕으로 향했다. 왕궁 언덕 위에서는 도나우 강을 앞에 두고 부다페스트의 시가지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다른 유럽의 도시들보다 꽤 큰 규모의 시가지 모습이었다. 왕궁의 언덕에서 성당과 요새 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중앙시장에도 가보았다. 시장이라고 해서 다른 곳들처럼 길거리에 널려져있는 그런 시장을 상상했는데 부다페스트의 중앙시장은 유명한 건축가 에펠이 만든 멋진 큰 건물 안에 있었다. 고기에서부터 과일까지 온갖 먹을거리가 가득했고, 위층에서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여러가지 아기자기한 기념품들을 파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그래도 명색이 시장이라고 관광객들보다는 정말 장을 보러 온 현지인들이 많이 보였다.
구시가지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저녁이 되었고 대충 케밥과 햄버거 패스트푸드로 굶주린 배를 채웠다. 배를 두들기면서 숙소로 돌아가던 도중 멀쩡히 생긴 한 서양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다소 억양이 강한 영어로 어디서 왔느냐, 이름은 무엇이냐, 몇 살이냐, 여행을 왔느냐, 어디를 여행 했었느냐 등등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얼떨결에 대답도 하고 그랬는데 갑자기 근처 펍이나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자며 날 데려가려는 눈치에 뭔가 수상쩍기도 하고 해서 그냥 미안하다고 하며 자리를 빠져나왔다. 나중에 현지 성매매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이거나 으슥한 곳으로 유인해서 돈을 뺏는 강도였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