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영 즐기기, 괜찮을까?

대중은 아주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저지른 잘못을 망각하고 되풀이한다. 일체의 고민도 반성도 없다. 진중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가벼운 사고와 행동들뿐이다. 지금의 이명박을 만들어낸 것은 이명박 본인이나 현 정권도 아니다. 바로 우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에게 손가락질과 욕지거리를 서슴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전 우리들 스스로가 지금의 그를 만들어놓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혹은 잊으려 하면서 말이다.

우리의 선택,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없었다. 그가 어떤 정치이념을 갖고 있는지, 혹은 어떤 색깔의 정책을 펼칠 것인지, 어떤 가치관과 철학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은 늘 뒷전이었다. 잘 먹고 살게 해주겠다는 짧은 한 마디에 경도되어, 혹은 특유의 만성적인 무관심과 귀찮음 때문에 불과 몇 개월 후 크게 땅을 칠 선택을 하고 말았다. 역시 그리고 여전히, 대중은 단순하고 가볍다.

그리고 우리들의 이 가벼움과 단순함이 ‘허경영’이라는 또 다른 괴물을 만들어내었다. 그저 인터넷으로 시간을 죽이는 네티즌들의 커뮤니티를 통해서, 웃기거나 가십적인 것이 주요 관심사가 되는 요즘의 세태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더 자극적인 것, 선정적인 것만을 찾으려는 매스컴을 통해서 그는 엄청나게 큰 괴물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대선 당시 상식 수준 밖의 공약을 내세웠던 그의 대담함은 어느새 자신을 초인적 존재로 여기는 사이비 교주의 수준으로까지 도달했다. 이런 반응을 얻으리라고는 그 본인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을 실제로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단순한 가십거리로 혹은 가벼운 웃음의 대상으로 넘길 뿐이다. 허풍이나 거짓말인줄 알면서도 그저 그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허경영을 대하는 태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단순한 즐김 이면에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우리의 못된 버릇이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허경영 신드롬의 이면에 그의 사기행각으로 금전적 손해를 입은 사람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허경영 이외에도 사기꾼은 도처에 널려있다. 그는 단지 이런 사기꾼들에 비해 큰 스케일을 갖고 있을 뿐 사기꾼에 비해 별다를 바 없는 존재다. 정작 우리가 되짚어봐야 할 것은 스스로가 허경영 신드롬을 만들고 허경영에 열광하는 우리들 자신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허경영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인 것이다.

사람들은 답답하고 무능하고 부패하기만 한 현재의 정치 세태를 비꼬면서 그를 ‘현실 정치’란 말과 대비시킨다. 그런데 사실 이 ‘현실 정치’란 말도 참 웃기다. ‘현실 정치’란 말에 따라 그럼 현실을 전제하지 않은 또 다른 정치의 영역이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정치와 현실은 불가분의 것이다. 정치는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또 피해서는 안 될 현실 그 자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허경영에 열광하면서 정작 관심 가져야 할 것에는 ‘현실 정치’란 말처럼 요상한 울타리를 쳐놓고 스스로를 멀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습관화된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무기력함, 귀찮음 등등. 따지고 보면 우리가 그토록 싫증을 내는 현 정치 세태 또한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현실에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그리고는 되려 허경영 같은 별난 인물을 통해 그 현실을 비웃고 있는 모습이다. 단지 재미 삼는다는 미명 아래 말이다. 이렇게 실컷 비웃고 난 후 남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다시 계속되는 현실 회피뿐이다.

물론 사회에 대한 풍자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허경영은 빈말이든 정말이든 그 본인이 정치에 참여하려 한다는 점에서 풍자처럼 보이진 않는다. 또 그만한 수준도 보이지 않는다. 설령 풍자라 할지라도 지난 대선 그에게 표를 준 10만여 명의 사람들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들은 풍자와 가십, 그리고 정작 자신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정치라는 영역을 올바르게 구분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분명 이들 중 대부분은 현재 정치인들의 모습에 실망하여 허경영에게 투표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어 댔을 것이다. 이런 그들의 행동이 지금의 실망스런 정치판을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조금 더 진중할 수는 없었을까. 일반 연예인들보다도 못한, 단순한 사기꾼에 불과한 인물을 과대포장하고 이를 즐기기엔 아직 우리에게 할 일이 너무나 많이 남아있다. 신경 쓸 일이 아니,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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