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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배낭여행 | 2008/03/30 21:44

아우슈비츠는 역시 상상대로였다. 영화나 소설을 통해 그려보던 수용소의 모습 그 자체였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크라코프 시내에서는 좀 떨어진 한적한 교외에 위치하고 있었다. 시내에서 수용소까지는 작고 정겨운 미니버스를 타고 갔다. 나는 이 버스를 타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수용소를 보러 가는 사람일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기사 아저씨가 나를 여행객을 알아보고 내리는 때를 알려주었기 망정이지 또다시 어디 모르는 곳으로 떨어질 뻔했다.

수용소 입장료를 받을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는 입장료가 없었다. 인상깊었다. 이 곳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망자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이 수용소를 이용하여 돈벌이를 할 생각이 없다는 이 곳 사람들의 의지 같기도 했다. 전체적인 수용소의 분위기는 굉장히 엄숙했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다른 명소처럼 웃고 떠드는 사람은 물론 큰소리로 떠드는 사람 또한 전혀 보지 못했다. 직원들이니 방문객들이니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엄숙했다.

여러 개의 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동마다 이 곳에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유품이나 그 당시 수용소의 생활상 등을 전시해놓았다. 그 곳에 전시되어있는 사진이나 유품 등은 굉장히 끔찍했다. 이들을 볼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특히 창고에서 발견되었다던 희생자들의 실제 유품들은 보는이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안경이 제각각 찌그러진체 수도 없이 쌓여 엄청나게 큰 철사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다. 옷가지들도 너덜너덜한 상태 그대로 널려있었고, 희생자들이 신었던 신발들도 아주 넓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저 할말을 잃을 뿐이었다. 특히 희생자들이 사용했던 의족들이 쌓여있는 모습과 희생자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크게 적혀있는 트렁크들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은 그 처참함을 더했다.

죽은 사람들 혹은 수용소에 입소한 사람들의 이름이 빽빽히 적힌 명단도 있었다. 이 문서들을 보고 있자니 이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죽거나 처참했던 수용소 생활을 했을 것이란 생각에 가슴이 아프고 이름 한자 한자가 구슬프게 느껴졌다. 수용소 전시 건물의 내부 복도에는 희생자들의 독사진이 수없이 걸려져 있었는데 그 사진 속 사람들의 인상 하나하나가 너무도 슬픈 느낌이었다. 어떤 사진 액자에는 작은 꽃 한 송이가 달려져 있었는데 이 희생자의 유가족들이나 친척들이 이 곳을 방문해 조화를 꽂아놓곤 한단다. 그도 그럴 것이 나치가 희생자들의 시체를 거의 모두 화장시켜버렸기 때문에 이 수 많은 희생자들의 자신의 묘나 비석 하나 갖지 못했을테다.

'죽음의 벽'이라고 불리는 곳도 봤다. 이 곳은 총살을 행하던 곳이다. 그 벽의 일부가 보존이 되어 아직까지 남아 있었는데 총탄자국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그 죽음의 벽 바로 옆 건물에는 지하감옥과 흔히 일본의 '마루타'와 같이 의학 실험을 하던 실험실이 있었다. 한 전시실에는 큰 사진에 나체로 여자 아이 세 명의 모습이 걸려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아이들이 모두 여자아이가 아니라 나치의 의학 실험으로 인해 거세당한, 생식기가 절단된 남자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이는 슬라브인이나 유태인들을 단종시키고자 했던 나치의 무지막지한 실험 중 하나였다고 한다.

아우슈비츠를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느끼는 것이지만 여기 수용되었던 유태인들은 어떻게 이 비참하고 참혹하기만 한 수용소 생활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는지 궁금하고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저항의 노력이 경외로웠다.

마지막으로 가스실과 시체를 태웠던 화장실에 갔다. 가스실은 그 내부의 분위기가 음침함 그 자체였다. 내가 발을 밝고 있던 바로 이 공간에서 반 세기 전 수많은 유태인들이 가스로 고통스럽게 죽어갔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해졌다.

여행을 하면서 가봤던 그 어느 곳보다 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이 곳을 오가며 많은 생각들을 했다. 어떤 한 집단의 비이성적인 광기라는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해질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집단의 광기와 폭력 앞에 개개인들이 얼마나 무기력하게 나약해질 수 있는지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다.

수용소에서 나와 크라코프로 돌아가던 도중 버스 차창 밖으로 수용소로 향하는 철로가 보였다.
수없이 많은 유태인들이 억울함 속에서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의 마지막 여행을 했었을 그 철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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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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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철책을 넘지 못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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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벽 - 총살이 집행되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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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실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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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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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나치, 독일, 수용소, 아우슈비츠, 유태인, 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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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코프
배낭여행 | 2008/03/16 22:29
여행을 떠나기 전, 폴란드는 원래 내 일정 계획에 없던 나라였다. 폴란드까지 거쳐가려면 동선이 매우 길어졌고 배낭여행 치곤 짧은 보름의 일정이었기 때문에 그냥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이 세 나라를 제대로 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폴란드 또한 그 나름데로의 매력이 있었기에 폴란드를 들릴 것인가는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 고민거리였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정확하게 왜 생각이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굳이 따지자면 아마 차이를 느끼고 싶어서 였을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잘 몰랐지만 체코로 넘어서자 서유럽과 동유럽의 다른 점이 확연히 드러났다. 단지 건물의 양식뿐만이 아니었다. 뭔가 콕 집어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거리의 분위기나 사람들의 모습이 분명 많이 달랐다. 마치 같은 동북아시아라도 우리나라와 일본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것 처럼 그들도 같은 유럽이라 할지라도 지역에 따라 색깔과 분위기가 달랐다. 체코에서 이런 점들을 느끼자 곧 폴란드도 가보고 싶어졌다. 같은 슬라브계로 묶여있는 러시아 쪽의 폴란드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중요한 이유가 또하나 있었다. 아우슈비츠. 수많은 영화나 소설의 배경이었던 아우슈비츠는 과연 어떤 곳인지 그 곳에서 무슨 기분과 생각을 느낄지 궁금했다. 그래서 프라하에서 바로 폴란드 크라코프로 향했다.

프라하에서 크라코프까지는 쿠셋이라 불리는 야간기차를 이용했다. 난생 처음 타보는 야간기차. 기차 안에 의자 대신 침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리 넓진 않았다. 아주 좁은 공간에 침대칸을 만드느라 침대 위에서는 제대로 허리를 못 펼 정도로 위아래 공간이 적었다. 그리고 침대가 서로 가깝게 놓여있다보니 나란히 누워있는 건너편 사람과의 눈마주침이 굉장히 어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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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코프 Glownly 광장의 전경

야간열차의 나쁜 점이 한 가지 있다면, 피곤하다는 것. 아무리 밤새 간이침대에서 잠을 잔다해도 아침이 되면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졸린 눈을 부비며 모든 짐을 매고 열차에서 내려야 한다. 상쾌하게 시작되어야 할 아침이 찌뿌둥하게 시작된다.

눈곱도 제대로 떼지못한채 기차에서 내려 숙소를 찾아야 했다. 졸리고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한가지 느낀 것은 역시 슬라브 쪽 여성들 소문대로 굉장히 예쁘다는 것. 키도 크고 날씬하고 오똑 솟은 코에 말그대로 파란 눈까지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동구의 미인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원래 폴란드에 올 예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폴란드에 대한 정보는 거의 가지고 있지 못했다. 때문에 좋고 유명한 호스텔이 많은 크라코프였지만 민박집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하지만 민박집도 굉장히 좋았다. 아주 젊은 신혼 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 신혼부부도 배낭여행으로 왔던 크라코프가 너무도 기억에 남아 아예 이 곳에 이민와서 민박집을 운영하게 되었다고 했다. 멋져보였다. 국내에서는 한창 일에 찌들어있을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사람과 외국에 나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삶을 즐기는 그 부부가 너무 부러웠고 용기있어 보였다.

낮에 아우슈비츠를 다녀와서 오후 늦게부터 크라코프 시내를 돌아보았다. 동양인들에게 크라코프는 그리 유명한 여행 명소가 아니지만 아우슈비츠가 있어서인지 서양인들에게 크라코프는 배낭여행 도중 꼭 가봐야 할 명소로 꼽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크라코프, 특히 중앙역 부근에는 저녁 늦도록 거리에 사람이 많았고 광장마다 젊은 여행객들이 모여서 시끌벅적했다. 호스텔도 많았고 다른 곳이랑 다르게 동양인들을 자주 볼 수 없었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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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일곱시 정도만 넘어서도 거리의 온 가게들이 문을 닫고 깊은 밤처럼 한적해지는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이곳 크라코프의 저녁은 활기있었다. 특히 여행객들을 상대로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있는 시장은 저녁 늦도록 불을 밝히고 있었고 카페며 술집이며 사람들로 가득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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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크라코프, 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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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8 20:00 L R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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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리 2008/08/08 22:34 L X
죄송하다니요~ 크라코프는 꼭 한번 가볼만한 곳이죠. 저는 크라코프 오로라 민박에서 숙박했는데요, 신혼부부가 운영하던 곳이었어요. 가지고 다녔던 수첩을 뒤져봤는데 연락처는 안보이구, http://cafe.naver.com/orora79.cafe 주소가 적혀있네요^^
2008/08/09 00:17 L R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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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재미
배낭여행 | 2008/03/09 19:58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재밌는 일이 또 있을까.
프라하에서가 그랬다.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한 먼 이국땅에서 유쾌한 사람들을 만나 하루종일 새로운 것들을 보고 들으며 떠들어대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있을까. 흔히 사람들이 '도피처'란 말을 많이 쓰곤 하는데, 지금 여기 서울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지리한 일상 혹은 현실이라면, 그 곳에서 보냈던 하루하루야말로 즐겁기만 했던 현실의 도피처였다.

프라하에 도착하자마자 정말 우연찮게 만난 대학생 형들과 누나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헤어질 때까지 막내라고 늘 나를 챙겨주었다. 그리고 숙소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까지, 특히 맛있는 회를 사줄테니 울산에 꼭 놀러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던 울산대 ROTC 형도 기억에 남는다.

특히 프라하 중앙역에서 오갈데 없었던 날 구원해줬던 형, 누나들과 같이 프라하를 누볐던 기억은 지금도 유쾌하다.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프라하의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저녁에는 유명한 맛집에 들어가 맥주 한 잔과 함께 맛있고 푸짐한 저녁식사를 즐기고, 재즈바에서 흥겨운 재즈 연주를 듣고, 먼 이국땅 밤길가에서 미친척 고래고래 가위바위보를 해가며 내기를 하기도 하고, 밤에는 체코의 유명한 술 이것저것을 홀짝홀짝 마시며 처음 만나는 반가운 사람들과 깔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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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200년 된 족발집
우리나라의 족발과 비슷한 요리였다. 양도 많았고 우리 입맛에도 딱 맞았다. 무엇보다 한 컵 가득 담겨나오는 맥주도 시원했다. 다같이 맛있는 요리에 감탄하기도 하고, 종업원과 우리 사이의 바디랭귀지에 깔깔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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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재즈바
체코에서 듣는 재즈 음악은 들고 있었던 맥주 만큼이나 시원하고 맛있었다. 역시 재즈는 흥겨웠다.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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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벼룩시장
주변에 있는 시장처럼 과일이나 채소 등을 파는 것은 물론, 여행객들을 상대로 갖가지 기념품이나 군것질거리, 옷가지, 심지어 그림까지 팔았던 벼룩시장이었다. 신기한 물건들이 많아서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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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에서 맨날 먹었던 케밥
어느 누가 여행을 가면 음식 때문에 고생한다고 했는가. 말도 안되는 소리. 지금 사진만 봐도 군침이 흐른다. 얇게 썬 고기와 야채들에 하얀색 소스가 얹어진 케밥과 빵. 내 입맛에 딱 맞아서 프라하에 있는 동안은 하루도 빠짐없이 여기에서 배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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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멋
배낭여행 | 2008/03/09 18:31
체코 프라하 Prague

프라하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일정도 프라하에 가장 오래 머물 계획이었다. 실제로도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이고. 그래서인지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다. 2월은 비수기, 그 것도 동유럽 쪽이었기 때문에 내가 갔던 다른 도시들은 관광객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유독 이 프라하만은 비수기, 동유럽 할 것 없이 관광객들로 시가지가 바글바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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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구시가의 광장.
시계탑과 얀후스의 동상이 있고 프라하 시가지 중 관광객들로 가장 많이 붐비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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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를교에서 찍은 프라하성의 야경
프라하는 야경으로도 굉장히 유명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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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를교 남단탑 위에서 찍은 까를교의 모습.
프라하의 가장 유명한 명소 까를교.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사람들로 붐빈다. 솔직히 까를교 자체가 눈부시도록 아름답다거나 그렇지는 않았지만 여행객들, 거리의 악사들, 화가들 등등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 더 재밌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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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거리의 악사들
까를교 위에서는 통기타, 재즈, 바이올린, 아코디언 등등 거리의 악사들이 음악을 만들어내어 지나가던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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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성 안에 있는 성 니콜라스 교회.
프라하성에 있는 무지막지하게 큰 교회다. 고딕양식이란 이런거구나 할 정도로 수없이 많은 뾰족한 탑과 지붕의 높이가 아래서 내려다보는 여행객들을 압도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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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소로
프라하성 안에 있는 황금소로. 연금술사들이 왕의 은밀한 명령을 받고 아기자기한 집들에서 금을 만들어내기 위해 연구했다던 그 유명한 황금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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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를교와 프라하성이 한 눈에 보이는 프라하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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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까를교, 체코, 프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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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icewall's iceworld 2008/03/21 13:42 x
제목 : 유럽 여행기 34 - 프라하
7월 19일 아침은 "4 star" 호텔 가서 먹음. 역시 호텔이라 잘 나옴. 그리고 Praha 성으로 출발. "4 star" 호텔의 아침10:30 성이 산꼭대기에 있어 Tram 타고감. 성안에 있는 궁전보다 성당이 더 화려하고 웅장하고 컸음. 성을 둘러 보는데 비가 갑자기 쏟아짐. 긴팔과 우산 가져오길 잘 했음. 맑은 날에도 긴팔과 우산을 챙기는 센스~ 말을 걸어도 미동도 안하는 문지기; 옆에가서 장난 좀 쳐 봤다 ^^ 문지기 교대식 프라하 성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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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날
배낭여행 | 2008/03/02 09:12
2008년 2월 8일 금요일 날씨 맑음
체스키 부데요비치(Chesky Budejobic) - 체스키 크룸로프(Chesky Crumlov)
- 프라하(Prague)

아침에 펜션에서 체크아웃했다. 전날 만났던 그 친절한 체코아저씨 덕분에 좋은 펜션에서 잠도 잘자고 든든한 아침도 먹을 수 있었다. 전날의 고난을 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어제 내렸던 체스키 부데요비치 역으로 가서 체스키 크룸로프행 기차를 탔다.

열차가 정말 작았다. 세 칸이 전부였다. 그쪽 부근 마을을 도는 시골 기차 같았다. 그 기차를 탄 사람들은 여행객들보다 그 곳에 사는 주민들이 많아보였다. 모두들 아침일찍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거나 등산복을 입고 근처 산으로 등산을 가는 사람들 같아보였다. 난생 처음 타보는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시골 기차였다.

얼마 가지 않아 그 유명한 체스키 크룸로프(Chesky Crumlov)역에 도착했다. 다른 곳들처럼 제법 규모있는 중소도시이기보다는 그냥 작은 마을에 불과한 동네다. 하지만 역사지구라고 해서 중세의 건물들이 남아있는 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만큼 경관이 빼어나고 중세 건물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있는 곳이다. 블타바 강을 끼고 있는 이 곳은 만들어진 당시의 위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체스키 크룸로프 성과 여러 탑들, 운치있는 성당들이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마을을 보는 듯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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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키 크룸로프(Chesky Crumlov)의 동화같은 모습들

정말 운이 좋게도 이 날은 날씨까지 화창해서 밝은 햇살 아래 비춰진 체스키 크룸로프의 동화같은 전경들을 맘껏 볼 수 있었다. 파스텔 풍의 벽과 하얀 창문들 그리고 연한 붉은색의 지붕들로 된 건물들은 멀리 동쪽에서 온 한 동양인의 눈과 마음을 완전히 빼앗아버렸다. 나는 경치좋은 언덕 위에서 한동안 이 동화스러운 마을을 바라봤다.
이러한 예쁜 집들에 실제로 이곳 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 곳 주민들에게 가여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 같은 여행객들이야 아주 가끔 이런 곳에 들려서 예쁘고 아기자기한 건물들을 보면서 멋있고 동화같은 행복한 눈요기를 하지만 이 곳에 사는 사람들, 태어나서부터 매일 이러한 마을을 보면서 자라온 이들은 과연 자신들의 마을이 얼마나 아름다고 예쁜지 스스로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오후 늦게 버스로 프라하(Prague)로 출발

짧지만 그 어느 곳보다도 내가 지금 이 곳에 실제로 와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었던 순간이었던 체스키 크룸로프를 떠나 이번에는 버스로 체코의 수도이자 여행지의 메카, 프라하로 향했다. 사실 내가 여행지를 동유럽 쪽으로 정한 것도 이 프라하를 보기 위해서가 컸다.

원래 프라하에 도착하면 미리 알아둔 호스텔에서 잘 예정이었지만, 여행을 하면서 폴란드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드는 바람에 폴란드로 넘어갈 정보를 얻기 위해 프라하에서는 민박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달랑 민박집 전화번호만 들고 프라하로 입성해서 공중전화로 전화를 거는데 동전을 아무리 넣어봐도 뭐가 문제인지 전화가 되지 않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행오기 전 한창 정보를 모을 때 얼핏 프라하 중앙역 근처에 한국인 아줌마가 운영하시는 라면집이 있다는 것을 들은 것 같아서 무작정 버스터미널에서 프라하 중앙역으로 갔다. 하지만 라면집은 보이지 않았고 다시 패닉 상태로 역내를 해매던 도중 갑자기 누군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한국사람이세요?"
"네, 그런데요."
"아, 그럼 혹시 메트로 어떻게 타는지 아시나요?"

나도 막 지금 프라하에 도착해서 숙소를 못찾아 해매고 있는데 어떤 한국사람 네 명이 나에게 무엇을 묻는 것이었다. 나도 급해 죽겠는데. 나도 프라하에 도착한지 얼마 안되었고 숙소를 못찾아 해매고 다닌다는 사정을 말하자 그 분들은 자신들이 가려고 하는 숙소에 같이 가자고 했다.

알고보니 다들 형, 누나들. 동국대에 다니는 형, 누나들이었는데 다들 같은 학과란다. 형들은 다들 군대를 갔다올 만큼 나이가 많았고 누나들도 나보다 세 살이 많았다. 런던에서부터 프랑스, 독일을 거쳐 그 날 막 프라하에 도착했는데 지하철 타는 법을 몰라 해매고 있다가 지나가던 내가 한국사람 같길래 말을 걸었단다. 어쨌거나 다행스럽게 그 형, 누나들을 만난 덕분에 민박집도 따라갈 수 있었고 정말 오랜만에 우리나라의 밥다운 밥을 먹으면서 한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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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체스키 크롬로프, 프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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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icewall's iceworld 2008/03/14 13:28 x
제목 : 유럽 여행기 33 - 프라하
Praha 7월 18일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는게 늦잠을 자버렸다. 7시에 깨긴 했는데 너무일러 다시 자고 일어나니 8시 45분... 애들을(승연, 은정) 깨워 9시 40분 기차를 타고 가려 했는데 너무 시간이 촉박해 실패. 결국 11시 40분 기차를 타고 Praha로 출발. Praha에 도착 해서 Info를 가서 지도를 달라니 1 유로를 달라고 해서 무료는 없냐니까 틱틱 대더니 결국엔 의자에 가 앉더니 대답도 안한다. 무슨 이따위로 불친절한 Info..
짱예쁜이 2008/04/09 02:50 L R X
너가 한국사람처럼 보이긴 했나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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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날
배낭여행 | 2008/03/02 08:22
2008년 2월 7일 목요일 날씨 흐림
짤츠부르크(Salzburg)에서 린츠(Linz).
린츠(Linz)에서 체스키 부데요비치(Chesky Budejobic)


이 날은 여행에 있어서 최악의 날이었다. 원래 가고자 했던 명소들은 단 한 군데도 돌아보지 못했을 뿐더러 하루종일 기차나 기차역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밥다운 밥도 한번 먹어보지 못했던 날이었다.

아침 일찍 짤츠부르크 중앙역에서 린츠행 기차표를 끊었다. 린츠는 짤츠부르크와 내가 전에 머물던 비엔나의 가운데 정도에 위치하고 있는 기차로는 두 시간 정도 떨어져있는 도시다. 지리적으로 오스트리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여러 철로가 연결되어 있는 오스트리아 철도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린츠행 기차는 많았기 때문에 얼마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기차를 탈 수 있었다. 두어 시간 후 11시 쯤 린츠(Linz)역에 도착했다. 역사의 규모가 컸다. 바로 매표소로 가서 체스키 부데요비치행 열차표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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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로 린츠에서 체코의 체스키 부데요비치까지 가서 그 곳에서 다시 체코 지방 열차로 갈아타 체스키 크룸로프라는 곳으로 가려던 계획이었다. 표를 끊고 기차시간표를 보니 몇 분 후 프라하행 기차가 출발할 예정이었다. 체스키 부데요비치가 프라하로 가는 길에 있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프라하행 열차를 타는 줄만 알았다. 이 착각에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지만. 플랫폼에 올라가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분명 프라하행 열차인 줄 알았던 이 기차가 전광판에는 루블라냐로 행선지가 표시되어 있는 것이었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플랫폼에 서있던 어떤 아줌마에게 이 기차가 이 표가 맞냐고 물어보았다. 아줌마는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난 아무 의심없이 기차에 올랐다.

이제 체코로 간다는 설렘을 즐기고 있던 도중 검표원이 왔고 그 검표원은 내 표를 보자 이 기차는 이표가 아니라고 내가 기차를 잘못 탔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 기차는 슬로베니아행 기차라는 것이었다. 검표원은 다음 역에서 내려서 다시 린츠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방 있을 줄 알았던 그 '다음 역'은 무려 한 시간 뒤에나 나타났고 기차가 잠시 정차했다. 나는 부랴부랴 기차에서 내렸고, 친절하게도 그 검표원은 나에게 바로 맞은 편에 있는 기차를 타라고 손으로 가리켜주었다. 나는 기차표를 안사고 기차를 타도 되나 의문이었지만 승무원이 타라고 가리키는데 냉큼 탈 수 밖에 없었다.
갈아탄 기차는 꽤 시간이 지나서야 출발했고 다행이 그 기차의 검표원은 내가 당황한 눈빛으로 이 기차표를 보여주었더니 내 처지를 알겠다는 듯 웃으면서 그냥 넘어가주었다. 그 검표원의 이해심 많은 듯한 웃음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정말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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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한 시간 넘게 기차로 달려서 린츠로 돌아왔다.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기차 시간표를 보니 프라하행 기차는 세 시간 정도 후에 있었다. 뭐 별 수 있나, 이 곳 린츠는 잘 모르는 곳이라 어딜 돌아다니기도 그렇고 그냥 역사에서 할일없이 기차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역 내의 마트에서 샌드위치를 사먹으며 반나절 동안 지루하디 지루하게 기차를 기다렸다.

드디어 오후 5시 정도에 프라하행 기차를 탈 수 있었다. 난 여전히 프라하행 기차를 타면 되는 줄 알았다. 한 번 기차를 잘못탄 탓에 반나절을 허송세월로 낭비해야만 했던 나는 드디어 맞는 기차를 탔다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던 찰나, 검표원이 내 표를 검사하더니 갑자기 체코말로 또 뭐라 그러는 것이 아닌가. 정말 난감했다. 하루에 두 번씩이나 기차를 잘못 타다니. 더군다나 그 검표원은 영어는 거의 할 줄 모르는 체코인이라 대화도 안통했다. 그저 이 표는 안된다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 자리에서 휴대용 매표기를 가지고 다음 정착역인 Simmering역에서 내리라는 것이었다. 검표원이 그러라는데 별 수 있나, 한참 뒤 기차가 멈춰섰고 나는 내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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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mering역은 그야말로 시골 기차역이었다. 주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아주 작은 역사와 한 명의 철도원 밖에는 없었다. 이미 해가 져서 매우 어두웠다. 나는 그 철도원에게 프라하로 가는 기차가 있냐고 물어봤지만 그는 시간표가 프린트된 종이를 건내주면서 오늘 프라하로 가는 기차는 이미 끊겼다고 알려주었다. 막막하고 난감했다. 이 곳에서 잠이라도 자고 내일 일찍 출발하려는 생각에 그 철도원에게 그럼 이 근처에 호텔이 어디있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는 이 근처에는 호텔이 아예 없다고 그러는 것이었다. 내가 무척이나 당황한 표정을 짓자 그는 내 사정이 딱했는지 원한다면 여기 역사에서 하루를 재워준다고 그랬다. 여기서 자야하나 난감해하던 도중 철도원이 내게 준 프린트물에 체스키 부데요비치행 기차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철도원에게 체스키 부데요비치로는 갈 수 있냐고 묻자 그 기차는 아직 남아있다고, 한 시간 후에 이곳에서 타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또 한 시간을 그 허름한 시골 역사에 앉아 기다려야만 했다. 반나절을 무료하게 기차를 기다리고 보니 이젠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졌다. 한 시간 뒤 체스키 부데요비치행 기차를 탔다. 알고보니 내가 린츠에서 처음에 산 체스키 부데요비치행 기차표가 바로 이 기차의 티켓이었다. 검표원이 내 표를 보고 이상 없다는 듯 그냥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안도를 했는지, 한숨을 푹 쉬었다. 하지만 이날의 고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두 시간을 달려 드디어 체코땅 체스키 부데요비치에 도착했다. 밤 9시가 넘어선 시각이었다. 이미 체스키 크룸로프로 가기엔 틀렸고 어쩔 수 없이 체스키 부데요비치 역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체스키 부데요비치 역을 나서는 순간, 으레 여느 유럽의 도시들처럼 기차역 앞에 호텔들이 쭉 간판을 보이고 있을 줄만 알았는데, 웬걸 아무것도 없었다. 당황했다. 지금이야 추억을 회상하듯 미소지으며 글을 쓰고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당황하고 난감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우리나라랑 달리 택시 한 대도 지나다니지 않았고, 근처에 호텔이 어디있냐고 물으려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Excuse me' 말을 걸면 영어 못한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를 피하는 것이었다. 정말 길거리에서 노숙해야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역 근처의 건물들을 해매고 다니다가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심정에 어떤 반지하 바에 사람 몇이 있는 것을 보고 'Excuse me'부터 시작해 무작정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 곳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친절한 아저씨 한 분이 계셨다. 내가 호텔을 찾고 있다고 사정을 말하자 그 아저씨가 바의 주인아주머니와 뭐라고 하더니 바로 이 건물이 펜션이라고 설명해주고 원한다면 이 곳에 잘 수 있도록 체크인해주겠다고 했다. 알고보니 내가 들어갔던 건물이 펜션이었는데 간판이 없어서 내가 몰랐던 것이었다. 그 아저씨는 친절하게 방도 구경시켜주고 영어를 거의 한 마디도 못하는 체코인 주인 아줌마와 나 사이에서 체크인을 할 수 있도록 통역도 해주었다. 어디서 왔는지 여행 중인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당시 내가 환전을 안해서 체코 돈이 없었지만, 만약 돈이 있었다면 그 아저씨에게 위스키 같은 술 한 잔 대접하고 싶었을 정도로 친절했고 나에게는 은인과 같았다. 그 아저씨 아니었으면 정말 길거리에서 잘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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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얻은 700Kc짜리 방은 정말 좋았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아무 호텔이나 들어가 바가지 쓸 각오까지 하고 있었지만 아주 싼 가격에 괜찮은 방을 얻었다. 욕실엔 큼지막한 욕조까지 있어서 따뜻한 물을 받아 푹 쉬면서 하루종일 계속되었던 고난으로 한껏 긴장되었던 몸을 푹 이완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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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린츠, 슬로베니아, 체스키 부데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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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allade 2008/07/11 06:06 L R X
정말 고생하셨네요...저도 다다음주에 체스키가려고 하는데..걱정되네요...
아다리 2008/07/11 10:40 L X
우와~ 체스키에 가시다니 부럽네요!
저두 또 가고 싶은데~
정말 체스키만큼 동화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곳도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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