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ope the Pacific is as blue as it has been in my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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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비들
심심할때 | 2008/07/24 15:17

인정사정 볼 것 없다 (No where to hide,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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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장면,
형사와 범인이 벌이는 마지막 결투씬.
안성기와 박중훈이 서로의 볼따귀에 주먹을 주고받는 장면으로도 유명했던 이 씬에서 만약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적막 속에 퍼붓는 비는 결투의 비장함을 더해주었고, '너 죽고 나 살자'는 매정하고 처절한 주먹다짐을 더욱 극렬하게 몰고 갔다. 온 몸에 젖은 비는 진흙탕과 함께 주인공들을 만신창이로 만들기 충분했다. 한 치의 자비도, 정도 없는 주인공들처럼 비는 싸우는 내내 차갑게, 차갑게 소리만 내며 내렸다.
영화의 배경음악, 비기스 'Holiday'의 여운과도 너무나 잘 어울렸던 빗소리까지.
가장 비장했던, 인정사정 없었던 비.



살인의 추억 (Memories of Murder,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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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고 다니냐?
몇 년 간을 쫓던, 너무나도 잡고 싶었던 용의자를 눈앞에서 놔줘야 하는, 만감이 교차하는 저 순간.
손에는 수갑이 아닌, DNA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허망한 서류 봉투만을 쥔 채,
용의자를 떠나보내야하는 순간, 빗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적막함 속에 저 한 마디.

쇼생크 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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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클라이막스, 십 수 년간 준비해오던 탈옥 계획이 결국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주인공은 하수구에서 기어나와 오랜 세월 동안 나오지 못했던 바깥 세상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그의 포효하는 몸으로 사납게 퍼부어지는 빗줄기들처럼 더 시원한 비가 또 어디있을까.
그는 입을 벌리고, 가슴을 활짝 펼치고, 손을 벌리고 온몸의 세포구멍 하나 하나까지 하늘을 향해 활짝 열어재끼고 자유의 비를 온몸으로 맞이한다.


번지점프를 하다 (Bungee Jumping Of Their Own,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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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지금은 이 세상에는 없지만 배우 이은주를 너무나도 좋아했었기에, 지금은 더욱 애틋한 영화가 되어버린 '번지점프를 하다'. 이 영화에서는 유난히 비가 내리는 장면이 많았다. 그리고 비오는 장면마다 항상 이병헌의 어깨 반쪽은 빗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몸의 반을 비로 적시는, 순수한 한 남학생과 여학생의 설레는 사랑, 그러나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이루어지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더욱 구슬펐던 빗소리.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내렸던 비처럼 구슬프고 애절했던 비가 또 있을까.


클래식 (The Classic,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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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내렸던 비가 애절했던 비라면, '클래식'의 비는 새로운 사랑의 비다. 줄곧 혼자 마음에 두고 있던 사람과 옷자락 아래 하나가 되어 비 내리는 캠퍼스를 뛰어다니는 것처럼 설레는 비가 또 있을까. 명랑만화에나 나올 법한 유치한 그림이지만 유치하면 어때? 사람들 모두 한번 쯤은 저런 유치함에 빠지고 싶은 마음일테다.


마지막 황제 (The Last Emperor,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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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제의 둘째 부인이 판에 박힌 궁정 생활을 그만두고 홀로 비를 맞으면 궁궐을 나서는 장면.
하인이 건내준 우산을 마다않고 홀로 비를 맞으며 궁궐을 나선다. 입가에 미소를 띈 채.
류이치 사카모토의 'Rain'이 명곡이 되었던 장면.
빗소리와 곡의 조화가 예사롭지 않았던 씬이다.


꽃피는 봄이 오면 (When Spring Comes,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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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내리는 탄광 앞. 조그마난 아이들이 손에 트럼펫, 색소폰 등을 든 채 한 선생님의 지휘아래 연주를 시작한다.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아이들의 아버지들, 광부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빗소리와 함께 울려퍼지는 그들의 연주에 감동을 받기 시작했고, 이에 관악단은 온몸이 젖는 줄도 모른채 스스로 만드는 화음의 소리에 빠져든다.
음악에 대한 기쁨과 감동을 느끼기에 내리는 빗 속에서, 머리카락, 옷, 지휘봉 할 것 없이 모두 젖는 가운데서도 활짝 웃으며 지휘를 마다않는 선생님의 눈빛에서는 비처럼 은은한 행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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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꽃피는 봄이 오면, 마지막황제, 번지점프를 하다, , 살인의 추억, 쇼생크날출, 영화, 장마,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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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발이 2008/07/24 18:45 L R X
비오는 날과 잘 어울리는 글이네요. 영화 속 장면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잘 봤습니다~
laballade 2008/07/30 16:11 L R X
감수성이 풍부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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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혼자생각 | 2008/07/22 11:52

푸른 상공을 가르는 가르는 파일럿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 묵묵히 땀을 흘리는 친구가 있다.
내일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공수 훈련을 받는다.
평소 답지 않게 긴장하고 있는 친구를 위해
무사히 훈련을 마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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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공수훈련, 점프, 친구, 파일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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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혼자생각 | 2008/07/18 23:38

강하다.
강한 녀석이다. 처음 녀석을 놓친지가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집에 침입한 모기 녀석들, 적어도 내 방에서는 단 한 마리도 살아나가지 못했다.
내 자신을 돌아보면 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진화가 덜 진행된 듯 하다.
일반 한국인 남자 치고는 많은 털과 수염들, 선천적으로 뛰어난 후각, 청각 등.
내 방에 들어온 모기는 이런 내 동물적인 청각과 운동신경에 의해 희생되어지기 일쑤였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제대로 된 녀석이 등장했다.
녀석은 사람 못지 않게 지능적이며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 또한 갖췄다.
어디 그 뿐이랴, 공포의 에프킬러를 직접 맞고도 쓰러질 줄 모르는 강인한 피지컬까지 갖고 있다.

잠에 들 때면 어김없이 귓가에 녀석의 소리가 들려온다. '윙'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다.
그 소리가 어느 정도 귀에 가까워졌다 싶으면 나는 동물적인 반사 능력으로,
벌떡 일어나 순식간에 방에 불을 켜고 안경을 쓴 채 주위를 둘러본다.
보통의 놈들 같았으면 내 시야에 정체를 들어낸 채 내 손바닥에서 죽음을 맞이했겠지만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내 귀 주위를 맴돌았던 녀석은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때부터는 긴 인고의 시간이다. 엉겁의 시간이다.
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누가 끈질긴 인내심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싸움이다.
난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녀석이 하얀 벽이나 책상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린다.
녀석은 방구석 어느 곳에선가 몸을 숨기고 내가 제풀에 지쳐 잠들 때까지 때를 기다린다.
이 인고의 싸움에서 매번 졌던 것만은 아니다.
몇 번, 녀석의 정체를 찾아낸 적이 있었다.
종이 뭉치를 들고, 혹은 에프킬러를 들고 조용히 녀석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녀석은 내가 배드민턴 선수마냥 종이 뭉치를 휘둘러도,
촛불집회의 전경들이 소화기를 뿌려대는 것마냥 에프킬러를 연신 뿌려대도,
절대 바닥으로 쓰러지거나 정신을 잃지 않고 눈 깜빡할 새 내가 보지 못하는 곳으로 숨어버렸다.

점점 지쳐간다. 자다 벌떡 일어나서 녀석을 찾는 것도 이젠 지쳤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에프킬러를 뿌려대는 것도 이젠 그만하고 싶어졌다.
보잘 것 없는, 내 손톱만한 녀석이지만 내가 진 기분이다.
동물 대 동물로서 나는 녀석에게 완벽하게 패배했다.
하지만 녀석에게 졌다고 해서 자존심 상하거나 속상한 것은 아니다.
녀석은 나와의 싸움에서 이길 자격이 있었다. 내가 겪어봤던 그 어느 놈들보다도 강했다.

보상은 항상 승자만의 것.
그제도, 어제도, 오늘 아침에도 여기저기 녀석에게 안뜯긴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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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모기, 배드민턴, 에프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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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실이 2008/07/27 23:32 L R X
저희 남편은 자다가 모기가 자기 몸에 착륙한 걸 느끼면 그 순간 손으로 탁 때려 죽입니다.
자기 볼에 앉아있어도 사정없이 뺨을 탁~ 하고 쳐버리지요.
전 모기가 주변에서 웽웽거리면 귀찮아서 손으로 허공을 막 젓고 이불은 목까지 뒤집어쓰는데 말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모기가 많네요. ㅠㅠ
아다리 2008/07/28 01:43 L X
와~ 엄청난 감각의 소유자시네요ㅎㅎ
저는 몸에 털이 많아서 몸을 간지럽히는게 내 털인지 모기인지 헷갈린답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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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혼자생각 | 2008/07/10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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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낯설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평소에 낯익었던 것을 떠나서, 생전 와보지 않은 곳에 가보고 생전 해보지 않은 것을 실감한다. 사실 우리는 '낯익은 것'들에게는 별다른 감흥을 갖지 못한다. 매일 엄마가 차려주시는 밥을 새삼스럽게 맛있게 느끼진 않는다. 설레게 했던 애인도 세월이 지나 낯익은 사이가 되면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새옷은 유난히 이뻐보이지만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왠지 모르게 식상해보인다. 불륜과도 같다. 식상해진 일상이라는 배우자를 잠깐 잊고 여행이라는 달콤한 애인과의 밀애를 즐기는 것이다. 애인마저 식상해지면 다시금 현모양처에게로 돌아오는 드라마 속 남편들처럼 여행도 주위의 것들에 무덤덤해질만 하면 집으로 돌아온다.

이처럼 여행의 맛은 '낯선 것'에서부터 온다. 하지만 이 낯선 존재들, 우리가 평소 경험해보지 못한, 익숙치 않은 대상들이기에 당연히 막연한 두려움이 앞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처음 경험해보는 것에 대해 두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낯선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다. 그것은 용기있는 것도, 용감한 것도 아니다. 그저 무모할 뿐이다.

사람들이 처음 어떤 것을 경험해볼 때, 예를 들어 대학교를 입학할 때의 기분. 한 마디로 묘한 기분이다. 대학이라는 새로운 삶에 대해 설레는 동시에 과거 해보지 못한 것들을 해내야하는 걱정 또한 앞선다. 하지만 이 때의 걱정은 절망스러운 걱정과는 다르다. 망친 시험 성적을 부모님께 내밀어야 하는 고등학생의 걱정이나, 몸이 아픈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를 보면서 드는 걱정스런 마음과는 다르다. 어떤 표현이 적합할지는 모르겠지만 짧게 말하자면 '설레는 걱정'이라고 해야 할까. 왜 '기대 반 걱정 반'이란 표현이 있는 것처럼. 여행을 앞둔 '설레는 걱정'은 즐기기에도 벅찬 행복일 뿐이다.


#1
알람에 눈을 떴다. 알람을 끄고, 한동안 그대로 누워있었다. 긴장감이 몰려왔다. 아주 잠깐, 후회를 하기도 했다. 너무 무모한 것 아닌가. 이대로 가도 괜찮을까. 비행기에 오르기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하지만, 막상 비행기에 오르고 작은 창문으로 공항의 모습이 점점 깨알만해질수록 가졌던 두려움, 초조함, 걱정들도 모두 깨알만해졌다. 곧 창문으로 보이는 흰 구름들처럼 두리두둥실 설레는 마음 뿐.

#2
길을 잃을 경우를 대비해서 나침반을, 음식이 안맞아 배탈이 날 상황을 대비해서 지사제를, 감기에 걸릴걸 생각해서 감기약을, 자는 사이에 누가 가방을 가져갈까봐 자물쇠와 체인을 준비했는데, 모두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채, 오히려 여행하는 동안 짐만 되고, 고스란히 집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3
처음에는 큰 덩치와 파란 눈의 현지 백인들이 낯설고 무서웠다. 내가 동양인인 것을 보고 괜히 해꼬지하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머릿 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런데 하루이틀 지나면서 그들이 오히려 나를 무서워하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낯선 동양인 이방인을 두려워했다. 자기들과 다르게 검은 눈과 검은 머리를 한 남자가 갑자기 다가와서 'Excuse me'를 외치는 것을 보고는 큰 덩치는 어디에 쓰는지 손사레를 치며 두려운 눈빛으로 뒷걸음질 할 뿐이었다.

#4
처음에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공항에 보이던 수많은 사람들이 내 눈에는 모두 소매치기들로 보였다. 강렬한 눈빛으로 주위의 모든 현지인들을 견제하면서 배낭을 꽉 쥐고 다녔다. 그런데 여행이 끝날 때 즈음에는 '우리나라 사람들 호들갑은 알아줘야 하는군. 도대체 어디 소매치기가 있다는거야'라고 생각할 정도로 긴장이 풀렸고, 결국 참사를 당했다.

하지만 어이 없는 소매치기에 눈물을 흘릴 뻔한 것도 잠시. 더 웃겼던 것은, 바로 그날 밤, 민박집에서 남녀혼숙을 하게 되면서 같은 방을 썼던 누나들과 밤새 천장 보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깔깔깔 대화를 나누면서, 나의 슬프디 슬펐던 소매치기 사건은 어느새 그저 웃기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되어있었던 것. 그것도 내 입으로, 내가 깔깔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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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의 행복에 떨려하는 소중한 친구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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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걱정, 낯설음, 배낭여행, 불륜, 소매치기, 여행,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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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예쁜이 2008/07/12 01:29 L R X
나 소중한 친구 된거야?? 호호호호
졸려서 잘라고 컴터 끌라다가 들어왔는데
감동받아서 잠 다 달아났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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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미디어의 강자
혼자생각 | 2008/07/09 22:53
중학교의 쉬는 시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몇 명씩 모여 앉아 떠들기 바쁜 아이들. 우리들의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면 무리 지어 떠드는 아이들 사이에는 뭇 친구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한 녀석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뛰어난 유머감각을 갖춘 덕에 항상 주위 친구들을 웃게 만드는 녀석부터 명석한 두뇌로 공부를 잘해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는 녀석, 축구를 잘하는 녀석, 혹은 여학생을 꼬드기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녀석까지, 각자만의 매력을 지닌 녀석들이었다.
이런 화려한 친구들과는 달리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었던, 키도 작기만 한 조용한 친구가 있었다. 많은 인기를 끌었던 친구들이 주연이라면 이 친구는 이들을 따라다니는 평범한 조연에 불과했다. 훤칠한 외모도, 쾌활한 성격도 갖지 못했던 친구였다. 친구는 항상 구부정한 자신 없는 걸음걸이였다.
그러던 중 ‘스타크래프트’라는 온라인 게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인터넷 카페도 미니 홈페이지도 블로그라는 것도 전무하던 그 때, 우리 또래가 온라인이란 것을 가장 먼저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온라인 게임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집에서 인터넷으로 ‘스타크래프트’에 접속하여 친구들과 게임을 하는 것이 중요한 일과 중 하나가 되었고, 이 게임에서 친구에게 진다는 것은 공부나 축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조용하고 보잘 것 없었던 그 평범한 친구는 이 온라인 게임에 상당한 소질이 있었다. 이 친구와 대결을 펼쳤던 아이들은 이 친구의 약삭빠른 게임 실력에 하나 같이 무릎을 꿇어야만 했고 어느새 이 친구는 ‘스타크래프트’라는 엄연한 한 가지 분야에서 최고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자 이 친구 주위에도 아이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친구의 뛰어난 게임 실력을 부러워하고 가르침을 받길 원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 혹은 운동을 잘하는 아이들을 부러워하고 따랐던 그들이 이제는 그 친구에게 몰려들었다. 이에 친구의 내성적이었던 성격은 불현듯 사라지고 친구의 어깨에는 늘 힘이 들어차있게 되었다. 친구는 더 이상 평범한 조연이 아니었다. 더 이상 몸을 움츠려 걷지도 않았다. 항상 당당한 자세였다. 친구의 반에서의 영향력은 높아져만 갔고 친구는 학급이란 작은 사회의 ‘울타리’에서 새로운 ‘강자’로 군림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친구의 소식이 궁금하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의 강력한 출현에 대해 말이 많은 요즘, 녀석은 지금 또 어떤 모습으로 새로운 세계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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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사회, 스타크래프트, 온라인, 인기, 인터넷, 친구, 학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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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
심심할때 | 2008/07/07 23:24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1989)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명작이라 불리는 영화일수록 영화를 단순히 보는 느낌 뿐만이 아니라 영화를 읽는 느낌이 강하다. 마치 책을 읽는 느낌이다. 영화는 관객의 상상력을 제한한다.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는 장면, 장면과 스토리의 울타리 안에서 관객들은 영화를 받아들일 뿐이다. 최근 개봉되고 있는 화려하고 빠른 전개의 영화들, 물론 이런 영화들처럼 역동적이고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영화는 없겠지만 진정 영화를 음미하는 시간, 마음 속으로 영화 속 주인공도 되어보면서 충분히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시간을 갖기엔 너무나 속도감이 넘친다.

반면 책은 다르다. 책은 영화처럼 구체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런 점들이 오히려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책과 소설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툭툭 소스만 던져주고 있을 뿐, 그 소스를 가지고 가슴과 머리로 진정한 스토리를 엮어나가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보고 있는 것은 깨알 같이 글자가 적힌 흰 종이에 불과하지만 느끼고 있는 것은 그 어느 것보다 방대하고 재미있는 상상이다.

어렸을 적, 으레 그 또래 남자아이들이 한번쯤은 그러했던 것처럼 나 또한 삼국지에 빠져있었던 때가 있었다. 어린 내가 손에 들고 있었던 것은 작은 삼국지 소설책에 불과했지만 이 책은 나로 하여금 넓은 황야를 가득 메운 수백만의 대군들과 희대의 장수들이 뿌연 먼지와 거대한 함성을 일으키며 천하의 자웅을 겨루는 장면을 상상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렸던 나에게 삼국지라는 책은 황홀한 상상의 삼매경이었다. 그러던 중, 외가댁에 갔다가 외할아버지가 보시던 당시 중국 영화 '삼국지'를 우연히 보게 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영화는 내가 상상하던 삼국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드넓은 황야를 가득 메운 백만 대군은 온데간데 없고 영화 속에서는 그저 볼품없는 수십의 엑스트라들이 당시의 전쟁을 힘겹게 재현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영화는 실망스러웠다.

이 영화는 마치 책과 같았다. 영화를 보고 있다기보다 한 편의 소설을 읽고 있는 느낌이었다. 주인공들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마다 큰 여운이 몰려왔고 요즘 영화랑 다르게 느릿느릿하면서도 낭만적인 장면들은 그 대사들의 여운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여운도 그냥 텅빈 공간이 아닌 뭔가를 계속 생각하게 하는 의미 넘치는 여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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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 디엠(Carpe Diem, Seize The Days)
'현재를 잡아라.'


사실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한 카드 광고에서 카드 이용액을 늘리기 위해 인용했던 좀 유명한 말에 불과한 줄 알았다. 인생을 즐기라는 이 문구는 현란한 조명 아래 춤을 추는 한 젊은 남자와 더불어 인생과 청춘은 즐기기에 부족하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 남자의 춤사위를 보고 있자면 당장 지금이라도 카드를 가지고 흥청망청 생각 없이 내 인생을 즐겨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훨씬 무겁다. '카르페 디엠', 현재를 잡으라는 말은 그보다는 보다 무겁고 의미있고 진중하다.
'특별한 인생을 만들어라(Make your life extarordinary)'
'카르페 디엠'이란 말을 비로소 완성시켜주는 문구다. '카르페 디엠', 순전히 '생각 없이' 인생을 즐기란 뜻은 아니다.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삶을 만들라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독특함, 그것을 완성시키고 그것을 즐길 수 있을 때 진정한 자신의 삶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삶을 즐길 줄 아는 것이 바로 영화에서의 '카르페 디엠'이다.

영화의 배경은 미국의 명문 고등학교. 해마다 몇명의 아이비리그 진학 졸업생들을 배출하느냐가 이 학교의 유일한 목표다. 이런 영미식의 교육제도는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하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도 다를 바가 없었다. 연말마다 걸려졌던 명문대학 합격자 명단은 마치 학교의 교육에 대한 슬로건과 마찬가지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공부와 대학 입시가 우선되어졌다. 그 외의 것들, 대학 입시에는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들은 철저히 배제되어졌다. 오로지 입시와 공부 뿐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입시와 공부만으로 얽매여져야만 했던 학생들 그 하나하나가 그 누구보다도 깊은 감수성과 삶에 대한 열성을 갖고 있을 나이의 소년들이란 점이다. 멋진 시의 한 구절에 꽂혀 자신의 인생 전체를 바꿔버리는가 하면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든 아름다운 소녀에 눈이 멀어 정신을 놓기도 한다. 명백한 이유라는 것은 없다. 단지 이끌리는데로 이끌려가는 것 뿐.

의학, 법률, 기술, 경제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낭만과 사랑은 삶의 목적이지.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교정은 봄만 되면 흐드러진 벚꽃으로 만개되어졌다. 산 중턱에 자리한 학교였는데 그 산 거의 대부분이 벚꽃으로 뒤덮이는 바람에 우리는 일년에 한 번 그 아름다운 광경을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교실 창문으로 흐드러진 연분홍 빛의 향연을 보려 시커먼 남자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창문을 향해 턱을 괴고 있었다. 때론 교정으로 나가 떨어진 벚꽃잎들을 쥐고 뿌리며 놀기도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아침 일곱시부터 저녁 열시까지 하루종일 입시에 매달리는 건조한 일상을 지내야 했지만 연분홍 벚꽃들을 보면서 설렜던 것, 창문 밖으로 화창한 날씨를 보며 연애시를 쓰고 그 연애시를 적은 종이 테두리를 라이터로 이쁘게 태우며 가슴 졸였던 그 날들.

당시 하루하루 힘들게 공부했던 것은 지금의 나를 또는 앞날의 나를 있게끔 해주는 시간이었고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말그대로 나의 삶을 그리고 미래를 유지시켜주고 가능하게끔 만드는 것 뿐이다. 삶을 지탱해주는 것, 삶의 에너지는 따로 있다.

밤 열시가 되면 비로소 하루 일과가 끝났다. 나와 같이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던 친구들과 우르르 도서관에서 밀려나왔다. 도서관은 산 꼭대기에 위치했다. 늦은 오후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으로 올라갔던 무거운 발걸음과는 달리 내리막 산길은 매우 가벼웠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시원한 밤공기와 저멀리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야경, 어깨동무하고 있는 친구들, 그리고 뿌듯함.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은 이 영화가 입시만을 강조하는 학교와 교육제도를 비판한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영화에서 노래하고 있는 낭만과 이상은 영화 속 학교와 사회에 의해 날개가 부러지고 한계에 부딪힌다. 하지만 영화가 꼭 현 사회와 영화 속 학교의 모습을 비판하려고만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교사의 말대로 학교는 사회를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존재다.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제도나 사회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카르페 디엠', 암울하고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현실 속에서도 시와 낭만을 통해 현재를 잡을 줄 아는가, 인생을 즐길 줄 아는가다.

중요한 것은 포근한 밤공기에서 낭만과 기분을 느낄 수 있느냐,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되는 것을 깨닫느냐다.

믿음 없는 자들로 이어지는 도시, 바보들로 넘쳐흐르는 도시
어디서 아름다움을 찾을 것인가.
대답은 한 가지, 네가 여기 있다는 것.
그리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세상은 믿음 없는 자들로 넘쳐있기에, 전통과 규율, 딱딱함 밖에 모르는 바보들로 넘쳐있기에 시와 사랑이 더욱 낭만적인 것이 아닐까. 삶을 유지하는 것들, 먹고 자고 일하고 공부하고.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어쩔 수 없는 바보들이 있기에 나만의 낭만, 나만의 즐김이 빛을 바라고 나만의 시가 한 편 쓰여지는 것이 아닌가.

역설적이다. 시인은 지금 죽어있기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더욱 그 가치를 발하고 시 또한 법률, 경제, 기술 등이 세상을 뒤덮고 있기에 더욱 낭만적이다. 물론 모두가 이를 깨닫고 아는 것은 아니다. 현재를 쥘 수 있는 사람만이 알 뿐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
쏘로우, 그가 절망에 사는 사람들이라 노래했던 그들, 바로 그들 덕분에 오히려 그가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것. 우리는 이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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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고등학교, 낭만, 로빈 윌리엄스, 바보, 밤공기, 벚꽃, 사랑, 사회, 삼국지, , 에단 호크, 이상, 죽은시인의 사회, ,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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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sealtale in %g 2008/07/08 17:43 x
제목 : 실타래 테스트 페이지가 오픈하였어요!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누가 여러분의래) Jin_a입니다. 오늘 정말로 영광스럽고 눈물나는 날이랍니다 ㅠ 오늘이.. 바로바로 우리 실타래의 테스트 페이지 오픈일!!!!!!! 꺄아아아악~ 휘익~~ 멋져 언니~~~~ 원래 베타 오픈 날짜가 5월 말이었는데.. 여차여차 많은 일들 때문에 (온라인 촛불 문화제와 오프라인 촛불 문화제와 아고라에서 활동하느라고..) 결국은 7월. 바로 오늘 클로즈로 오픈을 하게 되었답니다. ( 급 딴소리지만 요즘 나라 미쳤나봐..
Tracked from Common Sense 2008/07/09 18:52 x
제목 :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오래전... 2005년 9월에 올렸던 포스트 재탕... ㅡ_ㅡ; Seize the day. "Gather ye rosebuds while ye may." Why does the writer use these lines? Because we are food for worms, lads. Because, believe it or not, each and everyone of us in this room, is one day going to stop br..
Tracked from ego + ing 2008/08/29 08:47 x
제목 : 죽은 시인의 사회
얼마 전 고교 때 활동했던 문학동아리 선후배를 만났다.즐거워야 할 술자리가 즐겁지만은 않은 것은 동아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몇 년 전부터 술자리에서는 동아리 재건을 위한 방안이 논의됐고,이번에도 그랬다. 어떤 이들은 일어나서 재건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역설했고,어떤 이들은 앉아서 현실성이 없다며 공허함을 토로했다.하나의 술자리를 두고 형성되는 윗공기와 아랫공기의 온도 차는서울 생활의 출발점이었던 옥탑방의 겨울공기처럼가벼운 절망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2008/07/08 17:45 L R X
비밀댓글 입니다
Noel.. 2008/07/09 18:52 L R X
^^ 트랙백 걸어주셔서 훌륭한 리뷰 보고 갑니다.
저도 스리슬쩍 트랙백 걸어 봅니다 ^^;
아다리 2008/07/09 20:56 L X
트랙백 감사합니다^^
egoing 2008/08/29 08:48 L R X
잘 봤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내요. 저의 글도 트랙백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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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형님 진짜 돌아오신거군요!!
09/23 - 아다리
아ㅋㅋ네 댓글 오랜만이다 진..
09/23 - 아다리
널 지켜보고 있다.
09/22 - das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