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ope the Pacific is as blue as it has been in my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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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 에 해당하는 글13 개
2008/08/28   '은평구' 신사동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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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 신사동
혼자생각 | 2008/08/2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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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 심지어 서울에 사는 사람들조차도 서울에 신사동이란 동네가 두 곳이 있는 줄은 잘 모른다. 대부분 신사동이라 하면 부자 동네로 유명한 강남구 신사동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지하철 3호선 신사역도 바로 이 곳에 있다. 하지만, 서울에 신사동이란 동네가 또 있다는 사실은 거의 대부분 모른다. 원래 서울시에서 신사동이란 지명이 먼저 사용된 곳은 은평구 신사동이었다. 1949년 서대문구의 관할 아래 서울로 편입되면서 신사리였던 동네 지명이 신사동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후 서대문구가 은평구로 분리되면서 지금의 은평구 신사동이 확정되어졌다. 강남구 신사동은 1963년 경기도 새말리, 사평리 마을이 합쳐져 신사동이란 이름으로 성동구에 편입되어지면서 서울시 관할이 되었다.

"신사동 말고, 은.평.구 신사동으로 가주세요, 기사님"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고 나중에 신사동으로 서울에 편입된 강남구 신사동은 원래 서울의 신사동을 밀어내고 유명한 강남의 메카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신사'라는 지하철 역 이름도 먼저 선점해버리는 바람에 우리 동네의 지하철 역 이름은 '신사'라는 한자 이름을 우리말로 풀이한 '새절'역이 되어버렸다. 백이면 백 '신사동'이라 하면 강남구 신사동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덕분에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택시를 탈 때 꼭 '은평구'란 말을 붙이거나 옆동네 이름을 대도록 철저하게 교육 받으며 자랐다.

그런데, 서울에 세번째 '신사동'이 생기려 하고 있다. 관악구 신림4동 지역 주민들이 공식 지명을 '신사동'으로 바꾸려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단다. 공식 지명이 아닐 뿐이지 이미 오래전부터 지역 주민들은 신림4동이란 말을 줄여서 '신사동'이란 지명을 사용해왔다고 한다. 때문에 신림4동이란 지명을 편의에 따라 '신사동'으로 개정하는 것을 관악구에서 추진하고 있단다. 하지만, '신사동'이란 브랜드 네임을 보유하고 있는 강남구에서 관악구의 추진안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이미 신사동이란 지명이 한 곳도 아니고 두 곳이나 있기에 지명을 '신사'로 바꾸는 것은 타 지자체들의 여러 혼선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물론 신림4동 주민들 입장에서 볼 때, 기존의 지명보다 강남구 신사동 덕분에 부유해보이고 잘사는 동네처럼 보이는 '신사동'이란 지명은 굉장히 매력적일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에는 이미 신사동이란 지명이 두 군데나 있다. 지금도 같은 지명 덕분에 여러모로 혼선이 잦은데, 같은 이름의 지명이 한 군데 더 생긴다고 하면 큰 불편이 야기될 것이 분명하다. 이미 우리집은 신사동이란 지명 덕분에 여러 번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김치를 택배로 시켰는데, 그 김치가 담당자의 실수로 강남구 신사동을 거쳐서 늦게 오는 바람에 다 쉬어버린 적도 있었고, 강남구 신사동 담당 택배 아저씨가 잘못 분류된 택배 물품을 전해주러 우리집까지 찾아오는 수고를 했던 적도 있었다.

난 어렸을 때 '신사동 그 사람'이란 노래 제목이 우리 동네 신사동을 가리키는 줄 알고 신기해 했었다. 가뜩이나 같은 이름인데도 여러 모로 꿀리는 점이 많아 서러운 우리 '은평구 신사동' 주민들인데, '신사동'이란 지명이 또 생길지도 모른다는 소식은 별로 달갑지 않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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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강남구, 관악구, 동네, 서울시, 신림4동, 신사동, 은평구,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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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실이 2008/08/29 11:18 L R X
저도 이 기사 봤었어요~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신사동이 세곳이라니..
정말 택시탈 때는 관할 구 이름을 먼저 말해야겠어요.
하긴 말하지 않아도 택시아저씨가 먼저 물어보겠지만요.
아다리 2008/09/01 23:21 L X
같은 시안에 같은 지명 세곳은 너무하죠ㅎㅎ
지금 겪고 있는 불편도 이미 충분해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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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야구, 그건 행운이었다
삶의이유 | 2008/08/23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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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하다. 지나고 나니 9회말 만루상황도 포수 강민호의 퇴장도 모두 한 편의 드라마를 위한 극적인 소스였나보다. 한일 월드컵 이후로 처음 텔레비전 앞에서 포효를 했다. 짜릿하다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경기마다 정말 극적인 승부를 연출했던 우리나라 대표팀, 9전 전승의 거침없는 돌풍을 일으킨 우리나라 대표팀, 자존심 대결이었던 일본전에서 승리하고, 이전까지의 대결에서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아마 최강 쿠바를 결국 꺾어버린 우리나라 대표팀, 이들이 더욱 자랑스러운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우리나라 프로야구. 물론 월드컵 이후 국내의 축구 열기 또한 굉장히 높아졌지만, 본래부터 국내 프로 스포츠를 이끈 종목은 축구가 아닌 야구였다. 8,90년대 프로야구의 열기는 정말 대단했었다. 히딩크 감독도 처음 우리나라를 '야구의 나라'라고 묘사했을 정도였다. 기업들의 구단에 대한 투자도 활발했고, 무엇보다 팀마다 지역 연고가 완벽하게 자리잡았다. 뛰어난 성적의 스타들도 꾸준히 배출되어 프로야구의 흥행을 붓돋았다.

이처럼 겉으로는 굉장한 성공을 한 것처럼 보이는 국내 프로야구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국내 최고의 프로 스포츠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은 열악한 점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고 있다.  영화 '우생순'으로 비인기 스포츠 종목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핸드볼. 물론 핸드볼과 야구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스포츠 규모나 관중 흥행, 인프라 등 모든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인 관점에서는 프로야구 또한 그 열기나 관중 수, 실력 수준에 비해 상당히 열악한 환경과 조건을 가지고 있다.

야구인들이 입을 모으고 있는 것은 구장 문제다. 국내 프로야구는 이십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지만 정작 각 구단의 구장 상황은 너무나도 열악하다. 그나마 쓸만한 구장은 서울의 잠실구장과 인천의 문학구장 뿐, 나머지 구장들은 시설이나 규모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낙제점을 받고 있다. 대부분의 구장들이 1만여 석이 겨우 넘는 작은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신생 구단인 히어로즈의 경우는 아마추어 대회가 열렸던 코딱지만 한 목동구장을 홈으로 사용하고 있다. 목동구장은 외야석이 아예 없다. 규모만이 문제가 아니다. 잠실구장과 문학구장을 제외한 모든 구장들이 관중들을 위한 편의시설이나 선수들이 사용하는 라커룸, 불펜 등의 부족문제를 겪고 있다. 두 번 연속 우리에게 패배한 일본이지만 일본 프로야구가 갖고 있는 돔구장과 최신 시설이 구비된 여러 대규모 구장들을 보면 그들이 왜 자신들이 세계 최고라 떠드는지 알만하다.

잠실야구장 외야석 입장료 3000원, 주차료는 4000원

구단과 지자체와의 관계도 심각한 문제다. 미국이나 일본은 구단과 그 구단 연고지의 지자체가 상당히 협력적인 관계로 발전되어있다. 서로의 윈윈전략에 따라 지자체는 적극적으로 구단을 지원하고 구단은 과감한 투자를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구단과 지자체의 관계는 매끄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다른 나라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구단이 구장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구단과 지자체가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경기를 할 때마다 구단은 지자체에 상당한 세금을 내야하며, 구장을 조금이라도 확장하거나 리모델링을 할 때도 구단은 지자체의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 구단들은 이런 지자체의 갖가지 규제에 큰 불만을 갖고 있는 반면, 지자체들은 자금력이 좋은 대기업들로 이루어진 구단들의 소규모 투자에 큰 실망을 하고 있다. 부정적인 구단과 지자체의 관계가 끊임없이 악순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정도로 세계적 실력을 갖고 있는 국내의 야구 선수들 또한 실력에 비해 푸대접을 받고 있다. 비단 연봉 문제만이 아니다. 구단이나 구장의 열악한 조건은 선수들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구장 중 상당 수가 아직도 인조잔디다. 선수들이 슬라이딩을 하다가 화상을 입기 일쑤다. 목동구장의 불펜은 외야 펜스 바깥에 있다. 불펜에서 대기 중이었던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려면 야구장을 나가서 외곽 주차장을 통해 경기장으로 다시 들어와야만 한다. 다른 구장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구장이 열악한 라커룸이나 대기실 시설을 가지고 있고, 선수들 또한 이런 상황에 불편을 느끼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는 현실이다. 오죽했으면 붕괴위험이 있는 야구장에서 선수들이 목숨을 담보로 훈련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겠는가.

열악한 환경 속에 동메달을 따낸 여자 핸드볼 팀을 향해 우리는 '기적'이라 말한다. 하지만 이번에 금메달을 따낸 우리나라의 야구 대표팀 또한 '기적'이라 말하고 싶다. 그들이 경쟁했던 미국이나 일본, 쿠바, 대만 등과 비교했을 때 야구 대표팀 또한 너무나 열악한 환경을 갖고 있었다.

"명장도, 용장도, 맹장도, 지장도 아닌 복장입니다."

김경문 감독이 허구연 해설위원과의 대화에서 한 말이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어쩌면 우리 대표팀은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열악한 조건 속에서 행운의 우승을 거머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이 행운이 지속될 수는 없는 일이다. 올림픽에서의 또 한 번의 금메달, WBC에서의 우승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프로야구에 대한 지원이 시급하다. 이는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미 SK와 인천시는 서로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으로 성공의 케이스를 남겼다.

우리가 좀 더 노력하면, 우리가 진정으로 보고 즐길 프로야구를 발전시킨다면, 우리는 오늘과 같은 야구의 재미를 매일매일 지역 야구장에서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전승으로 올림픽 우승을 하겠다던 일본 감독처럼 우리나라 감독 또한 국내 야구 수준이 세계최고임을 자부하는 순간이 우리에게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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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구단, 금메달, 대만, 미국, 스포츠, 야구, 야구대표팀, 야구장, 올림픽, 일본, 지자체, 쿠바,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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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Pell's seer Blog 2008/08/24 01:09 x
제목 : 한국야구 오늘은 축제의 날, 역시 괴물 류현진
9회말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으로 만루가되고 이에 주심에게 강하게 어필하던 포수 강민호가 퇴장을 당하게 된다. 그 때까지는 금메달은 저 멀리 도망간듯 했다. 구원투수로 나온 정대현이 투낫싱 상황에서 정말 기막히게 멋진 공을 던져 병살을 일구어내었다. 그순간 아파트 단지내에 놀람과 기쁨의 탄성이 메아리쳤다. 드디여 금메달이다. 그 함성에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금번 올림릭 경기동안 매순간이 드라마였지만 오늘은 최고의 이야가를 만들어 주었다. 역시..
laballade 2008/08/24 07:52 L R X
실시간으로 봐서 좋았겠어요ㅜㅜ 여기선 야구 소식이라곤..전혀...태권도 심판때린것만 계속 틀어주고--;
아다리 2008/08/24 10:02 L X
마지막에 극적으로 승리가 확정될때 정말 온 동네가 떠들썩했어요ㅎㅎ
실시간으로 보셨으면 분명 소리지르고 환호했을텐데~
복실이 2008/08/25 20:41 L R X
감동적인 순간이었죠.
진짜 최악의 상황이었는데 말이죠.
야구란 이런 것이죠.
아다리 2008/08/29 01:08 L X
그러니까요, 무슨 야구 만화 보는것 같았어요ㅋㅋ
정말 야구의 참 맛을 다시 또 알게 되었죠!
녹알 2008/08/26 07:49 L R X
사실,,오래전부터 야구를 사랑해왔고, 많이 주춤하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가..
여러모로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음 합니다..
아다리 2008/08/29 01:09 L X
저두요, 이번 우승 계기로 프로야구도 많이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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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와 패자, 그리고 오심
삶의이유 | 2008/08/22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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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29일 아테네 올림픽 덴마크와의 여자 핸드볼 결승전 경기.
이미 영화로도 제작되어질 만큼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기억에 남는 명승부였다. 4개의 실업팀과 2개의 대학팀. 국내의 여자 핸드볼 팀의 갯수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과 조건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핸드볼 팀은 결승전까지 오르는 선전을 펼쳤다. 그리고 덴마크와의 결승전에서 우리나라는 올림픽 3연패를 노리는 강팀 덴마크와 비등한 경기 내용을 보이며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는 시소게임을 펼쳤지만, 마침내 승부던지기에서 아쉽게 지고 말았다.

그 후 4년이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우리나라 여자 핸드볼 팀은 다시 한 번 4년 전 못 이루었던 금메달의 꿈을 이루기 위해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4년 전의 아쉬움을 풀기 위한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우리나라 핸드볼 팀은 좋은 경기 내용을 보이며 선전했고 준결승까지 순항을 이어갔다. 그리고 어제 있었던 노르웨이와의 준결승 경기. 세계랭킹 1위의 강팀이었다. 빠르고 재치있는 우리나라 선수들이었지만, 북유럽 특유의 건장한 체격과 힘 앞에서는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고전했다. 거구의 노르웨이 선수를 막으려면 우리나라 선수 두세 명이 달라붙어야 할 정도였다. 작은 점수차였지만 노르웨이가 경기를 리드해갔고 경기가 끝나기 불과 몇 초를 남겨둔 채 우리나라가 동점을 만드는 극적인 승부를 연출하기도 했지만, 경기는 더 극적이게도, 버저 소리와 함께 노르웨이 선수의 손을 떠난 공이 우리나라 골대에 들어가면서 노르웨이의 승리로 끝이 났다.

하지만 우리나라 선수단은 심판의 판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한동안 경기장을 떠나지 못했다. 노르웨이 선수들이 승리의 세레모니를 하고 라커룸으로 돌아갈 때까지 우리 선수들과 코치, 감독은 넋을 잃은 채 경기장 내에 남아있어야만 했다. 각 중계방송에서는 리플레이 화면을 보여주며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공이 경기 시간이 지난 후 우리나라 골대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앞다투어 보여주었다. 캐스터와 해설자들은 말을 잇지 못했고, 이를 지켜보던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모든 국민들은 4년 전을 떠올리며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국내에서는 경기 오심에 대한 논란이 들끓었다. 리플레이 장면이 골이 아님을 분명히 증명하고 있는데도 골로 인정한 심판진들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일었다. 4년 전 결승전에서의 편파 판정까지 논하면서 이대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말들이 많았다.

물론, 편파 판정은 존재한다. 심판들이 고의로나마 한 쪽에 유리한 판정을 하는 것이다. 이 때의 심판의 판정에 대한 균형은 가운데가 아닌 어느 한 팀에 더 가까워진다. 대표적인 것이 홈어드벤테이지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편파 판정이 있었다. 동메달을 거부한 스웨덴 레슬링 선수가 중국 선수와의 경기에서 겪었던 것도 중국 홈어드벤테이지에 의한 편파 판정이었다. 우리나라 남녀 핸드볼 팀 또한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할 위기를 맞이한 적도 있었다. 올림픽 아시아 예선이 있었던 중동에서의 편파 판정 때문이었다. 중동 심판들은 자국의 올림픽 출전을 위해서 노골적으로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불리한 판정을 내렸다. 한편, 우리나라 선수가 편파 판정에 항상 피해를 본 것만은 아니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88년 서울에서 열렸던 서울 올림픽에서 복싱으로 금메달을 딴 박시헌 선수는 우리나라의 편파 판정으로 금메달을 딴 대표적인 선수로 지금까지 거론되고 있다. 편파 판정은 심판진의 의도가 개입되었다는 점에서 당연히 없어져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노르웨이와의 준결승전에서 편파 판정은 없었다. 경기가 시작되어서 끝날 때까지 심판들의 판정은 공정했다. 아니, 적어도 공정에 가까웠다. 특별히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불리한 판정을 내렸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문제는 마지막 노르웨이의 슛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슛 또한 골로 인정되어질만 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리플레이 비디오에서는 0.01 초 차이로 경기가 끝난 후 공이 우리나라의 골대로 들어갔지만, 그 찰나의 순간을 잡아낸 것은 심판이 아닌 리플레이 비디오였을 뿐, 심판이 0.01 초의 차이를 인지했을지는 만무하다. 심판이 기계가 아닌 이상 골이 성립되는가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고, 심판의 판단과 재량에 따라 결정되어져야만 했던 순간이었다. 아쉽게도 심판은 자신의 재량으로는 골을 인정하는 판단을 내린 것이었을 뿐 어떤 고의적인 편파 판정은 없었다. 아주 작은 차이의 오심일 뿐이었다. 인간적인 오심 말이다.

오심은 명백히 경기의 일부다. 스포츠란 인간들의 것이다. 이미 인류는 거의 모든 스포츠 경기에 대한 오심을 없앨 수 있는 과학적 기술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인 심판이 판정을 내리고, 끊임없는 오심을 반복한다. 가장 유명한 스포츠인 축구. 여기저기서 축구에 비디오 판정 등의 첨단 장비들을 이용한 판정을 도입하자는 말들이 나온다. 하지만 FIFA의 대답은 항상 'No'이다. 축구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영역에 과학적 기술을 빌어올 수는 없단 이야기다.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유명한 '신의 손' 사건. 명백한 마라도나의 핸들링 골이었다. 누구나 그 골이 잘못된 골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시의 경기 판정을 뒤엎진 않는다. 오심도 인간이 행하는 경기의 일부라는 것이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는 그만

항상 심판 판정이 우리의 손만 들어줄 수는 없다. 88년 올림픽이나 2002년 월드컵에서처럼 우리나라가 심판 판정에 의해 득을 보는 경우도 있는 반면, 올림픽 핸드볼 아시아 예선에서처럼 우리나라가 심판 판정에 의해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다. 더군다나 이번 여자 핸드볼 준결승 경기의 경우, 인간이었던 심판에게 오심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짧은 순간이었고, 오심이었다 하더라도 오심 또한 어쩔 수 없는 경기의 일부다. 우리는 이번 올림픽을 통해서 승자 못지 않게 아름다웠던 패자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승자의 승리를 인정해주고 박수를 쳐주는 아름다운 패자들 말이다. 한 점 차로 아쉬운 은메달을 걸어야 했던 우리나라 남자 양궁 선수는 중국 응원단의 비신사적인 응원 매너에도 불구하고 금메달을 딴 중국 선수를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모습으로 중국인들의 찬사를 받았다. 아쉬운 마음은 도무지 감출 수 없지만, 우리나라 여자 핸드볼 선수들에게도 그런 모습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패배를 인정해주고 승자를 축하해줄 수 있는 여유로움, 그것이 스포츠 강국으로서 우리나라가 보여주어야 할 면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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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FIFA, 노르웨이, 스포츠, 오심, 올림픽, 축구, 편파판정, 핸드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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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트루미디어24 2008/08/23 02:07 x
제목 : 오심의 주인공, 핸드볼 감독관 크리스터 알은 누구인가?
알고보니.. 오심의 주인공은 바로 핸드볼 협회의 '경기규칙 심판위원회' 회장! 대한민국과 노르웨이 경기에서 매우 중요한 마지막 순간에 문제가 되는 골에 대해서 심판들도 감독관 그리고 서기관들과 이야기 하면서 잘 모르겠다는 의사를 알리자 고개를 끄덕끄덕 걸리면서 노르웨이의 노골을 골로 강력하게 인정해준 턱이 토실토실한 감독관을 기역 할 것이다. 그의 이름은 크리스터 알(Christer Ahl)이고 나이는 63살로 국적은 미국인으로써 우리에게 오심을 준..
Tracked from 秒速24frames 2008/08/23 04:20 x
제목 : 韓國 女 양궁 개인전 7連覇 달성 실패, 그러나...
이번 여자 양궁 개인전에서 우승 유력 후보였던 한국의 박성현 선수를 누르고 금메달을 딴 중국의 장연연(张娟娟) 선수. 박성현 선수는 은메달을, 윤옥희 선수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매번 효자 종목이라 하여 올림픽에 나오면 항상 금메달을 따온 대한민국 양궁. 특히 여자 개인전은 이번 베이징 올림픽 이전까지 여섯번이나 금메달을 석권할 정도로 항상 그 실력을 뽐내왔었다. 매번 올림픽과 각종 세계 무대의 정상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아왔고, 또 어떠한 상황에서도..
Tracked from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세상 2008/08/23 08:32 x
제목 : 불의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또 한 번의 오심이 우리를 울렸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여자핸드볼 준결승전에서 한국선수단이 노르웨이 선수단에게 석연찮은 패배를 당한 것이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야구 준결승전에서의 오심 패배,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안톤 오노로 인해 당한 김동성의 실격,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체조에서 양태영의 은메달, 2006년 독일월드컵 스위스전에서의 패배에 이은 이번 오심 패배는 2년마다 거듭되는 오심의 악몽을 다시 한번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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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인 코리아
혼자생각 | 2008/08/21 02:27

어느새부터인가 '뉴라이트'란 말이 세간에 떠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곧 온갖 방송들과 신문들의 지면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럴만도 했다. 외환위기 이후 정권교체가 처음으로 이루어지고, 뭔가 새로운 것들을 해줄 것만 같았던 젊은 386 세대들이 정치의 중심에 대거 합류했다. 정치계에서도 혁신의 바람이 부는 듯 했다. 그러자 이와는 반대로 보수 정치세력과 언론들은 점차 '수구꼴통'의 이미지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대선에서의 잇달은 패배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보수세력에게는 뭔가 새로운 방식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리고 '뉴라이트'는 그런 그들의 새로운 카드였다.

'뉴라이트'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우선 기존의 '수구세력'과는 거리를 두려 애썼다. 같은 보수적 색채를 띄고 있지만 '뉴라이트'는 같은 보수 속에서도 혁신과 개혁을 추구했다. 정형근 전 의원과 같은 인물로 대표되는 독재정권으로부터 뿌리를 두고 있던 '구보수'세력과는 차이를 두려 했다. 보수진영의 발목을 잡고 있던 어두웠던 과거 시절로부터 탈피하고, 대중들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도세력을 흡수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의 새로운 보수의 주류적 흐름이 되고자 한 것이다.

그들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가 연달아 집권함에 따라 왼쪽으로 무너진 사회의 균형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운동권 세력의 성장, 노조의 영향력 확장, 국가 보안 기강의 해이, 효용적이지 못한 경제 규제 등을 문제 삼고 이는 현 우리 사회의 위기적 상황이라 진단했다. 그리고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유주의적 보수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뉴라이트'가 사회로의 직접적인 영향력 행사를 실행해야만 한다는 논리였다. 1980년대 영미권에서 처음 발생했던 '뉴라이트'의 움직임은 신자유주의의 출현으로부터 그리 자연스럽지 못하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했던 비유대로 '빵'보다는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동시에 '뉴라이트'의 본질적인 인식이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실 최근 몇 년 간 국내에서 일었던 '뉴라이트'의 열풍은 설득력있어 보였다. '빵'에 중점을 두었던 지난 십 년 간의 정권에 비해 이제는 '자유'에 더 무게를 실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그럴싸했다.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지난 몇 년 간의 '뉴라이트'는 결과론적으로 성공적이었다. 무엇보다 10년만에 정권을 다시 되찾아왔다. '뉴라이트'가 전면으로 부각되었던 지난 대선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들이 내세운 후보는 보수진영의 대표적 모델인 산업화세력이었지만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실력'이 입증된 기업인 출신이었고, 이런 기업인 출신 대선 후보라는 점은 '뉴라이트'와 얼버무려져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의 참신한 인물로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최근 '뉴라이트'의 행보는 새로운 보수의 흐름으로서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매우 실망스러워져 가고 있다. 얼마 전 또 다시 붉어진 독도 문제로 현 정권이 일본의 우경화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사실 우경화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 현 정권 자신도 그리 자유롭지 못한 것은 별 차이가 없다. 본래 기존의 구보수세력과는 차별을 두려 애쓴 그들이지만 정권을 잡은 후로 그들의 정치 방식과 국정 운영책은 구보수세력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뉴라이트'의 기조 아래 우선적으로 그들이 사회의 균형을 다시 되찾고자 벌인 사업은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이었다. 노무현 정권 때 잡음을 냈던 대미관계를 다시 그 이전의 상태로 완벽 복원하는 것이 '뉴라이트'가 말하는 사회의 균형 잡기의 첫 걸음이라 여겼을까, 냉철한 시각에서 보더라도 미국에게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하는 졸속 협상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고자 했고, 이는 곧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던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 후, 기나긴 촛불의 행진으로 정부는 어렵게나마 미국과의 재협상을 재개시키고, 국민들과도 어느 정도의 협상점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차 촛불 집회에 대한 여론이 예전만 못하게 되자, 그들은 촛불 집회를 반격의 계기로 삼아 급진적인 진보 진영을 몰아세우기 시작했고, 굳건한 공권력 앞에 무너진 진보연대와 같은 진보 진영은 군사 정권 이후 처음으로 '탄압'과도 같은 '탄압'을 받아야만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언론을 장악하고자 하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방송통신위원장을 차지하더니, YTN의 사장 자리 또한 직원들의 반대 등 여러 잡음에도 불구하고 노골적으로 차지하였고, '뉴라이트'의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였던 KBS 정연주 사장도 끝내 해임시켜버렸다. 정치 검찰도 부활시키는 듯 하다. 대선까지 나왔던 야권의 유력 국회의원이 체포 직전까지의 상황에 몰렸다. 그들이 외치는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와는 정반대의 길이었다. 외면적으로는 구보수세력과의 차별을 강조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구보수세력과 구보수세력이 사용했던 방법론적인 방식을 똑같이 차용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네오콘'과도 비교되고 있는 지금의 '뉴라이트'의 현실이다.

건국일을 따로 국가기념일로 제정하겠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과거의 수구 세력과는 그토록 차별을 두고 싶어 했던 '뉴라이트'세력이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과거 수구 세력의 전통성을 기념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더 이상 '뉴라이트'가 아니다. 말만 번지르르한 '뉴라이트', 새로운 혁신적 보수주의,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일 뿐 그저 몇 십 년 전 과거와 다를 바 없는 수구세력의 연장선이다.

올림픽이 한창이다. 올림픽에서의 우리나라 선수의 선전, 그리고 금메달 획득은 그 어떤 때보다도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통쾌하게 만든다. 우리 선수가 금메달을 딸수록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올림픽 스타들도, 스폰 기업들도 아니다. 바로 현 정권이다. 금메달이 하나 둘 늘어나고 우리나라가 선전할수록 현 정권의 지지도 또한 동반 상승하고 있단다. 물론 본의는 아니겠지만, 올림픽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보고 있는 현 정권을 보면서, 이십 여 년 전 우리나라가 떠오르는 것은 비단 유쾌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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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군부정권, 금메달, 뉴라이트, 보수, 수구세력, 언론, 올림픽, 자유주의, 정권, 정치,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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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스타, 해설자로서의 성적은?
혼자생각 | 2008/08/17 22:41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의 신문선, 홍재익 콤비.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의 ‘빠데루 아저씨’ 김영준 교수.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의 차범근, 차두리 부자와 김성주 아나운서.

이들의 공통점, 스타 선수들 못지않은 인기를 모았던 스타 캐스터, 해설자였다. 히딩크의 4강 진출로 축구의 열기가 뜨겁던 2002년 여름,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홍재익 캐스터와 신문선 해설위원의 만담에 가까운 중계방송은 축구를 보는 2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질 정도였고,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상대 선수에게 ‘빠데루 줘야 합니다’라는 김영준 해설위원의 한 마디는 날카로우면서도 시원스러웠다. 그리고 재작년 의도치 않은 재밌는 실수와 척척 들어맞는 호흡으로 수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독일 월드컵의 중계방송로 인해 김성주 아나운서는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여러 스타 선수들이 탄생한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아쉽게도 스타 해설위원은 탄생하지 않고 있다. 유도, 양궁, 축구, 탁구, 레슬링, 배드민턴 등 수많은 종목들에서 수많은 해설자들이 캐스터와 호흡을 맞추며 중계방송을 했지만 아직까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중계방송은 나타나질 않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공중파 방송 3사에서는 각자 중계방송을 위해 굵직굵직한 해설위원들을 초빙했다. 주로 지난 올림픽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던 선수 출신의 해설위원들이었다. 선수 출신이라는 메리트는 굉장히 커보였다. 무엇보다 불과 몇 년 전에 직접 올림픽에 참가해서 좋은 성적까지 냈던 직접적인 경험을 갖고 있었고, 그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경기의 분위기, 상대 선수들에 대한 정보 등을 상세하게 풀어낼 이야기꺼리도 많이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 나서고 있는 현역 선수들의 선배로서 개인적인 친분을 갖고 있다는 점도 시청자들이 잘 모르는 뒷이야기들을 구수하게 전달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으로 보였다. 아직도 한판승을 따내던 모습이 생생한 유도의 이원희 선수에서부터, 격투기 선수인지 연예인인지 분간이 안가는 추성훈 선수, 레슬링의 심권호 해설위원, 신궁이었던 김수녕 해설위원, 배드민턴의 방수현 해설위원, 여자 농구의 전주원 선수, 그리고 영화 ‘우생순’의 실제 주인공인 핸드볼 임오경 해설위원까지. 이름만 들어도 우리 국민들을 설레게 했던 올림픽의 영웅들이 이제는 해설위원으로 다시금 국민들에게 ‘뭔가’를 해줄 것만 같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와는 상당히 달랐다. 수많은 스타 출신 해설위원들 중에서 누가 날카로우면서도 재치 있는 중계방송으로 제2의 ‘빠데루 아저씨’로 등극할 것인지 한껏 관심을 모았으나, 거의 대부분의 해설위원들이 국민들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왕년에는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지만, 해설위원으로서는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모두들 해설위원 각자의 ‘네임벨류’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경기 해설을 보여준 것이다.

가장 컸던 것은 역시 전문 해설위원과의 경기 해설 능력에 대한 수준 차이였다. 목소리 톤이나 말을 이어가는 능력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었다. 해설자로서 경험이 부족했기에 하고자 하는 말이 있어도 그 말들을 자연스럽게 이어나가지를 못했다. 군데군데 캐스터의 도움을 빌려 겨우 해설을 진행시키거나 캐스터의 물음에 짧은 말로 답할 뿐이었다. 목소리 톤도 부자연스러웠다. 전문 해설자와 달리 경기 중 흥분할 때가 잦아지면서 목소리 톤이 방송에 맞지 않게 높아질 때가 많았다. 시청자들에게 텔레비전 방송으로서는 뭔가 어색한 목소리였다.

해설 내용이 너무 감정적인 면에만 치우친 것도 문제였다. 애초 선수 출신이라는 점이 직접적인 경험자로서 많은 메리트를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이런 예상과는 반대로 해설의 내용이 차분하고 분석적이지 못하고 다분히 개인적이거나 감정적인 내용으로 치우쳤다. 모든 해설은 우리나라 선수와 우리나라 팀에 집중되어졌다. 박태환 선수가 출전한 경기에서는 해설자가 박태환 선수에 대한 이야기만 하느라 다른 선수들은 거의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우생순’의 실제 주인공으로 관심을 모았던 임오경 해설위원의 경우, 경기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해설자’로서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 선수들에게는 끈끈한 투지가 있습니다! 정신력을 발휘하여 정말 잘 뛰어주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선수들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십시오!’ ‘상대 선수들 참 더티한 플레이를 하는군요.’ 순전히 이런 이야기들뿐이었다. 상대 선수들은 항상 악역이 되었고, 어떠한 동작을 취하더라도 모두 신사답지 않은 플레이로 취급되었다. 해설자로서의 기본적인 경기 분석도 전무했다. 덕분에 핸드볼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경기가 진행되는 한 시간 내내 은퇴 선수의 일방적인 응원 문구만을 들어야했다.

올림픽, 4년에 한 번 열리는 그 어느 대회보다도 높은 수준을 자랑하는 대회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최고의 수준을 발휘하면서 자웅을 겨룬다. 그런 대회를 중계해주는 해설 또한 최고의 수준이어야 함은 당연하다. 더군다나 인터넷 등 각종 매체가 발달하면서 일반 시청자들 또한 경기를 읽을 줄 아는 수준급의 능력을 갖게 되었다. 흥분만 잘하면 열정적인 해설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간단하다. 날카로운 분석 아래 우리가 몰랐던 점들을 정확히 집어주고, 여러 이야기들을 구수하게 풀어내면서 시청자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해설, 우리는 그런 중계방송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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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경기, 방송, 분석, 심권호, 올림픽, 임오경, 중계방송, 해설위원, 해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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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 Sixteen Nineteen Say
혼자생각 | 2008/08/16 23:44

나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그렇다고 성당이나 절에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개신교에 대한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다. 자그마치 6년 동안이나 미션스쿨에서 학교생활을 했다.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종교가 없으셨다. 그래서인지 나 또한 종교에 대해서 무관심했다. 그러다가 개신교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종교라는 것을 처음 접해보게 되었다. 아침 조회마다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했다. 수업시간표에는 예배 시간도 있어서, 교회로 올라가 다 같이 예배를 했다.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했다. 거북스럽기보다는 접하지 못했던 처음 해보는 것에 대한 낯설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사람들이 말하는 ‘믿음’이나 신앙을 갖진 않았지만 딱히 거북스럽지도 않은 하루하루였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개신교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 저 노래. 학교에서 많이 불렀던 복음성가 중 하나였다. 목요일 아침 1교시는 전교생이 교회에 모이는 예배시간이었다. 그 예배 시간 중 2,30분 남짓은 밴드와 선생님의 열창으로 복음성가를 부르는 시간이었다. 계속 반복적으로 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복음성가는 처음 듣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멜로디도 낯설지 않고 무엇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나같이 딱히 ‘믿음’이 없던 아이들도 자신도 모르게 그 복음성가를 흥얼거릴 때가 많았다. 그리고 찬송가와는 달리 신나는 노래들이 많았다. 교회 강당에 모인 대부분의 아이들이 노래를 따라 불렀는데 모두 신앙심이 깊어서 그랬기보다는 그냥 일주일 중에 한 번 서로 깔깔거리면서 있는 힘껏 목청을 높여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즐거웠다. 이것이 제목인지는 모르겠지만 ‘Roman Sixteen Nineteen Say'로 시작하는 노래도 그런 노래들 중 하나였다. 노래가 가리키고 있는 것이 어떤 성경 구절이고 그 성경 구절은 무슨 교훈을 가지고 있는지 하나도 몰랐다. 딱히 알 필요도 없었다. 수험생이라는 틀에 박힌 일상에서 오는 고단함을 날려버리기라도 하듯 그냥 서로 미소를 지으며 즐거워하면서 목청껏 노래를 불러대는 것이 좋았다.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서로 그때의 추억을 못 잊어한다.

아침 조회 시간에는 반 아이들이 담임선생님과 기도를 했다. 나는 그 기도가 좋았다. 반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담임선생님의 한 마디 한 마디에는 간절한 진심이 느껴졌고, 몸이 안좋거나 좋지 않은 일이 생긴 친구가 생기면 반 전체가 그 친구를 위해 눈을 감고 기도해주는 것도 좋았다. 한 번은 내가 우리 반의 기도를 맡아서 한 적이 있었다. 한 번도 기도를 해보지 않았던 내가 여기저기 귀동냥으로 들었던 기도문들을 떠올리며 기도를 시작하자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이 ‘오~’라는 감탄사를 연발했던 기억도 있었다. 찬송가 경연대회에서 되든 안 되든 친구들 전체가 하나가 되어서 합창을 하는 것도 좋았고, 종교 과목 시간에 성경의 순서를 외우는 법을 알려준다며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로 시작하는 노래를 불러주신 목사님의 구수함도 좋았다. 아침 조회시간에 찬송가와 성경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지막지한 몽둥이질을 받아야만 했던 것도 싫지 않았다.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교회에 간 날, 새로운 신자를 환영한다며 수백의 사람들 앞에 나 홀로 일어서 있었던 불편했던 일요일도 이제는 스윽 웃음이 나온다. 아, 생각해보니 그때 나를 교회로 끌고 가다시피 했던 친구는 선교를 많이 했다고 교회에서 라디오를 받았다. 앙큼한 녀석.

당시 나와 같은 또래에 있던 한 학생은 자신이 다니던 학교를 상대로 종교의 자유를 문제 삼아 소송을 걸었던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가 개신교 미션스쿨이었다는 것은 나같이 신앙을 갖지 않았던 친구들에게도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착하디착한 친구였던 학급 선교부장이 대학 입시를 앞두고 불안해하던 우리를 위해 조회시간에 해주던 기도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그 누구의 격려보다도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었고, 거대한 교회 안에서 목청 터져라 노래를 불러댔던 예배 시간은 입시로 인해 막혔던 우리의 가슴을 확 풀어주는 듯 했다. 한편에서는 교회의 목사가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저질러왔다는 뉴스가 보도되곤 하지만, '경건한' 신앙 생활을 학생들 앞에서 몸소 실천하시는 학교의 선생님들을 보면서 종교라는 것이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얼마나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직접 실감할 수도 있었던 귀중한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지낼 수 있는 법을 배웠다. 친구가 절실한 개신교 신자이면 그런대로, 친구가 절을 다니는 불교 신자라면 또 그런대로, 친구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또 그런대로, 서로 다르지만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손목에 염불처럼 생긴 불교 팔지를 한 친구이건, 종교를 갖지 않은 친구이건 교회 강당 안에서 별다른 생각 없이 서로가 소리를 지르는 서로에게 웃으면서 ‘Roman Sixteen Nineteen Say!'라고 외치며 노래하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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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개신교, 고등학교, 미션스쿨, 성경, 예배, 중학교, 찬송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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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리와 복숭아
혼자생각 | 2008/08/14 23:31

엄마는 오늘도 과일을 한 보따리 사오셨다. 초록색이 탐스러운 아오리 한 봉다리와 빨간색이 농익어보이는 천도복숭아 한 봉다리. 물에 씻어 각각 바구니에 담아놓으니 그 때깔이 더욱 탐스러워보인다. 그러나 이 아오리와 복숭아는 곧 사라질 것이다. 초록빛의 아오리는 내가 다 먹어치울테고, 빨간빛의 복숭아는 동생이 다 먹어 치워버릴 것이다. 비단 아오리와 복숭아 뿐만은 아니다. 엄마가 나물을 해서 밥상에 올려놓으면 나는 고사리 나물을 먹어 치우고, 동생은 도라지 나물을 먹어 치운다. 엄마가 멸치볶음을 해 놓으면, 나는 멸치볶음의 고추를 집어먹고, 동생은 멸치를 집어먹는다. 나는 참치가 들어간 김치찌개를 좋아하고, 동생은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를 좋아한다. 나는 배추김치를 좋아하고, 동생은 총각김치를 좋아한다. 나는 닭날개를 좋아하고, 동생은 닭다리를 좋아한다. 나는 명란젖을 좋아하고, 동생은 오징어젓을 좋아한다. 우리집에서 남는 음식은 없다.

배추김치의 이파리 부분을 즐겨 먹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배추김치의 줄기 부분을 즐겨 먹는 사람이 있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닭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생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흰색 셔츠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검은 셔츠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똑같은 옷을 입는 경우는 없다. 어떤 사람은 검은색 자동차를 좋아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흰색 자동차를 좋아한다. 어떤 남자는 긴 생머리의 여자를 좋아하는 반면, 어떤 남자는 파마머리의 여자를 좋아한다. 어떤 여자는 우락부락 근육질의 남자를 좋아하는 반면, 어떤 여자는 곱상한 귀여운 남자를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더하고 빼고 셈을 좋아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진리가 어쩌니 저쩌니 사색을 좋아한다.

우습고 황당한 상상이지만, 만약 반대의 상황이라면 어떻게 될까. 나와 내 동생은 둘다 복숭아를 서로 더 먹겠다며 아옹다옹할 것이고, 남겨진 아오리는 음식물 쓰레기로 썩어갈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같은 옷과 자동차를 타고 다니게 될 것이며, 거의 대부분의 영화나 음악, 소설도 다 사라질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의 음악과 영화, 소설만 읽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노란색 물감으로만 그림을 그려서 세상의 노란색 물감은 동이 날 것이고, 수많은 남자들은 하나 같이 자기의 마음에 쏙 드는 단 한 두 명의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피튀기는 살육전을 치룰 것이며, 대학의 학과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한 두 개의 학과만이 남게 될 것이다.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사람의 형질은 신비롭다. 노랑과 파랑이 만나면 노랑이나 파랑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초록이 나오는 것처럼 사람들은 그 대가 거듭될수록 각자만의 독특함을 갖게 된다. 부모님의 유전적 형질을 그대로 받게 되지만 어머니의 형질, 아버지의 형질을 따로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두 형질이 합쳐지면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형질을 갖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형질 때문에 세상은 오늘도 별탈 없이 돌아가고 있는 것일테다.

가끔 차가 달리는 도로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자동차들이 어느 순간 모두 어떤 한 도로로 몰려서 그 도로가 꽉 막혀버리는 일은 왜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순간적으로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돌리다가 몇 초 동안만이라도 어느 한 채널을 모든 시청자들이 보게 되서 그 프로그램이 순간 시청률 100%를 기록한다거나, 엘레베이터를 탔는데 1층까지 내려가는 도중 모든 층에 엘레베이터가 멈춰서 사람이 탄다거나 하는 일들은 왜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에 대한 물음들 말이다.

오래 전, 학교에서 과학시간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것들을 보고 자연의 균형성이라고 했다. 사람도 자연의 극히 한 일부분일 뿐, 크게 다르지 못하다. 사람들 모두가 서로 다른 점들을 가지고 서로 다른 것들을 좋아하고 서로 다른 행동들을 하며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균형을 맞춰간다. 쌍둥이마저도 서로 똑같아 보이는 외형만을 나눠 가졌을 뿐, 서로 다른 성격과 생각을 갖고 있다.

이처럼 사람은 각기 다르다. 다양함이 넘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단지 자신과는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싫어하고 상대에게 으르렁거리는 사람들 말이다. 심지어서로 다른 취향을 갖고 영화를 보고나서 그 영화에 대한 서로의 평가가 잘못되었다고 텔레비전 토론회까지 나와서 악을 쓴다. 상대가 가지고 있는 그만의 특성이 있기에 자신만이 갖고 있는 특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다. 자신과 다른 영화를 만든 사람만의 독특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다양하고 독특한 영화들을 접할 수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