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꾸거 로꾸거 '금산분리'

Posted at 2008/12/25 10:51// Posted in 에세이


올해 여름, 우리나라의 한 은행이 아시아 최고의 투자은행을 꿈꾸며 야심차게 미국의 거대 투자은행을 인수하려했다. 물론 일이 원활히 성사되지 않으면서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렸지만 당시에는 큰 이슈가 되었던 일이였다. 문제는 그 미국의 투자은행이 몇 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파산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냥 조용히 파산한 것도 아니었다. 여기저기 엄청난 피해와 손실을 주며 파산해버리는 바람에 세계 경제가 흔들릴 정도였다. 이젠 워낙 유명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이야기다.

자산 규모니, 신용등급이니 갖가지 머리 아픈 통계자료들을 들이댈 필요 없이도 우리나라 은행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적나라하게 말해주고 있는 이야기다. 하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원래부터 국내 은행들의 신용평가에 대한 수준은 유명했다. IMF를 통해 국내 은행들의 낮은 대출금 회수율은 물론 금융권이 얼마나 부실한 수준이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울며 겨자 먹기로 고금리를 통해 겨우 체질개선에 성공하나 싶었는데 미국발 금융위기다 키코다 뭐다 하면서 다시금 휘청거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금산분리를 완화하겠다는 것이 현 정권과 집권당의 최우선 전략이란다. 물론 금산분리 환화를 주장하는 입장들,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미 OECD국가들 중에서는 금산분리를 폐지 혹은 완화하고 있는 국가들이 더 많고 지금 같이 경기가 위축되어있는 시점에 금산분리 폐지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유동성을 타파해보자는 취지는 사실 그리 틀렸다고만은 볼 수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경우 금산분리는 시기상조일 수밖에 없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국내 은행들의 불안한 신용평가나 부실 정도가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은 시점에서 대기업들이 국내 은행들의 주 자금줄이 된다면 그 후의 일은 불 보듯 뻔하다. 우선 IMF를 통해 피까지 봐가면서 겨우 뿌리뽑아간다 싶었던 대기업의 문어발식 경영이 부활하게 될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고금리로 살을 깎는 아픔을 통해 이루어냈던 체질 개선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고 대기업들의 부채비율이나 금융권의 부실화 정도는 IMF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귀할 것이다.

금산분리에 대한 논쟁은 절대 ‘진보 대 보수’의 대결이 아닌 ‘독점 대 반독점’의 논쟁이다. 규모의 경제라는 미명 하에 독점을 미화시키는 것은 굉장한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의 독점은 단순한 대기업들에 의한 수준을 넘어선다. 현 정권의 억지스런 고환율 정책에서도 볼 수 있듯 대기업에는 꼭 정부가 끼어든다. 다시 말해, 금산분리 완화에 의한 금융, 산업의 독점이 단순한 대기업의 독점이 아닌 정부와 대기업간의 정경유착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늘 대기업을 영향력 하에 두고 싶어 하면서 경제를 쥐락펴락하고자 했던 정부였는데 이제는 대기업을 통해 금융권까지 손을 대고자 한다면 현재 겪고 있는 고환율의 부작용보다 몇 배 큰 부작용을 겪어야 할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중소기업 또한 문제다. 우리나라 경제 구조의 특성 중 한 가지는 바로 산업 구조의 상당 비중이 대부분 영세 기업, 기업이라고 하기도 좀 뭐한 영세 작업장이라는 점이다. 양극화라는 시대적 이슈는 기업들도 피해갈 수 없었다. 대기업들은 점점 더 몸집을 불려가고 중소기업들은 점점 더 영세해져만 갔다. 오죽하면 대선마다 나오는 공약이 ‘중소기업 살리기’일까. 헌데 금산분리 폐지는 이런 중소기업들에게는 더욱 더 가혹한 현실만 가져다주게 될 것이다. 대기업 위주로 돌아가는 은행들 중에서 과연 중소기업들이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제2, 제3의 KIKO 사태가 없으리라 장담하지 못하는 것이다.

‘금산분리를 폐지 혹은 완화하면 지금 은행권에 잠식해있는 외국계 자본들을 몰아낼 수 있다.’ 금산분리 폐지 혹은 완화를 주장하는 집권당의 주요 논리 중 한 가지다. 하지만 이 주장 또한 그들이 자신이 평소 그렇게 외쳐댔던 금융자유화, 외자 유치 등을 생각하면 그다지 논리적이지 못하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들이 그렇게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사고를 했다고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인지 새삼스러울 뿐이다. ‘외자는 우리 경제 성장의 원동력’임을 그렇게 외쳐댔던 그들이 조금 과장하자면 이제는 외자를 몰아내자니.

아무리 바람직한 정책일지라도 사회가 이 정책을 수용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으면 그것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것이다. 아무리 좋은 안경을 가지고 있으면 뭐하나, 본인이 앞이 안 보이는 장님인데.

자꾸 거꾸로만 향하고 있다.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로 신념과도 같았던 신자유주의는 환상임이 들어났다. 규제 완화와 자율성 보장 등은 돈놀이만 성행하는 부실화를 초래하였다. 은행을 국영화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미국 유럽 할 것 없이 전 세계가 금융권에 대한 규제를 부활시키고 있다. 그런데, 현 집권당은 지금의 불경기에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인지, 그냥 무식한 것인지 남들이 오래전 실패한 길을 걷기 시작하겠단다. 가뜩이나 정신 바짝 차려야 할 지금, 그들만의 이해관계에 얽혀 자꾸 잘못된 길을 선택하고 거꾸로 역행하는 모습을 보자니 너무나 답답한 마음 뿐이다.
  1. 2008/12/25 23:01 [Edit/Del] [Reply]
    정말 걱정입니다. 이명박 캠프를 지배하다시피 한 삼성 사람들이 박정희때 빼앗긴 은행을 찾아오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박영선 의원이 폭로한 바 있습니다.
  2. 2008/12/26 09:16 [Edit/Del] [Reply]
    어익후.. 갈수록 태산이네요. 이건 뭐 동에 번쩍 서에번쩍 뻥뻥 터지니 정신이 없군요. 홍길동도 아니고..
  3. 2008/12/26 23:05 [Edit/Del] [Reply]
    혹시...어떤 사건이 터져도 사람들이 무덤덤해 지게 하려는 고도의 전략? +_+ ....일리가 없지만. ㅎㅎ
    • 2008/12/27 00:29 [Edit/Del]
      정말 이번에 입법안은 엄청난 악법들이 들어있어서 걱정이에요..그중 몇개라할지라도 입법된다면 안될텐데요ㅠ
  4. 2008/12/28 12:30 [Edit/Del] [Reply]
    정치에 관심 가진지가 얼마 안되서 민주당이 지금 법안 통과 막아보려고 점거하고있다고 하던데.. 그거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건지, 답답하네요 ㅜㅜ
    • 2008/12/28 22:14 [Edit/Del]
      휴..걱정이죠, 다들 경제살리기 슬로건에 속아서 다수당 만들어줬더니 정반대로 재벌들만 살리기 급급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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