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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
삶의이유 | 2008/05/25 23:34
스포츠가 스포츠만의 의미를 넘어설 때가 있다. ‘한일전’만 해도 그렇다. 축구, 야구 등 가릴 것 없이 어느 종목에서든 일본과의 경기는 우리에게 단순한 스포츠 경기, 그 이상이었다. 너도나도 경제적으로 힘겨웠던 시절, 먼 이국땅으로부터 전해져오는 박찬호, 박세리 선수의 승전보 또한 우리 국민들에게는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얼마 전, 5.18 광주항쟁 28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28년 전 독재정권에 의해 무자비한 탄압을 받아야만 했던 광주인들, 넓게는 호남인들에게도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선 존재였다. 광주사태를 일으키며 권력을 쥐게 된 전두환 정권은 3S(sports, sex, screen) 정책을 실시하면서 국민들을 상대로 일종의 우민화 정책을 시도했다. 이 정책의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 중 하나가 바로 프로야구였다. 82년 지역 연고제를 기초로 출범한 프로야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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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광주를 연고로 한 해태 타이거즈는 가장 많은 인기를 몰고 다니는 팀이었다. 광주를 비롯한 호남사람들은 자신의 지역을 대표하는 타이거즈에게 환호하고 열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호남사람들은 그들의 철천지원수였던 전두환이 탄생시킨 프로야구에 가장 열정적인 호응을 했던 것이다. 물론 이 아이러니만이 그들의 울분과 자존심을 분출시킬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을 테지만 말이다.

전두환 정권도 열광적으로 타이거즈에 열광하는 호남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정책 성공을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프로야구 출범 당시 해태 기업은 광주 야구팀 창설에 소극적이었을 정도로 해태 타이거즈는 그렇게 주목받던 강팀이 아니었다. 삼성과 같이 막대한 자금력으로 무장한 팀들이 쟁쟁했다. 하지만, 호남인들의 열렬한 열기 때문이었는지 해태 타이거즈는 거의 매년 프로야구를 재패하며 그 어떤 팀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강팀이 되어버렸다. 그들의 무기는 화끈한 정신력과 투지였다. 잘하는 팀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지사. 해태 또한 ‘전국구’팀이라 불릴 만큼 호남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 팬들이 많아졌다. 이는 전두환 정권도 예상하지 못했을 터, 타이거즈는 호남인들의 울분을 대신하듯 매년 엄청난 경기력을 선보였다.

그러던 와중, 공교롭게도 처음으로 걸출한 호남인이 정권을 잡는 순간부터 타이거즈는 그 힘을 잃기 시작했다. 처음 정권교체를 이룩한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는 98년, 99년 이후부터 타이거즈는 우승권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갔고, 최고의 명문 구단이라는 칭호는 퇴색되어져갔다. 급기야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최하위를 기록하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다.

주적을 잃은 탓일까. 굳이 야구만을 통해서 자존심과 열망을 분출해야할 필요가 없어져서 이었을까. 타이거즈의 열기가 예전만 못해진 것은 사실이다. 과거 울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년의 스타들은 이제 한두 명뿐이 남지 않았다. 하지만, 한 때 호남인들의 표상이지 자존심이었던 타이거즈, 지금은 비록 왕년의 빛을 잃었다 하더라도 단순한 스포츠팀 그 이상을 넘어섰던 이 얼마나 멋진 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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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꽃 2008/06/02 13:29 L R X
저는 서울 태생입니다만 ..
김봉연, 김성한 선수 좋아했지요. 해태 타이거즈 왕팬 ..

초딩 때 해태 영 타이거즈 회원으로도 가입 .. ^^
현명 2008/09/05 16:32 L R X
님..해태타이거즈 전력이 약해진 이유는
정권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해태'라는 타이거즈의 모기업이 심각한 재정난을 격으면서 핵심 선수와 코칭스태프들이 대거 이탈했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으니 좋은 신인들을 뽑을수도 없었죠..그때 놓친게 광주일고출신 박재홍이구요. 서재응이나 최희섭 김병현같은 연고지역의 좋은 선수들이 해외로 눈을 돌린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응원하던 팀의 모기업이 바뀌고 이름이 바뀌고 열렬하게 응원했던 선수들은 다른팀 옷을 입고..팀칼라도 바뀌고..그러면서 많은 팬들이 상실감을 느꼈던걸로 압니다. 그 시기가 우연히도 김대중정부와 맞아떨어지긴 하지만..말이야 붙이면 얼마든 그럴듯 하다 해도, 객관적인 사실은 아셔야지요...
아다리 2008/09/07 00:22 L X
옳은말씀이어요. 무엇보다 해태타이거즈의 전력 누수가 심해지고 결국 기아로 팀명이 바뀌게 된 것은 모기업의 재정난이 악화되었던 탓인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죠. 이 점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저는 그냥 그 당시 시대의 흐름을 떠올려보니 우연이든 그렇지 않든 해태의 흥망성쇠와 뭔가 관계가 있어 보이길래 글을 써본 것 뿐이에요.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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