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의 배후세력은 그의 헛된 자신감
혼자생각 |
2008/06/08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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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디 넓은 광화문 거리를 비롯해 안국동 사거리, 청계천, 시청 앞, 독립문 등 서울의 중심부가 촛불을 든 시민들의 인파로 꽉찼다. 연휴를 맞이해 72시간 릴레이 촛불집회가 이루어졌고, 하루 10여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연휴 내내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시청 앞 광장에는 난데없는 텐트촌이 형성되었고 밤낮 구분 없는 시민들의 축제의 장이 계속되었다.
연일 이어지는 촛불집회와 떨어지는 지지율, 들끓는 반대 여론도 모자라 보궐선거 참패까지도 모자른 것이었을까. 정부의 태도는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국민들이 그토록 원하는 재협상은 접어둔채 대통령이 대통령에게 전화로 30개월 이상 소의 수입을 제한할 것을 '요청'하였다. 더불어 재협상을 할 경우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며 이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을 나무라고 있다.
"불도저라는 별명이 있던데..."
두 달 전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 당시 부시가 이명박에게 한 말이다. 어쩌면 이 말에 지금 정부가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미국 쇠고기 수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배짱의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명박은 그의 별명인 불도저처럼 굉장한 추진력을 갖고 리더십을 발휘하며 묵직묵직한 사업들을 이룩해낸 전적을 갖고 있다. 그가 한 번 추진할 것이라고 마음 먹은 일이면 그 누구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일을 끝까지 추진시키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가 서울 시장 자리에 있을 때 추진시켰던 몇 가지 사업들은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말았다.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세웠을 때에도 많은 반대가 있었다. 청계천 일대의 상인들에 대한 생존권과 교통 문제, 환경 문제 등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또 시내버스 시스템을 정비할 때도 세금을 낭비한다는 등 많은 이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를 밀어붙였고 결국에는 성공적인 치적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가 한 대기업의 평사원에서 CEO까지 '샐러리맨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과정에 있어서도 그는 실패를 맛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해 축적되었던 그의 자신감은 서울시장의 당선과 청계천 복원의 성공적인 결과, 경선과 대선의 연승으로 더욱 굳건해져왔다. (자격을 잃기도 했지만 국회의원에도 당선된 적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총선에서까지 여당이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그의 자신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바로 이 점이 그를 탄핵으로까지 몰고 가는 시민들의 '배후세력'이 되고 있다. 그에게는 반대를 무릎쓰고도 이에 굴하지 않고 결단력 있게 일을 추진함으로써 성공을 거뒀던 경험이 풍부하다. 미국 쇠고기 수입 고시를 연기하고 청와대 인사 쇄신을 거행하는 등 나름대로 자성의 태도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미국 쇠고기 수입을 성사시킬 가능성은 충분하다. 수만 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와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그의 머릿 속에는 그의 추진력과 결단력을 믿는 헛된 자신감이 좀처럼 자리를 비우려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불도저와 같은 독단적 태도가 바로 촛불집회의 배후세력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의 현 상황이 그가 과거에 견뎌냈던 숱한 반대의 경험들과는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그는 성난 민심에도 불구하고 일단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시키면 시민들의 저항은 잦아들 것이고 오히려 이를 이용해 한미 FTA 협상에서 우리나라가 확실한 협상 카드를 쥐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쇠고기 수입의 여파와 견줄만 한 협상에 있어서의 미국으로부터의 양보를 확실하게 보장 받은 것도 아니고, '주권'문제가 부각될 만큼 쇠고기 수입 결정은 순전히 우리 정부의 양보에 입각한 것이었다. 즉, 여론의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입을 밀어붙일만큼 과연 이후에 이 같은 결정이 그가 운운하는 '국익'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불확실한 것이다.
 또 하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일어서는 이유는 단순히 미국 쇠고기 수입 결정에 반대해서가 아니다. 그가 버리지 못하고 있는 독단적인 국정 수행 방식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청계천 복원 때도, 버스 중앙차로 도입 때도 많은 사람들의 반대 여론이 있었지만 그 당시의 반대의 내용은 주로 그 추진 사업 자체에 대한 내용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좀 다르다. 그는 일개의 시장이 아닌 나라의 살림을 책임지는 최고 국가 통치자의 자리에 있고, 이 자리에 걸맞는 의사소통능력과 민주적인 국정 수행 능력을 보이지 못하는 그에게 시민들은 비판의 촛불을 들고 있는 것이다. 즉, 미국 쇠고기 수입에도 물론 문제가 있지만 그보다 더욱 큰 문제는 바로 그 자신의 독단적인 국정 추진과 의사소통능력의 부재에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대통령과 현 정권이 과연 자각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오히려 연일 터져나오는 측근들의 언행과 보수층의 터무니없는 주장들을 감안해 볼 때 현 정권의 자성적인 태도에 대한 기대는 무의미한 것처럼 보인다. 한 달이 넘었는데도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과 정부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욱 늘어나고만 있다. 6월 10일을 맞아 시민들과 진보세력들은 대대적인 집회와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이 자신들의 오만함과 독선적인 측면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정권과 시민들의 충돌은 불가피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대대적인 충돌은 양측의 깊은 갈등과 불신을 낳을 것이 뻔하고, 이 갈등과 불신은 훗날까지 우리 사회의 깊은 상처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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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snowall@melotopia 2008/06/08 23:53 x
제목 : 소크라테스의 변명
GRE도 끝난 김에, 집에 처박혀 있던 미독서적들을 읽으려고 책장 첫칸부터 안읽은 책들을 찾았다. 거기서 가장 처음에 걸린 책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다. 오오... 한눈에 보기에도 지루하고 고전적일 것 같은 제목이다. 내용은 소크라테스가 고발당해서 사형당할때 까지의 이야기와, 소크라테스가 참석했던 어느 잔치에서 했었던 연설을 모아둔 것이다. 저자는 무려 플라톤. 그를 고발한 자들은 그가 무신론자이고 청년들을 선동하여 죄악에 빠지도록 했다는 혐의로.. |
Tracked from TransAussie 2008/06/09 18:50 x
제목 : 문제는 국민에 대한 태도입니다.
이건희 전 회장이 삼성의 준천재급 인재라고 하는 참여정부 최장수 '천재장관'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이 한 강연 서두에서 '얼음을 깨려고' 꺼낸 100점짜리 인생이라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선 알파벳 A부터 Z까지 차례로 1~26점까지 점수를 매겨보면, 흔히 인생 성공에 중요한 것이라 생각되는 Knowledge, Money, Luck 는 각각 96, 72, 47점이 된다고 합니다. 과연 100점 인생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100점을 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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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을 내몰지 마라
혼자생각 |
2008/06/01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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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인터넷이 뜨거웠다. 모두들 최대 인파가 몰려들 것이라고 예상한 토요일 밤이 막 지난 때였다. 역시나 인터넷은 전날 밤의 뜨거웠던 집회 열기로 달구어져 있었다. 촛불집회 등으로 여론이 거세지자 현 정권도 다방면으로 국정쇄신책을 검토중이라는 속보도 끊임없이 보도되었다. 현 정부가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의 국정쇄신을 추진시킬지는 아직 의심의 여지가 많지만 일단은 들끓는 여론이 촛불집회를 통해 가시적으로 폭발한 덕분인지 정권이 기존의 강경한 태도를 버리고 한 발 물러선다는 것은 어쨋든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일들은 여전하다. 더 이상 집회가 아니라 시위로 변모되어가고 있는 듯 하다. 어제 새벽에는 시위대가 청와대 진입까지 시도했다고 한다. 인터넷에는 삼청동에서 청와대로 가려는 시위대와 이를 막는 경찰간의 충돌이 큰 이슈가 되었다. 시위대가 청와대로의 행진을 시작하자 경찰들은 버스로 길을 막고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물대포를 쏘고 시위대를 해산시키려는 과정에서 많은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 인터넷에는 이 과정에서 부상을 당한 시위대의 사진들과 당시의 생생한 장면을 담은 동영상도 개진되어 있었다. 사진 속 광경은 매우 처참했다.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고, 동영상에서는 경찰의 무자비한 물대포를 맞는 시민들이 무기력하게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분했다. 아무런 힘 없는 학생들이 무기력하게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가슴이 아팠다. 하긴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광경들을 본 누구라도 왠지 모를 슬픔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물론 무자비한 공권력에 짓밟힌 시위대의 처참함은 정말 가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집회가 시위가 되고, 이 시위가 점점 과격해지는 것은 분명 우리가 경계해야 할 상황이다. 왜 촛불집회가 찬사를 받는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촛불집회는 해외로부터도 호응을 얻을 만큼 평화적인 집회다. 촛불문화제라 불릴 만큼 집회 참가자들이 스스로 분위기를 즐기고 이어나가는 성격이 강하고, 갖가지 사회 현안에 대해 마음놓고 자신의 의견을 나누는 토론의 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민주시민들의 축제의 장인 촛불집회가 자꾸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촛불집회 그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어가는 방향으로 흘러가려는 흐름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현 정권인 이명박 정부에 대해 누구보다도 비판적인 시각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또 촛불집회 자체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직접 행동으로 자신의 권리를 증명하는 집회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존경스럽다. 더불어 촛불집회를 강경 진압하고 해산하려 하는 경찰의 태도에도 많은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하지만, 시위대가 청와대로의 진입을 시도했다는 것은 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그것도 한참을 넘어선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쯤되면 인정하긴 싫지만, 평화스러운 촛불집회를 과격한 시위로 변질시키려는 불분명한 세력이 있다는 정부와 여당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아예 무시할 수는 없게 되었다.
청와대로 진입하려다 경찰에 의해 강압적인 진압을 당한 시위대들은 정권이 시대를 역행해 군사독재 시절로 돌아가려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속 피를 흘리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면 이 말이 그럴 듯 해보인다. 하지만 정작 시대를 역행해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은 청와대에 진입하고자 했던 그 시위대가 아닌가 싶다. 이승만 정권에 저항해 경무대 앞까지 들이닥쳐 이승만을 하야시켰던 50여 년 전과는 다르다. 그 당시와 현재의 상황을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만큼 그 당시는 민주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너무나도 잘못된 정권이었고 지금은 그 후 몇 50여 년에 걸쳐 시민들의 지속적인 저항으로 그토록 염원하던 민주화를 실현시킨 민주주의 정국이다. 청와대에 진입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급진적인 혁명이라도 일으키겠다는 것인가. 순수하게 그들 말대로 대통령을 만나 대화를 나누겠다하더라도 이런식으로 물리력을 이용해 무작정 청와대로 들어가 대통령을 만난다는 것은 법과 질서를 심각하게 위반하는 일이다.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 또래가 힘들게 정착시켜온 민주주의의 법과 질서를 말이다.
청와대 앞에서 자행되었던 경찰의 강경 대응은 어찌보면 불가피한 것이었다. 어느 나라의 경찰이 현 정권 최고통치자의 집무실을 시위대가 저항 없이 진입하도록 놔두겠는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경찰의 강경 대응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경찰은 경찰 나름데로 그들의 의무를 충실이 이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민주주의라지만 그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의 최소한의 시스템과 절차는 필수적인 것이다.
평화적이지만 규모있고 열정적인 집회를 통해 시민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의사를 표현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책을 수정하고 좀더 여론을 향해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갖추고, 국회는 시민들을 대변하여 그들을 위한 법안을 만들고 정부를 경계한다. 현재 진행 중인 촛불집회가 갖을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절대 급진적이고 과격한 변화와 혼돈은 필요치 않다. 현재 국가의 시스템에서 권력은 절대적으로 국민으로부터 발생한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과 법, 질서 등을 무시하고 현재의 정국을 감정적이고 폭력적으로만 몰고가는 것은 분명 지양해야 할 것이다.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온 아줌마들, 아이를 목에 태운 아저씨들, 부모형제가 걱정되어 나온 중학생부터 대학생들까지. 기존의 시위와 다르게 이번 촛불집회가 갖는 의의는 매우 크다. 다양한 계층의 참여, 그리고 그들끼리 즐기고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는 문화,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인터넷상에서의 활발한 참여들은 더 이상 최루탄과 돌멩이로 대변되는 저항과는 색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누가 아닌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긍정적인 참여의 형태다. 도대체 촛불집회를 과격한 시위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누군지는 잘 몰라도 더 이상은 용납할 수 없다. 분명 그들은 촛불집회에 의사를 표현하려 온 순수한 시민들을 과격한 시위의 현장으로 몰고 갈 것이 분명하며 이 과정에서 불가피한 공권력과의 충돌을 이용하여 시민들의 감정을 자극해 더욱 급진적이고 과격한 시위로의 양상을 꾀할 것이 분명하다.
'감정'에서 벗어나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 감정적인 대응은 절대적으로 삼가야 한다. 더군다나 많은 사람들이 응집되는 상황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이성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또 그래야만 지금의 정권과 사람들에게 더욱더 설득적으로 어필할 수 있다. 이미 촛불시위는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각 언론들은(물론 의도적으로 관심에서 배제시키는 보수 언론들도 존재하지만) 앞다투어 촛불집회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단순히 집회의 양상에 대해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 집회의 특징과 배경, 그리고 시민들의 목소리 등을 원론적인 수준에서부터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정부도 바짝 긴장해있다. 미군 여중생 장갑차 사건, 탄핵 정국 등 굵직굵직한 사건 등이 있었지만 이미 이번 촛불집회는 그 수준을 넘어섰다. 정부 또한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일부 운동권의 과격한 행동과 시민들에 대한 선동은 반드시 배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번 촛불집회는 정권과 여당이 계속 지적하고 있는 불순세력데 대한 의심의 눈초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좀더 효과적으로 시민들의 목소리를 정부에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을 집회로부터 배제시키지 못한다면 무고한 시민들은 어제의 청와대 앞에서와 같이 과격한 시위의 현장으로 내몰릴 것이며 정부와 시민의 대립은 더욱더 감정적인 갈등의 양상으로 치다을 것이다.
이번 촛불집회는 시민들의 민주주의 축제의 장과 다름없다. 누구한테든 자랑스럽게 찬사받아야 마땅하다. 외환위기 때의 금모으기 운동, 월드컵 당시의 길거리 응원 등을 보며 이미 우리의 역동적인 시민들의 참여 의식을 실감해 왔던 외국 언론들은 이번에는 촛불집회로 높은 시민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우리의 국민들에게 또 한번 놀라고 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금까지 시민들의 모습은 완벽했다. 이제 이 집회를 어떻게 끌고가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정부에 관철시키느냐 역시 시민들에게 달렸다. 보여주어야 한다. 이 시대의 시민들이 얼마나 성숙하고 민주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로부터 나오는 그 힘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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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밤토리니티 2008/06/01 22:00 x
제목 : [문화제와 집회에 대한 법률 해석]
- 시위 : 시위운동의 준말. - 시위운동 : 많은 사람이 일정한 의사, 요구를 표시하며 그 실현을 위하여 집회나 행진등으로 위력을 보이는 운동. 데먼스트레이션(데모) 사회학에서 말하는 학문적인 정의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국어사전에서 말하는 정의로 시위를 정의내리면 위와 같다. 정부는 촛불문화제를 합법적으로 인정했으나 가두행진은 불법으로 못 박았다. 왜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면서 촛불집회나 행진을 불허할까? 우리나라의 집회법을 살펴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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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운동권'에게 고한다
혼자생각 |
2008/05/29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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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택시를 탔다. 적막한 택시 안에서 라디오 뉴스가 또렷하게 들렸다. '지금 이 시간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로 인해 종로와 동대문 일대 도로가 정체되어있습니다....광화문 앞과 종각까지의 도로는 마비 상태입니다.' 그러자 기사 아저씨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에이, 아무리 시위라지만 일하는 사람들까정 방해하면 안되지." 세상의 민심을 가장 잘 읽는 사람들이 바로 택시 기사 아저씨들이라는데, 그들 중 한 명은 촛불집회에 나선 시위대를 향해 혀를 찼다. 당연히 국민들의 우려를 대신해 행동하고 있는 촛불집회 시위대를 두둔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일리있는 말이었다. 아무리 촛불집회이고 시위이고 좋지만, 최소한 생계에 바쁜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가는 행동은 되도록 삼갔어야 했다. 의도야 어떻든 차로를 모두 막고 행진을 벌이는 것은 좀 자제했어야 했다. 촛불집회가 외신들에 의해 보도되기까지 할 정도로 호응을 얻었던 점은 촛불이 담고 있는 '평화'의 덕이 컸다. 그런데 이 평화시위를 무단 차로 점거 등과 같은 불법시위로 전락시켜서는 안 될 것이었다.
오늘 아침 강의를 들으러 강의실에 들어섰다. 강의가 시작되기 전, 몇몇 학우가 들어오더니 전단지를 나눠주면서 오후에 있을 학생총회와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헌데 집에 와서 촛불집회에 대한 뉴스를 보던 도중 그 학우가 나누어주었던 전단지가 민주노동당이 배포하는 선전물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수하게 학생회에서 만든 전단지 같았는데 아니었다. 물론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러기에는 한구석이 찜찜한 기분이었다.
'배후세력이 있다.' '불건전한 세력이 집회와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현재 이명박 정권이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들이다. 집회를 통한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보다는 집회에 배후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구실로 오히려 집회에 참여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을 강제 진압하고 있다. 물론 평화로운 촛불집회를 강제로 해산하고 참여자들을 강제 연행하는 것은 과잉 진압임이 분명하지만 배후세력이 있다는 현 정권의 음모설은 과연 '설'에 불과한 것일까.
'운동권'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급진적인 색깔을 갖고 있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흔히 '운동권'이라 부른다. 대표적인 정당으로는 민주노동당을 꼽을 수 있겠고, 민주노총, 전교조, 한총련 등의 세력 또한 모두 소위 '운동권'에 속한다. 87년 이후 급격히 진행된 민주화로 잠깐 그 뚜렷한 노선을 잃기도 했지만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거세진 이후 다시금 세력을 가다듬고 응집하여 우리 사회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는 그들이다. '경쟁'이 점차 중요시되는 사회에서 '평등'을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는 분명 우리 사회에 꼭 필수적인 요소다.
순수한 시민들의 집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된다.
하지만 최근의 이른바 '운동권'의 행동은 정말 실망스럽다. 그들의 고질적인 행태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현되었다. 현 정권에 반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시민들이 조금이라도 응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항상 그들이 나타난다. 어쩌면 시민들의 순수한 행동들을 그들의 정치적 야욕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그들의 버릴 수 없는 습성인가보다. 6여 년 전 미군 장갑차 사건 때도 그랬고, 한미FTA에서 지금의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까지, 과연 진보가 맞나 할 정도로 그때만큼은 국민들의 민족주의적 감정을 교묘히 건들여 자신들의 정치 구호 아래 이용해버린다.
문제는 더 있다. 지금의 정권의 그들과 정치적으로 정반대의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이다. 운동권 그들이 얼마나 완벽한 논리를 갖춘 주장을 펼지라도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세력이 그들의 주장에 수긍해줄 가능성은 제로다. 그들과 정권은 상극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서로의 서로에 대한 신뢰가 전무하다. 이런 그들이 촛불집회를 전면에 나서 선동하고 주도한다면 과연 이 집회의 효과가 나타날까 의문이다. 오히려 지금 정권이 떠들고 있는 것처럼 '배후세력이 있다'는 식으로 공권력에 의한 과잉진압의 구실이 될 뿐이다. 그리고 정권의 무분별한 시위 진압은 시민들과 정부 사이에 감정과 폭력만이 얼룩지도록 만들 것이 뻔하다. 물론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바도 일리가 있는 논리다. 하지만 그 논리를 사회에 접목시키는 방법과 과정이 틀렸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시민들의 전면에 나설만한 권리도, 시민들과 정권의 대립을 과격하게 만들 권리도 없다. 단지 사회의 한 부분에서 그들 나름대로 그들만의 목소리만 내면 그만인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시민들의 구호로 쓸 것인가는 그들이 아닌 시민들의 몫이다.
더 이상 '중심 없는 시위'를 더럽히지 마라.
'운동권'은 더 이상 시민들의 순수한 촛불집회를 이용하고자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촛불집회는 중심없는 시위로 큰 반향을 낳고 있다. 이전까지의 시위나 학생운동에서는 중심 역할을 하던 배후세력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모바일 통신의 발달로 정치에 대한 시민 참여는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다. 중심이 없고, 주동자도 없고, 선동세력도 없다. 시민들 각 개인의 참여적 행동의 의지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고 인터넷과 모바일 통신은 단지 그 의지들을 하나로 응집시켜주는 역할만을 담당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집회에 외신들은 앞다투어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 아름다운 시민들의 참여를 그들의 야욕으로 얼룩지게 해서는 안된다. 시민들의 민주적 참여는 성스런 성역이다. 그 누구도 이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
미국의 위험성 높은 소를 수입하려는 정권을 말리고 싶은 그 간곡함만큼이나 순수한 촛불집회를 더럽힐 여지가 있는 운동권 그들에게도 간곡하게 말하고 싶다. 제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용기있는 행동들이 헛되는 일은 없도록 신중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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