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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에 해당하는 글6 개
2008/06/08   촛불집회의 배후세력은 그의 헛된 자신감 (7)
2008/06/07   관심과 용기, 그리고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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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의 배후세력은 그의 헛된 자신감
혼자생각 | 2008/06/08 23:12

넓디 넓은 광화문 거리를 비롯해 안국동 사거리, 청계천, 시청 앞, 독립문 등 서울의 중심부가 촛불을 든 시민들의 인파로 꽉찼다. 연휴를 맞이해 72시간 릴레이 촛불집회가 이루어졌고, 하루 10여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연휴 내내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시청 앞 광장에는 난데없는 텐트촌이 형성되었고 밤낮 구분 없는 시민들의 축제의 장이 계속되었다.

연일 이어지는 촛불집회와 떨어지는 지지율, 들끓는 반대 여론도 모자라 보궐선거 참패까지도 모자른 것이었을까. 정부의 태도는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국민들이 그토록 원하는 재협상은 접어둔채 대통령이 대통령에게 전화로 30개월 이상 소의 수입을 제한할 것을 '요청'하였다. 더불어 재협상을 할 경우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며 이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을 나무라고 있다.

 "불도저라는 별명이 있던데..."

두 달 전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 당시 부시가 이명박에게 한 말이다. 어쩌면 이 말에 지금 정부가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미국 쇠고기 수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배짱의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명박은 그의 별명인 불도저처럼 굉장한 추진력을 갖고 리더십을 발휘하며 묵직묵직한 사업들을 이룩해낸 전적을 갖고 있다. 그가 한 번 추진할 것이라고 마음 먹은 일이면 그 누구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일을 끝까지 추진시키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가 서울 시장 자리에 있을 때 추진시켰던 몇 가지 사업들은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말았다.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세웠을 때에도 많은 반대가 있었다. 청계천 일대의 상인들에 대한 생존권과 교통 문제, 환경 문제 등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또 시내버스 시스템을 정비할 때도 세금을 낭비한다는 등 많은 이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를 밀어붙였고 결국에는 성공적인 치적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가 한 대기업의 평사원에서 CEO까지 '샐러리맨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과정에 있어서도 그는 실패를 맛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해 축적되었던 그의 자신감은 서울시장의 당선과 청계천 복원의 성공적인 결과, 경선과 대선의 연승으로 더욱 굳건해져왔다. (자격을 잃기도 했지만 국회의원에도 당선된 적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총선에서까지 여당이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그의 자신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바로 이 점이 그를 탄핵으로까지 몰고 가는 시민들의 '배후세력'이 되고 있다. 그에게는 반대를 무릎쓰고도 이에 굴하지 않고 결단력 있게 일을 추진함으로써 성공을 거뒀던 경험이 풍부하다. 미국 쇠고기 수입 고시를 연기하고 청와대 인사 쇄신을 거행하는 등 나름대로 자성의 태도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미국 쇠고기 수입을 성사시킬 가능성은 충분하다. 수만 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와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그의 머릿 속에는 그의 추진력과 결단력을 믿는 헛된 자신감이 좀처럼 자리를 비우려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불도저와 같은 독단적 태도가 바로 촛불집회의 배후세력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의 현 상황이 그가 과거에 견뎌냈던 숱한 반대의 경험들과는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그는 성난 민심에도 불구하고 일단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시키면 시민들의 저항은 잦아들 것이고 오히려 이를 이용해 한미 FTA 협상에서 우리나라가 확실한 협상 카드를 쥐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쇠고기 수입의 여파와 견줄만 한 협상에 있어서의 미국으로부터의 양보를 확실하게 보장 받은 것도 아니고, '주권'문제가 부각될 만큼 쇠고기 수입 결정은 순전히 우리 정부의 양보에 입각한 것이었다. 즉, 여론의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입을 밀어붙일만큼 과연 이후에 이 같은 결정이 그가 운운하는 '국익'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불확실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또 하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일어서는 이유는 단순히 미국 쇠고기 수입 결정에 반대해서가 아니다. 그가 버리지 못하고 있는 독단적인 국정 수행 방식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청계천 복원 때도, 버스 중앙차로 도입 때도 많은 사람들의 반대 여론이 있었지만 그 당시의 반대의 내용은 주로 그 추진 사업 자체에 대한 내용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좀 다르다. 그는 일개의 시장이 아닌 나라의 살림을 책임지는 최고 국가 통치자의 자리에 있고, 이 자리에 걸맞는 의사소통능력과 민주적인 국정 수행 능력을 보이지 못하는 그에게 시민들은 비판의 촛불을 들고 있는 것이다. 즉, 미국 쇠고기 수입에도 물론 문제가 있지만 그보다 더욱 큰 문제는 바로 그 자신의 독단적인 국정 추진과 의사소통능력의 부재에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대통령과 현 정권이 과연 자각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오히려 연일 터져나오는 측근들의 언행과 보수층의 터무니없는 주장들을 감안해 볼 때 현 정권의 자성적인 태도에 대한 기대는 무의미한 것처럼 보인다. 한 달이 넘었는데도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과 정부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욱 늘어나고만 있다. 6월 10일을 맞아 시민들과 진보세력들은 대대적인 집회와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이 자신들의 오만함과 독선적인 측면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정권과 시민들의 충돌은 불가피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대대적인 충돌은 양측의 깊은 갈등과 불신을 낳을 것이 뻔하고, 이 갈등과 불신은 훗날까지 우리 사회의 깊은 상처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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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갈등, 독단, 미국, 민주주의, 불신, 쇠고기, 수입, 시위, 의사소통, 이명박, 정권, 진보세력, 촛불집회,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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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snowall@melotopia 2008/06/08 23:53 x
제목 : 소크라테스의 변명
GRE도 끝난 김에, 집에 처박혀 있던 미독서적들을 읽으려고 책장 첫칸부터 안읽은 책들을 찾았다. 거기서 가장 처음에 걸린 책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다. 오오... 한눈에 보기에도 지루하고 고전적일 것 같은 제목이다. 내용은 소크라테스가 고발당해서 사형당할때 까지의 이야기와, 소크라테스가 참석했던 어느 잔치에서 했었던 연설을 모아둔 것이다. 저자는 무려 플라톤. 그를 고발한 자들은 그가 무신론자이고 청년들을 선동하여 죄악에 빠지도록 했다는 혐의로..
Tracked from TransAussie 2008/06/09 18:50 x
제목 : 문제는 국민에 대한 태도입니다.
이건희 전 회장이 삼성의 준천재급 인재라고 하는 참여정부 최장수 '천재장관'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이 한 강연 서두에서 '얼음을 깨려고' 꺼낸 100점짜리 인생이라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선 알파벳 A부터 Z까지 차례로 1~26점까지 점수를 매겨보면, 흔히 인생 성공에 중요한 것이라 생각되는 Knowledge, Money, Luck 는 각각 96, 72, 47점이 된다고 합니다. 과연 100점 인생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100점을 넘지..
2008/06/09 07:54 L R X
비밀댓글 입니다
아다리 2008/06/09 17:35 L X
어! 너 뭐야? 너 명휘야?
원더 2008/06/09 17:03 L R X
님하 컴도저임...ㄳ
그냥 2008/06/09 18:48 L R X
트랙백 따라 왔습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마치 신문 논설처럼(물론 조중동은 빼고요^^) 정연한 어조에 읽고 있으니 차분하게 정리가 되네요.
그렇죠 70년대식 불도저라 시대에 맞지 않는 리더십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아직도 상황을 분간하지 못하고 우선 피하고 보자는 꼼수로 툭툭 내뱉는 말을 듣노라면 정말 배후세력인 것 같습니다. 지금 이명박의 '적'은 있을지도 모를 '사탄'과 '친북좌파' 세력이 아니라 바로 이명박 자신인 것 같습니다.
언핏 본 다른 글들도 차분하고 정겨운 느낌이라 무척 좋습니다. 즐필하시고요, 즐거운 블로깅되시기 바랍니다. :)
2008/06/09 20:56 L R X
본인 맞심
2008/06/09 21:44 L R X
비밀댓글 입니다
2008/06/11 05:37 L R X
비밀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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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과 용기, 그리고 행동
혼자생각 | 2008/06/07 19:20

여름이 싫다. 천성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는 많이 더위를 탄다. 이런 나에게는 8월의 뙤약볕이 아닌 바로 요즘이 가장 지내기 어렵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이 과도기적 시기가 나에게는 고역이다. 애매한 시기기 때문에 실내에서든 차내에서든 에어컨을 켜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무더운 날씨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이 에어컨을 켜고 선풍기를 돌리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이중창과 두꺼운 커튼, 두꺼운 쇠문을 갖춘 폐쇄적인 강의실은 나에게 너무나 더운 곳이다. 그 폐쇄적인 공간에 몇 십 명의 학생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난다. 하루는 견딜 수가 없도록 더웠다. 땀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고 온몸에서 땀이 주르륵 흐르는데도 강의실 안에 앚아있는 다른 사람들은 너무나 평온해보였다. 아무도 두꺼운 커튼에 덮혀있는 창문을 열 생각도, 그렇다고 에어컨을 켤 생각을 하지 않는 듯 했다. 더운 열기가 이글거리는데도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이상할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보였다. 결국, 혼자 강의실을 나가버렸다.

노회찬 의원이 텔레비전에 나와 이야기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가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당시에는 이승만 정권의 독재가 막바지를 달리던 때였다고 한다. 그 때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를 일삼는 등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이처럼 도저히 이해가 갈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이에 대해서 이상하게 여기기는커녕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소처럼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말도 안되는 협상을 졸속으로 벌여놓고도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연일 계속되는 촛불집회와 들끓는 민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구체적인 방안 하나 내놓지 않고 있는 정부다. 그 것도 모자라 북파공작원 위령제라는 당치도 않은 구실로 촛불집회를 방해하고, 뜬금없이 보수층을 결집시키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뭔가 잘못돌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평소와 아무런 변화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도 일부의 사람들은 손에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면서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더 이상 학생들만이 아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줌마들부터 온가족을 이끌고 온 샐러리맨부터 학교에서 나와 거리로 나온 중고등학생들까지. 참여의 폭은 넓어졌다. 그리고 스스로 참여를 즐기고 있다. 더 이상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시위는 볼 수 없다. 촛불을 들고, 끼리끼리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386들은 막거리를 나누고, 연인들은 데이트를 하러 온다. 새롭다.

물론 아직까지도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에 무관심하고, 혹은 시간이 없어서, 용기가 없어서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청계광장이든 시청 앞이든 인터넷이든 정부의 잘못된 발걸음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하나둘 늘어만 가고 있다. 아직까지도 별다른 대책을 강구하지 못한 정부가 단지 시간을 떼우려는 것인지, 아니면 신중하게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루하루 불어나는 시민들의 참여가 있기에 미래는 밝다. 기대해본다. 더군다나 우리는 6월 10일의 기억도 잊지 않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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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관심, 보수, 시위, 용기, 정부, 촛불집회, 행동,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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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와 전경
혼자생각 | 2008/06/02 22:53
'그래도'
문뜩 궁금해졌다. 영어에도 우리나라 말로 '그래도'에 해당하는 말이 존재할까?
쉽게 생각나지 않았다. 한영사전까지 뒤적여보니 'but', 'yet', 'nevertheless' 등이 나오긴 했다. 하지만 이들 단어가 '그래도'란 말을 표현하기엔 어딘가 부족해보인다.
영어에도 없는 '그래도'이란 말, 굉장히 인간적인 단어다.
때로는 고집스럽고, 때로는 맹목적이고, 때로는 희망적이고, 때로는 집착스럽다.

'그래도 우린 친구잖아, 안그래?'
'아무리 그래도 난 너가 좋아.'
'그래도 지구는 돈다.'
'속을 썩이는 아들이지만, 그래도 엄마는 널 사랑한단다.'
'세상살기 정말 힘들다지만 그래도 난 잘 이겨낼거야.'

친구랑 서로 마음이 상한 일이 있어도 친구라는 관계 그 자체만으로도 모든 것이 용서되기에 '그래도'란 말이 쓰이고, (물론 갈릴레오가 한 말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자신이 알아낸 진리를 세상이 몰라주는 서러움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진리를 믿는 갈릴레오에게도 '그래도'란 말이 쓰였다. 또 항상 속을 섞이는 아들이지만 순전히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들을 다시 품에 안을 수 있는 엄마에게도, 아무리 힘든 세상이라 할 지라도 이를 이겨내려 의지를 다잡는 이들에게도 '그래도'란 말만큼 하고자 하는 말을 잘 표현해주는 말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그래도'란 단어가 논리적인 인과관계를 말할 때에는, 다시 말해 어떤 주장의 타당성을 논할 때에는 오히려 '독'이 되기 쉽상이다.

'그래도 이건 잘못됐어.',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그래도 전라도 사람들은 무조건 마음에 안들어.'

이럴 때만큼은 '그래도'란 말 만큼이나 특정한 말의 인과관계를 무기력하게 상쇄시켜버리는 단어도 없다. 특정한 사실이나 주장에는 동조를 하면서도 그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뒷전으로 제껴둔채 '그래도'란 말을 동원해 막무가내로 자신의 생각과 고집을 유지시킨다. 즉, 특정한 인과관계의 타당함을 무시해버린채 자신의 말만 되풀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도'란 말이 갖는 또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말의 앞에 나오는 논리적 사실이나 주장에는 화자가 분명 동의한다는 것이다. 화자 자신이 '그래도'란 말을 사용함으로써 그 이전까지의 말에는 동의한다는 자기 스스로의 맹점을 품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시위여도 그렇게 과격하면 안되지, 그러니까 전경들 또한 과잉진압하는거지.'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이래선 안되지. 그래도 전경들이 그러면 안되지.'

학교에서 우연히 들은 학생들의 대화다. 이 대화에서도 '그래도'란 말이 지닌 맹점이 보인다. 후자의 학생은 앞서 친구가 말한 부분에 동의를 하면서도 무작정 전경들에게 잘못을 전가시키고 있다. 이런 식의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비단 이 학생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주말이 지나고 전경들이 네티즌들의 도마 위에 올랐다. 물론 동영상에 뚜렷히 잡힌 것처럼 도덕성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 전경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경찰 내부에서도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인격적인 문제가 있는 전경도 분명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온갖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긴장 속에서 전경 모두가 하나같이 이성을 지킨다는 것이 더 이상할테다. 하지만 소수일 뿐이다. 이 폭력적 행태를 모든 전경들만으로 전가시킬 수는 없다. 이렇게 폭력을 가하는 전경이 있다면 다른 한 쪽으로는 군복을 입은 예비군들에게 자신들의 난감한 처지를 하소연하는 전경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왜 전경들이 그렇게 과잉진압을 해야했는지, 그리고 왜 그들 또한 시위대 못지 않게 흥분상태에 있어야만 했는지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시위대의 (일부의 과격한 시위대라 생각되지만) 목적지는 청와대였다. 물대포를 맞서야 했던 시위대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유모차를 몰고 촛불집회에 참석하러 온 아줌마나 학생들이 아니었다. 이 시위대는 평화스러운 촛불집회와는 거리감이 있었다. 청와대를 향했고 그 길을 막아선 전경들의 버스를 물리력으로 넘어뜨리고 파손하려 들었다. 그들은 촛불집회에서 갖가지 문화 공연을 보고 서로 자신의 생각을 토론하는 시민들이나 어린 학생들과는 분명 달랐다. 60여 년 전의 4.19도 아니고 민간인으로 구성된 시위대가 청와대로 진입한다는 것은 아찔한 상황이었다. 전경들은 이 절박한 상황 속에 투입되었다. 그들이 시위대에게 길을 내준다면 최고통치자의 집무실이 노출되어버리는 상황이었다. 비록 20%를 밑도는 낮은 지지율이라 할지라도 지금의 대통령은 분명 국민들의 대통령이다. 청와대가 시위대에 노출된다고 하는 것은 국민들에게도 심각한 위기와도 같았다.

'그래도'란 말로는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 볼 여유를 갖기 힘들다.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리고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집회에 나서고 있다. 그들 전체에 대해서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지금 정권은 분명 많은 실정을 하고 있다. 고쳐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 집회를 시위로 만들고 그 시위를 격하게 만드는 소수의 사람들의 대화 방식은 잘못됐다. 그들의 말은 항상 '그래도'이다. 막무가내다. 그들의 방식은 절대 대화가 아니다.

가슴이 아프다. 전의경들이 촛불집회를 벌이는 우리들과 다른 점은 단지 그들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 밖에는 없다. 그들도 군복을 벗으면 우리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행동을 하는 학생이며 20대들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집회나 시위일수록 선동적이고 감정적인 군중심리는 절대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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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광우병, 그래도, 대통령, 대화, 시위, 여유, 전경, 진압, 청와대, 촛불집회,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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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달을 파는 아이 , 달을 잡을 만큼 거인이 될테야 2008/06/03 09:32 x
제목 : 순간 전경이 총들었는줄 알았네, 아.. 십년감수했네..
이건 완전 솥뚜껑보고 놀란 가슴 자라보고 놀란다고.. 저 전경이 든게 총인줄 알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피켓인것같네요.. 부디 저들이 진짜 총을 들고 나오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너거들 때문에 잠도 못자고.." 두두두두두.. 꿈에라도 싫습니다.
조죽희. 2008/06/02 23:49 L R X
글 잘 읽었습니다. (__)
miseryrunsfast 2008/06/03 02:34 L R X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폭력이 정당화되지는 않습니다.
전경이라고 할 것인가, 그들을 포함한 경찰 조직이라고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 경찰 조직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는 데는 동의합니다만, 그러니 '손발은 아무 잘못 없다' 고 할 수는 없습니다. 손발의 경우야 의지를 따르는 도구이지만, 이들은 독립된 인격체이고, 이들에게 있는 인격 자체의 문제들은 하나 둘씩 나타납니다.
똑같은 폭력이라도, 방패 날로 사람 얼굴을 강타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져서는 안 됩니다. 악의에 찬, 분노의 행동과 필요에 의한 행동은 다릅니다. 잘못되었으므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법에 의해서지 직접적인 처벌에 의해서는 아닙니다. 그리고, 그 처벌이 폭력이어서는 더욱 안 됩니다.
아다리 2008/06/03 14:23 L X
옳으신 말씀입니다. 어떤 폭력이든 당연히 정당화될 수 없는거죠.
저는 단지 상황이 불필요하게 감정적으로 치닫는게 아닌가 우려하는 맘에서 해본 말들이었습니다.^^
seo 2008/06/06 21:01 L R X
좋은글 감사합니다.
조금더 생각이 깊어지네요.
유중근 2008/06/28 10:37 L R X
시각을 넓혀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얘기로 이해하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미국놈', '일본놈'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그 사회에 속한 전체가 놈들 천지가 아니란 건 누구나 알고 있지요?
사람 같지도 않는 소수의 쓰레기들이 그 집단을 그렇게 부르도록 규정해 버렸습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지만 주의에 깔린 쓰레기를 걷어내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는 줄기찬 투쟁만이 결국 민주주의를 완성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부조리한 것에 편승하여 사익을 추구하려는 악덕 모리배를 방치해선 안 됩니다.
폭력 일부 전경들이 그랬을리는 없겠지만, 한 예를 들면 대한제국 때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급한 상황인데 도리어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이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럼 흔히들 쓰는 말로 매듭집니다.
- 가슴은 뜨겁게! 대그박은 차갑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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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을 내몰지 마라
혼자생각 | 2008/06/01 16:42

아침부터 인터넷이 뜨거웠다. 모두들 최대 인파가 몰려들 것이라고 예상한 토요일 밤이 막 지난 때였다. 역시나 인터넷은 전날 밤의 뜨거웠던 집회 열기로 달구어져 있었다. 촛불집회 등으로 여론이 거세지자 현 정권도 다방면으로 국정쇄신책을 검토중이라는 속보도 끊임없이 보도되었다. 현 정부가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의 국정쇄신을 추진시킬지는 아직 의심의 여지가 많지만 일단은 들끓는 여론이 촛불집회를 통해 가시적으로 폭발한 덕분인지 정권이 기존의 강경한 태도를 버리고 한 발 물러선다는 것은 어쨋든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일들은 여전하다. 더 이상 집회가 아니라 시위로 변모되어가고 있는 듯 하다. 어제 새벽에는 시위대가 청와대 진입까지 시도했다고 한다. 인터넷에는 삼청동에서 청와대로 가려는 시위대와 이를 막는 경찰간의 충돌이 큰 이슈가 되었다. 시위대가 청와대로의 행진을 시작하자 경찰들은 버스로 길을 막고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물대포를 쏘고 시위대를 해산시키려는 과정에서 많은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 인터넷에는 이 과정에서 부상을 당한 시위대의 사진들과 당시의 생생한 장면을 담은 동영상도 개진되어 있었다. 사진 속 광경은 매우 처참했다.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고, 동영상에서는 경찰의 무자비한 물대포를 맞는 시민들이 무기력하게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분했다. 아무런 힘 없는 학생들이 무기력하게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가슴이 아팠다. 하긴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광경들을 본 누구라도 왠지 모를 슬픔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물론 무자비한 공권력에 짓밟힌 시위대의 처참함은 정말 가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집회가 시위가 되고, 이 시위가 점점 과격해지는 것은 분명 우리가 경계해야 할 상황이다. 왜 촛불집회가 찬사를 받는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촛불집회는 해외로부터도 호응을 얻을 만큼 평화적인 집회다. 촛불문화제라 불릴 만큼 집회 참가자들이 스스로 분위기를 즐기고 이어나가는 성격이 강하고, 갖가지 사회 현안에 대해 마음놓고 자신의 의견을 나누는 토론의 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민주시민들의 축제의 장인 촛불집회가 자꾸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촛불집회 그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어가는 방향으로 흘러가려는 흐름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현 정권인 이명박 정부에 대해 누구보다도 비판적인 시각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또 촛불집회 자체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직접 행동으로 자신의 권리를 증명하는 집회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존경스럽다. 더불어 촛불집회를 강경 진압하고 해산하려 하는 경찰의 태도에도 많은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하지만, 시위대가 청와대로의 진입을 시도했다는 것은 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그것도 한참을 넘어선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쯤되면 인정하긴 싫지만, 평화스러운 촛불집회를 과격한 시위로 변질시키려는 불분명한 세력이 있다는 정부와 여당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아예 무시할 수는 없게 되었다.

청와대로 진입하려다 경찰에 의해 강압적인 진압을 당한 시위대들은 정권이 시대를 역행해 군사독재 시절로 돌아가려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속 피를 흘리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면 이 말이 그럴 듯 해보인다. 하지만 정작 시대를 역행해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은 청와대에 진입하고자 했던 그 시위대가 아닌가 싶다. 이승만 정권에 저항해 경무대 앞까지 들이닥쳐 이승만을 하야시켰던 50여 년 전과는 다르다. 그 당시와 현재의 상황을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만큼 그 당시는 민주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너무나도 잘못된 정권이었고 지금은 그 후 몇 50여 년에 걸쳐 시민들의 지속적인 저항으로 그토록 염원하던 민주화를 실현시킨 민주주의 정국이다. 청와대에 진입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급진적인 혁명이라도 일으키겠다는 것인가. 순수하게 그들 말대로 대통령을 만나 대화를 나누겠다하더라도 이런식으로 물리력을 이용해 무작정 청와대로 들어가 대통령을 만난다는 것은 법과 질서를 심각하게 위반하는 일이다.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 또래가 힘들게 정착시켜온 민주주의의 법과 질서를 말이다.

청와대 앞에서 자행되었던 경찰의 강경 대응은 어찌보면 불가피한 것이었다. 어느 나라의 경찰이 현 정권 최고통치자의 집무실을 시위대가 저항 없이 진입하도록 놔두겠는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경찰의 강경 대응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경찰은 경찰 나름데로 그들의 의무를 충실이 이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민주주의라지만 그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의 최소한의 시스템과 절차는 필수적인 것이다.

평화적이지만 규모있고 열정적인 집회를 통해 시민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의사를 표현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책을 수정하고 좀더 여론을 향해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갖추고, 국회는 시민들을 대변하여 그들을 위한 법안을 만들고 정부를 경계한다. 현재 진행 중인 촛불집회가 갖을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절대 급진적이고 과격한 변화와 혼돈은 필요치 않다. 현재 국가의 시스템에서 권력은 절대적으로 국민으로부터 발생한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과 법, 질서 등을 무시하고 현재의 정국을 감정적이고 폭력적으로만 몰고가는 것은 분명 지양해야 할 것이다.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온 아줌마들, 아이를 목에 태운 아저씨들, 부모형제가 걱정되어 나온 중학생부터 대학생들까지. 기존의 시위와 다르게 이번 촛불집회가 갖는 의의는 매우 크다. 다양한 계층의 참여, 그리고 그들끼리 즐기고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는 문화,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인터넷상에서의 활발한 참여들은 더 이상 최루탄과 돌멩이로 대변되는 저항과는 색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누가 아닌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긍정적인 참여의 형태다. 도대체 촛불집회를 과격한 시위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누군지는 잘 몰라도 더 이상은 용납할 수 없다. 분명 그들은 촛불집회에 의사를 표현하려 온 순수한 시민들을 과격한 시위의 현장으로 몰고 갈 것이 분명하며 이 과정에서 불가피한 공권력과의 충돌을 이용하여 시민들의 감정을 자극해 더욱 급진적이고 과격한 시위로의 양상을 꾀할 것이 분명하다.

'감정'에서 벗어나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 감정적인 대응은 절대적으로 삼가야 한다. 더군다나 많은 사람들이 응집되는 상황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이성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또 그래야만 지금의 정권과 사람들에게 더욱더 설득적으로 어필할 수 있다. 이미 촛불시위는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각 언론들은(물론 의도적으로 관심에서 배제시키는 보수 언론들도 존재하지만) 앞다투어 촛불집회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단순히 집회의 양상에 대해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 집회의 특징과 배경, 그리고 시민들의 목소리 등을 원론적인 수준에서부터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정부도 바짝 긴장해있다. 미군 여중생 장갑차 사건, 탄핵 정국 등 굵직굵직한 사건 등이 있었지만 이미 이번 촛불집회는 그 수준을 넘어섰다. 정부 또한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일부 운동권의 과격한 행동과 시민들에 대한 선동은 반드시 배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번 촛불집회는 정권과 여당이 계속 지적하고 있는 불순세력데 대한 의심의 눈초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좀더 효과적으로 시민들의 목소리를 정부에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을 집회로부터 배제시키지 못한다면 무고한 시민들은 어제의 청와대 앞에서와 같이 과격한 시위의 현장으로 내몰릴 것이며 정부와 시민의 대립은 더욱더 감정적인 갈등의 양상으로 치다을 것이다.

이번 촛불집회는 시민들의 민주주의 축제의 장과 다름없다. 누구한테든 자랑스럽게 찬사받아야 마땅하다. 외환위기 때의 금모으기 운동, 월드컵 당시의 길거리 응원 등을 보며 이미 우리의 역동적인 시민들의 참여 의식을 실감해 왔던 외국 언론들은 이번에는 촛불집회로 높은 시민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우리의 국민들에게 또 한번 놀라고 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금까지 시민들의 모습은 완벽했다. 이제 이 집회를 어떻게 끌고가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정부에 관철시키느냐 역시 시민들에게 달렸다. 보여주어야 한다. 이 시대의 시민들이 얼마나 성숙하고 민주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로부터 나오는 그 힘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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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4.19, 경무대, 경찰, 민주주의, 살수차, 성숙, 시위, 운동권, 이명박, 이승만, 절차, 진압, 청와대, 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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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밤토리니티 2008/06/01 22:00 x
제목 : [문화제와 집회에 대한 법률 해석]
- 시위 : 시위운동의 준말. - 시위운동 : 많은 사람이 일정한 의사, 요구를 표시하며 그 실현을 위하여 집회나 행진등으로 위력을 보이는 운동. 데먼스트레이션(데모) 사회학에서 말하는 학문적인 정의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국어사전에서 말하는 정의로 시위를 정의내리면 위와 같다. 정부는 촛불문화제를 합법적으로 인정했으나 가두행진은 불법으로 못 박았다. 왜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면서 촛불집회나 행진을 불허할까? 우리나라의 집회법을 살펴보면,..
2008/06/01 23:07 L R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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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반항아
혼자생각 | 2008/05/27 23:38

'우리 학교의 급식에서는 미국산 쇠고기를 절대 쓰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 각 학교 교장선생님들의 훈화 말씀에 단골로 등장하는 말이란다. 하긴, 요즘 그 어떤 한마디보다도 학생들에게 큰 꿈과 희망을 주는 말일지어니.

이전까지 길거리 시위는 주로 대학생들과 20대의 몫이였다. 기를 쓰고 미국으로부터 쇠고기를 들어오려는 지금의 정권도 2,30년 전에는 독재정권에 맞서 머리에 띠를 두르고 시위의 전면에 나섰던 대학생들로 채워져있다. 그리고 불과 십여 년 전만하더라도 대학의 캠퍼스들은 감옥을 연상케할 정도로 높은 벽으로 캠퍼스 내부를 감싸고 있었다.

그 후, 대학 캠퍼스의 높은 벽들은 민주화의 바람 아래 허물어졌다. 그리고 대학생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예전처럼 대학 공부는 접어두고 머리에 띠를 두른채 거리로 나와 시위하는 모습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대신 대학생활은 치열해졌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직후 무섭게 몰아닥친 신자유주의의 바람은 대학생들마저도 바꾸어놨다. '요즘의 대학생들에게는 뜨거운 피가 없어.', '캠퍼스의 낭만이 없어졌어.' 요즘의 대학생들을 보고 사회의 어른들이 혀를 차며 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 것이 어디 대학생들의 탓인가. '나이가 40을 넘어선 뒤로는 세상에 대해 투덜거려선 안 된다.'란 말도 있다. 대학생들로 하여금 대학생활 낭만을 만끽할 여유를 빼앗아간 것은 지금의 세상을 만든 그들 자신이 아닌가.

그러던 최근, 대학생들이 당장 졸업 후의 먹고 살아갈 문제에 대해 매달려 있을 무렵, 이번에는 10대들이 좀더 본질적인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학교 울타리에서 벗어나 거리로 나와 당당하게 세상에 향해 그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장점이자 소통의 장, 인터넷을 기반으로 너나 할 것 없이 거리로 나섰다.

그러자 이번엔 '괴담'이란다. 괴담에 따른 철없는 행동이란다. 학교에 공문까지 내려 학생들의 시위 참여를 막으려 한다.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그들 자신이 학창시절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사람들 아닌가. 그런 그들이 정당하게 할 말을 하러 거리로 나온 10대 학생들을 공권력을 투입해 잡아들이고 있다. 신문들은 정작 이 10대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는 커녕 그들의 장인 인터넷의 단점들을 꼬집고, 그 어느 세대보다도 세상과 가장 많은 소통을 나누고 용기까지 갖추고 있는 그들을 괴담에 휩싸이는 분별력 없는 '아이들'로 몰아가고 있다.

그래도 얼마나 기특한 10대들인가. 그들의 형과 언니들이 제도권에 편승하고자 안간힘을 쓰며 도서관 안 개구리가 되어가는 지금, 그들을 대신하여 거리로 나왔다. 박수를 쳐줘도 모자랄 10대들이다. 다행스럽다. 새롭게 들어선 정권, 그리고 그들과 의기투합하고 있는 세상의 '어른들'. 그들 때문에 하루하루가 조용하지 못한 우리네 사회지만, 동시에 그 어느 세대보다도 저항적인 지금의 10대들이 있어서 우리의 미래는 그리 어둡지만은 않은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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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고교생, 광우병, 소고기, 시위, 이명박, 정권, 촛불집회, 학교, 학생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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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있는 그대로 2008/05/28 00:02 x
제목 : 사람 취급 받고 싶다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080527102714587&cp=yonhap&RIGHT_COMM=R1 <`촛불시위'에 다시 시름잠긴 與>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8.05.27 10:27 ... 하지만 요 며칠 새 서울 도심에서 연일 대규모 촛불시위가 벌어지면서 분위기는 반전했다. 이번에는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도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공안정국 회귀'..
Tracked from [임프레스 매거진] 2008/06/03 19:50 x
제목 : 어쩌면 대학생들이 보수적인건 당연한게 아닐까?
현재 한국의 대학생들은 보수적이라고 한다. 촛불시위에 중/고생들도 참여하는데 종종 대학생들을 시위를 비판한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IMF를 겪어본 세대다. 보리고개니 뭐니해서 IMF보다 한국이 어려웠던 적은 많다. BUT! 처음부터 가난하게 살고 쭉 가난한 것과 왠만큼은 살다가 형편이 어려워지는 것. 어느 것이 더 불행할까? 개인적으로 후자라고 본다. 나라에 돈이 없고 집에 돈이 없어서 큰 회사들 부도나는거 눈으로 봤고, 집 평수 줄고, 부모님 이혼하..
G_Gatsby 2008/05/29 05:23 L R X
정치논리로 이번 문제를 접근하는것은 문제가 있죠. 정부의 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 것인데, 이것을 특정 세력 탓으로 몰고가는 것 자체가 우습죠.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Erehwon 2008/05/29 07:44 L R X
이미 시위는 10대가 아닌 20대와 그 윗세대로 교체되었습니다:) 뒷 배력 문제 제기는 항상 있어왔던 것이었구요. 좋은 글 잘 읽고 가겠습니다:)
평범 2008/06/04 10:37 L R X
지난 주말에 나가보니 여전히 힘찬 목소리의 10대들이 많았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더군요.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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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에버와 현대車
혼자생각 | 2007/09/01 22:13
며칠 전, 월드컵 경기장 공원에 갔다가 재밌는 구경을 했다. 경기장 남문 큰 계단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워낙 이 곳이 평소 행사를 많이 하는 곳이겠거니 하고 지나가려는데, 그들은 바로 홈에버 직원들. 얼마 전까지 뉴스에서 연달아 떠들어대던 홈에버 노조와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아닌 홈에버 정직원들이었다. 그들의 요구는 한 마디로 파업 등으로 불법 영업 방해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맹렬히 소수의 극렬 노조원들과 민노총 등 외부 세력을 규탄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정당한 요구이지만 이렇게 서로의 이익, 생존만을 위해 집단 시위를 벌여 서로가 서로를 밀쳐내는 모습이 영 보기 좋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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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비정규직이란 시스템이 분명 바람직하지 않은 모순들을 담고 있는 사회적 문제이다. 따라서 민노총과 민노당이 공권력게 매우 격렬하게 대치하면서까지 이 이랜드 사태를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 점도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최근 민노총을 비롯한 노조가 방법론적인 면에서 너무 극단주의적인 길을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목소리가 사회에 팽배해질 정도로 지금까지 보여준 이랜드 사태에서의 폭력 시위는 그 도가 과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상생. 공존. 어쩌면 현 참여정부의 핵심 키워드. 앞서 말한 듯 심각한 이랜드 사태로 가장 많이 득을 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격렬한 시위로 자신들의 진가를 다시 한번 드러낸 노조들? 이들은 선교봉사단을 납치테러해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고 자부하는 탈레반들과 다를바 없다. 그럼 이랜드 기업의 사측? 그들이야말로 작은 것을 얻고 큰 것을 잃는 우를 범한 장본인들이다. 외주용역화 등의 비정규직화를 통해 얻는 작은 이익을 위해 기업 이미지를 실추시켜버렸고 사내에서 파업과 시위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속태우며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이마트. 유통업계의 라이벌인 이마트가 가장 큰 이익을 얻었다. 상암에서 가장 가까운 이마트 서부점은 전국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이마트였지만, 월드컵 경기장에 홈에버가 들어서면서 이 곳 상권을 양분해갔다. 하지만 홈에버가 이번 사태로 몸살을 앓으면서 다시 사람들은 이마트로 몰리게 되었고 홈에버는 정상 영업에도 불구하고 고객 수가 적어졌다. 비단 이 동네의 현상만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이랜드 사측과 노조, 양측 모두 상생과 공존에 실패하는 바람에 어느 한 쪽의 승자도 없는 패자만의 게임 속으로 빠져들어버리고 말았다.

한동안 잠잠하나 싶더니 역시나 현대차 노조는 때를 기다렸다는 듯 다시 한번 파업을 무기로 봉기했다. 동서남북의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뉴스'이지만 이제 더 이상 현대차 노조의 파업은 말그대로 뉴스가 아니다. 그런데 막 들려오는 뉴스가 새롭다. 현대차 노조가 파업을 유보하고 협상을 재개한다는 것이다. 두둑히 부른 배처럼 될대로 되라는 식의 두둑한 배짱을 부리던 현대차 노조가 한 발 물러선 것이다.
가장 배불른 노조라는 비아냥을 받는 현대차 노조. 이런 비아냥과 더불어 최근 노조에 대한 사람들의 달라진 시각 또한 그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 것이 자의든 타의든 무작정 파업에 돌입하지 않고 다시 한번 사측과 협상을 시도하는 현대차 노조의 자세는 참 다행스럽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급진적 노조들의 격렬한 시위와 파업으로 유명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물론 아직까지 성숙되지 못한 우리나라 재계 또한 많은 단점들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상생이다. 현대차 노조가 파업을 미루고 평화적인 협상 자세를 취하고, 돈성으로 욕을 먹던 이마트 사측이 비정규직 직원 몇 천여 명을 정규직으로 고용시킨 듯이 패자가 없는 양측 모두 승자만이 존재하는 유쾌한 게임을 즐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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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노조, 비정규직, 시위, 이랜드, 이마트, 파업, 현대차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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