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날 - ③ 헤트버 바스타이
배낭여행 |
2008/02/23 17:52
|
|
|
헤트버 바스타이(Hettwer Bastei)
신시가 동쪽으로 솟아있는 작은 산에 합스부르크 시절 30년 전쟁 당시의 보루가 남아있다. 이 곳에 오르면 구시가와 호웬 짤츠부르크 성채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으로는 신시가의 모습까지도 시원히 보인다. 전망 좋은 곳이다. 오후가 되고 다시 날씨가 어둑어둑 구름이 잔뜩꼈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어느새 관광객들도 하나둘 줄어들기 시작했고 헤트버 바스타이에는 관광객의 거의 없었다. 산책을 하러 나온 것 처럼 보이는 노부부가 있을 뿐이었다. 역시 듣던데로 전망은 괜찮았다. 짤츠부르크가 거의 한눈에 들어오다시피 했다.헤트버 바스타이에서 바라본 호웬 짤츠부르크 성과 구시가지
성 꼭대기에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던 것 처럼 여기서도 벤치에 앉아 한동안 경치만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 바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하루종일 걷는 바람에 다리도 아팠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멍하니 있는 것도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다. 헉헉대는 내 숨소리가 조용히 내 귀에 들릴 때만큼은 세상이 정말 고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없다. 성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저런 으리으리한 곳에 살았던 대주교들은 어떤 생활을 했을까. 성 아래 아기자기하게 살고 있던 일반 사람들하고는 왕래가 많았을까. 대주교들은 왜 농민들의 미움을 샀을까. 다수의 농민들의 미움을 사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부귀영화의 권세를 누리며 살았을까. 이 곳 사람들에게는 종교라는 것이 그만큼 큰 것일까. 생각과 물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한 치의 틈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을 보는 것도 재밌다. 유럽의 거의 모든 도시들이 죄다 이런 모양을 하고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골목이라는 것이 없다. 한 치의 틈도 없이 건물들이 붙어있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공간을 최대한 아끼려 건물들을 붙여 짓는 것 같진 않다. 이런 건물들에 들어가보면 겉으로는 그리 크게 보이지 않아도 건물의 내부는 생각보다 꽤 크다. 특히 이 쪽 건물들의 특징은 바닥부터 천장까지의 길이가 굉장히 높다는 거다. 우리나라의 평균적인 천장 높이보다 두 배 정도는 더 높은 곳에 천장이 있다. 왜 그렇게 천장을 높이 짓는지 궁금하다.
하루종일 돌아다녔더니 배가 고팠다. 펜션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중앙역 근처 버거킹에 들렸다. 여긴 맥도날드는 없고 버거킹만 있었다. 역시나 햄버거를 뜯었다. 그런데 갑자기 먹구름이 드리우더니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곳의 날씨는 참 변화무쌍했다. 구름끼고 해가 쨍쨍하고 다시 소나기가 내리고. 펜션에 돌아가던 중 펜션에서 먹을거리를 동네 마트에서 샀다. 그 곳에 사는 주민들이 이용하는 마트같았다. 비누도 사고 물과 요구르트, 빵을 샀다. 맨날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슈퍼나 가게에서 먹거리를 사다가 이런 대형 마트에서 장을 한 번 보니 무척 쌌다. 다음부터는 뭣도 모르고 관광지에서 뭘 사먹기보다는 이런 곳에서 장을 봐서 숙소에서 직접 요리를 해먹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그 곳에서 파는 빵의 종류가 매우 다양해서 고르는데 애먹었다. 결국 골랐지만 그 빵은 너무 뻑뻑하고 맛도 별로 없어서 남겼다.허기진 배를 채우려 장을 봐왔던 빵과 음료수, 비누
하루종일 돌아다녀서 피곤했는데 펜션에 들어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푹신한 침대와 부드러운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 누워있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거기다가 텔레비전에서는 축구중계까지 해주고, 빵을 뜯으면서 축구를 봤다. 벨기에와 독일의 경기였는데 20세 이하 청소년 축구 같았다. 마린이라는 독일 선수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잘뛰더라. 짤츠부르크에서 이틀 동안 묵었던 PENSION ELIZABETH
|
|
|
| 이 글의 관련글(트랙백) 주소 :: http://adari.tistory.com/trackback/108 |
|
|
넷째날 - ② 호웬 짤츠부르크 성
배낭여행 |
2008/02/22 02:40
|
|
|
게트라이더 거리와 모차르트 생가를 보고 난 후 다시 구시가 중심부 쪽으로 걸어나왔다. 낮이 되자 아침의 우중충한 날씨는 구름과 함께 온데간데 사라지고 해가 뜨기 시작했다. 아침까지만해도 거의 보이지 않았던 관광객들도 눈에 띠게 많아졌다. 콜레기엔 교회, 프란체스카 교회를 거쳐 돔 광장으로 왔다. 교회들은 원래 손님들을 잘 안받는지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돔 광장(Dorm Platz) 중앙에 있는 커다란 마리아 상도 다른 동상들과 마찬가지로 보수공사를 하는지 유리막이 쳐져 있었다. 겨울철 내리는 눈으로부터 상을 보호하려고 하는건가. 웅장하고 위엄있었던 돔 성당 내부
돔 성당 내부가 개방되어 있길래 안으로 들어가봤다. 역시 유럽의 성당을 다닐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건물 규모가 대단하다. 먼 과거인 중세 시절 어떻게 저렇게 높고도 크게 지붕을 쌓고 탑을 쌓아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이런 거대한 건축물 안에 있자니 나도 모르게 뭔지 모를 경외감마저 들 정도였다. 아주 먼 옛날부터 이 곳 사람들은 이 엄중한 곳에서 기도를 하고 신앙을 키웠을테다. 그리고 이 곳에 있는 성당들은 대부분 엄청난 크기의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다. 무지막지하게 큰 파이프 오르간을 보고 있자면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이 생각이 난다. 선생님은 늘 우리학교 교회 건물에 큰 규모의 파이프 오르간이 만들어지기를 바라셨다. 언제는 유명한 교회와 성당들에 설치되어 있는 파이프 오르간을 사진들로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일일히 설명을 해주시곤 했는데 음악 선생님이 이 곳의 오르간들을 보면 정말 좋아하실 것 같았다.
돔 광장을 지나 호웰 잘츠부르크 성 쪽으로 나가는 도중에 한 기타리스트와 콘트라베이스트가 길거리 연주를 하고 있었다. 이런데서 거리 공연을 듣는 것도 운치있고 괜찮았다. 듣기 좋아서 한동안 캠코더로 그들의 연주를 찍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사람들이 아주 큰 체스를 두고 있었다. 땅에 체스판을 그려놓고 사람 다리만한 체스를 가지고 체스게임을 하고 있었다. 이색적이고 재밌어보였다. 하지만 체스를 두는 두 사람은 굉장히 진지했다. 한 수 한 수를 두는데 매우 신중하게 돌을 움직였다. 그런 모습이 더욱 웃겼다. 시간만 되면 나도 기다렸다가 체스게임을 하고 싶기도 했다. 어쨌건 그렇게 큰 체스게임은 처음이었다.카피텔 광장에서 한가로이 왕 체스 게임을 두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돔 성당 아래 쪽에 있는 카피텔 광장(Kapitelplatz)에서는 산위에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호웬 짤츠부르크 성채가 한 눈에 보였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중세시대 성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성에 못미치는 아래 쪽에는 성 페터 교회와 함께 왕들과 대주교들의 무덤이 모여있다는 카타콤베가 자리잡고 있었다. 카타콤베에 들어가봤는데 너무도 아기자기한 무덤 비석들과 꽃들, 철제 장식들 때문에 묘지라는 느낌보다는 아름답게 장식된 정원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일반적인 공동 묘지처럼 한적한 묘지도 괜찮지만 이렇게 아름답고 아기자기하게 묘지를 꾸미는 것도 나름 괜찮을 것 같았다.카타콤베, 이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묘지는 처음 봤다.
카타콤베에서 나와서 호웬 짤츠부르크 성으로 걸어올라갔다. 성채 꼭대기까지 데려다주는 케이블카가 운행하고 있었지만 쉬엄쉬엄 걸어서 올라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성벽을 따라서 천천히 올라갔다. 대주교가 농민들의 공격을 막고자하여 만들었다던 호웬 짤츠부르크 성. 때문인지 성채 위로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가파르고 성벽은 험난했다. 성안에 올라서자 성 내부는 생각보다 넓고 건물들도 많았다. 견고하게 만들어진 성벽과 성 내의 건물들을 보면서 과거 절대적이었던 대주교의 권력과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성의 군데군데마다 권위적인 대주교의 조각상들이 눈에 띄었다. 성 꼭대기에 다다르자 성 벽 아래로 짤츠부르크의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이 날은 날씨가 대부분 흐렸지만 내가 성 꼭대기에 올라서자 부분부분 해가 들어 시가지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해가 비추자 시가지에 있는 백색의 건물들이 환하게 제 빛을 발하는 모습이 볼만 했다.호웬 짤츠부르크 성채에서 내려다본 짤츠부르크의 시가지 전경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오는 시원한 경치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시원했다. 시가지 뒤 쪽 멀리로는 오스트리아의 상징이기도 한 눈 쌓여있는 알프스 산맥도 보였다.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성채 내에 있는 전망대에서 멍하니 짤츠부르크 시가지를 내려다보았다. 환하게 빛을 발하는 건물들도 위엄있는 교회와 성당들도 개미만큼 조그만하게 보이는 관광객들이 이리저리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도 모두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자주 반란을 일으키는 농민들을 피해서 대주교가 성을 쌓아서 살았던 곳이니 만큼 크고 작은 전투도 자주 치뤘을 호웬 짤츠부르크 성. 전쟁에 쓰였을 성벽의 대포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성벽에 뚫린 구멍 사이로 시가지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커다란 재래식 대포. 한 때 사납게 불을 뿜었을 대포의 위용이 굳세보였다.
성 내부에는 동유럽 쪽에서 유명한 인형들을 전시해 놓은 전시관도 있었다. 인형극을 할 때 어떻게 인형을 사람들이 움직이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도 되어있고 섬세하게 만들어진 갖가지 인형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한참동안 성 내부를 맴돌다가 슬슬 시가지로 다시 내려왔다. 내려오는 도중에 성채가 만들어진 언덕을 따라서 쭉 아기자기한 집들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모든 집들이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이번에 다녔던 동유럽의 도시들 중에서 아마 중세의 모습 그대로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었던 도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언덕을 내려오면서 봤던 아기자기한 골목과 집들 중 한 곳을 카메라에 담았다.
내가 호웬 짤츠부르크 성에서 내려오자마자 이내 곧 날씨가 다시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바로 전까지만해도 시가지를 비추던 햇빛은 사라지고 검은 구름이 몰려들어왔다. 그런 험악한 하늘의 모습이 성곽과 더해져서 순간 호웬 짤츠부르크 성이 굉장히 위엄있게 보였다. |
|
|
| 이 글의 관련글(트랙백) 주소 :: http://adari.tistory.com/trackback/107 |
|
|
넷째날 - ① 짤츠부르크 구시가
배낭여행 |
2008/02/22 01:43
|
|
|
2008년 2월 6일 수요일. 날씨 맑았다 흐렸다 천둥번개에 집중 호우.
푹신한 침대에서 혼자 숙면을 취하다보니 아침 일찍 일어났는데도 몸이 개운했다. 기분 좋게 씻고 나갈 준비를 하고 펜션을 나와 걸어서 신시가까지 가보기로 했다. 눈으로 보기에는 펜션에서 신시가 쪽이 그렇게 멀어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걸어보니 거리가 상당했다. 어제와는 달리 날씨가 찌뿌둥하고 좋지 않았다. 구름이 많이 껴있었고 바람도 제법 불어서 쌀쌀했다. 어제 내가 맴돌았던 신시가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어제 낮과는 달리 관광객들은커녕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늘은 어두컴컴하고 왠지 우울한 분위기였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미국이 아닌 유럽으로 유학을 가는 경우에, 특히 여학생일 경우 유럽의 전형적인 흐린 날씨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는 학생들이 상당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왜 그러는지 알 것 같았다. 회색의 우울한 하늘 아래에 회색의 우울한 석조건물들을 보자니 우울하다못해 침울해진다. 우울한 거리를 걷는 것도 재미없고해서 트램을 타고 잘자흐강 다리를 건너 구시가로 갔다. 말이 신시가 구시가지 인구 천만이 넘게 사는 대도시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그저 작은 동네, 좀더 심하게는 시골 읍내 수준이다. 단지 그 읍내가 끝내주게 고풍스럽고 멋있다는거. 좋지 않은 날씨에 절망하면서 구시가를 훠이훠이 걸어다니다보니 골목골목이 상당히 복잡하고 헷갈렸다. 겨우겨우 지도에서 내 위치가 어딘지 확인하고 가장 먼저 카라얀 광장과 말이 물을 마시던 곳(분수대)을 가보기로 했다. 다소 실망스러웠던 '말이 물을 마시던 곳' 카라얀 광장에 위치. 원래 짤츠부르크의 트레비 분수라고 불릴 정도로 화려하고 관광객이 많은 곳인데 실망스러웠다.
분명 위치상으로는 여기가 카라얀 광장이 맞고 내 앞에 보이는 분수대 비스무리한 것이 말이 물이 마시던 곳(Pferdeschwemme)이 맞는데 특별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광장에는 출근하는 차들이 끊임없이 지나다니고 있었고 분수대에는 물이 매말라 바닥까지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분수대 조각은 공사를 하는 모양인지 막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가슴 깊이 실망스러웠다. 아무리 비시즌인 겨울이라지만 너무했다. 카라얀 광장이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말이 광장이지 그냥 찻 길이었고 그 양쪽에는 보도블럭 밖에 없었다. 깜빡하고 장갑을 안가지고 왔는데 날씨가 너무 쌀쌀해서 손이 시려웠다. 하는 수 없이 게트라이더 거리 가는 길에 있는 작은 기념품 가게에서 저렴해보이는 장갑을 팔길래 샀더니 가격이 내 기억으로 7유로 정도. 우리나라 지하철에서 행상이 파는 천원짜리 장갑이나 별다를 바 없이 보이는데 돈이 아까웠다. 짤츠부르크의 명물 게트라이더 거리. 간판들이 모두 철제세공으로 만들어져 있다.
카라얀 광장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게트라이더 거리 입구가 나왔다. '걸어서 세계속으로'라는 KBS 여행 프로그램에서 소개되기도 한 게트라이더 거리는 골목 입구부터 끝까지 쭉 펼쳐진 철제 간판들로 유명한 거리다. 이 거리의 모든 상점은 사진과 같이 의무적으로 철제양식으로 간판을 달아야 한단다. 그리고 그 철제 양식에는 이 상점이 무엇을 파는 상점인지 알 수 있도록 만든 각기 다른 양식들도 볼거리중 하나이다. 그 유명한 맥도날드도 이 게트라이더 거리에 와서는 다른 상점들과 같이 간판을 철제 양식으로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천하의 맥도날드도 게트라이더 거리에서는 간판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게트라이더 거리는 단순히 눈요기만이 아니라 통일성없고 무절제한 간판 양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의 참고할 만한 모델로도 충분했다. 거리의 모든 상점이 각기 다르지만 어느 정도의 일체감있는 간판을 달고 있는 모습이 상당히 보기 좋았다. 통일성이 어떻드니 미적 감각이 어떻드니를 모두 떠나서 그냥 그저 단순히 맨 눈으로 보기에도 우리나라의 그것들보다는 훨씬 괜찮았다. 아침시간이 지나고 점점 낮이 다가오자 이 게트라이더 거리에도 관광객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마주쳤다. 한 패키지 그룹에서 온 모양인지 가족 단위의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거리의 이곳저곳을 활보하고 다녔다. 오랜만에 한국사람들보니 괜히 반가워졌다. 게트라이더 거리의 맥도날드에서 한 끼를 해결했다. '걸어서 세계속으로'에서도 나왔던 바로 그 맥도날드 가게였다. 모차르트 생가, 건물 전체가 박물관처럼 꾸며져 있다. 입장료도 비싸다.
게트라이더 거리 중간 즈음에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태어난 생가가 우뚝하니 자리잡고 있다. 노란색의 육중한 건물이었다. 건물 외벽 가운데에는 Mozarts Geburtshaus라는 황금색의 글이 자랑스럽기 이 건물이 모차르트의 생가임을 자랑스럽게 알려주고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자랑이자 짤츠부르크의 특산물이기도 한 모차르트. 여기 사람들의 모차르트 사랑은 어찌보면 지독스러울 정도다. 매 여름과 가을 시즌마다 모차르트 축제를 하고 초콜릿, 커피, 옷 등 기념품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모차르트와 연관시켜 모차르트 기념품을 만들어 팔고, 모차르트가 잠깐 살았던 곳이나 교육을 받았던 곳들은 전부다 박물관을 만들어버려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하긴 괜히 짤츠부르크가 모차르트의 도시라고 불리진 않을 것이다. |
|
|
| 이 글의 관련글(트랙백) 주소 :: http://adari.tistory.com/trackback/106 |
|
|
셋째날 - 짤츠부르크
배낭여행 |
2008/02/21 21:22
|
|
|
2008년 2월 5일 화요일 빈 움밧 더 라운지에서 기상
같은 방을 쓰고 있었던 나머지 세 명의 룸메이트들이 아침이 되어도 다들 일어날 줄을 몰랐다. 혼자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하는데 큰소리 안내려고 살금살금 걸어다녔다. 그러다가 대만인 룸메이트가 잠에서 깨고 졸린 눈을 부비며 아침인사, 굿모닝. 역시 호스텔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그 곳 핫초코는 먹어도 먹어도 맛있다. 속이 따뜻해지는 든든한 느낌. 원래 2월달 동유럽 날씨는 굉장히 춥다고 들어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왔는데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내복을 준비해가야하나 고민했는데 막상 여기 와보니 생각보단 괜찮았다. 아직 제대로된 동유럽이 아니고 오스트리아여서 그려러니 했다. 짐을 챙기고 나와서 빈서역에서 짤츠부르크행 기차 티켓을 끊었다. 아직 빈에서 못본 것이 많았지만 이주 뒤에 귀국하기 전 다시 빈으로 올 예정이니 그때 보려고 생각했다(후의 일이지만 이 계획은 막상 귀국일이 다가오자 수포로 끝나버렸다). 빈서역은 겉으로 보기에 그리 규모가 큰 편이 아니었지만 오스트리아 부근에 있는 국외 주요 도시의 기차들이 거의 모두 이곳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Wien WestBahnhof - Salzburg HBF 오스트리아 QBB 열차.
오스트리아나 우리나라나 KTX를 제외한 일반 열차의 속도는 비슷했다. 300여 킬로미터를 가는데 세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우리나라의 새마을 열차와 비슷한 정도의 수준이었다. 열차는 신형이었는지 깨끗하고 좋았다. 검표원도 친절했고, 기분 좋게 모차르트의 도시 짤츠부르크로.
2008년 2월 5일 화요일 오후 1시경 짤츠부르크 도착
짤츠부르크 중앙역 (Salzburg HBF)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도시이고 오스트리아 한 주의 주도라기에 그래도 꽤 큰 도시인줄 알았는데 생각과는 판이했다. 도시 시가지도 매우 작았고 한 눈에 보기에도 매우 작은 도시로 보였다. 역에 내려서 가장 먼저 역에 있는 케밥집에서 핫도그를 사서 광장에 앉아서 먹었다.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먹었던 핫도그, 정말 감질맛났다. 아 지금도 먹고 싶다. 모든 짐을 베낭에 짊어지고 시가지를 둘러보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서 미리 알아뒀던 펜션에 먼저 체크인을 해야할 것 같았다. 위치가 적힌 쪽지를 보고 부랴부랴 펜션을 찾아갔지만 웬걸 낮 시간이라 그런지 문이 닫혀있었다. 창문에는 오후 4시부터 문을 연다는 절망적인 공고. 4시까지는 아직 몇 시간이나 남아있었기에 죽치고 기다릴 수도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다시 짤츠부르크 중앙역으로 갔다. 역 코인락커에 짐을 맡기고 트램인지 버스인지 구분이 안가는 것(매연을 줄이려는 의도인지 여기는 버스도 트램처럼 전깃줄로 이어서 전력으로 운행하고 있었다)을 타고 시내 중심부로 나갔다.
중앙역에서 몇 정가장 가지도 않아서 내렸더니 짤츠부르크 신시가. 시가 정말 작았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왔던 것으로 유명한 미라벨 정원과 미라벨 궁전도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서 좀 실망했다. 또 겨울이라 책이나 인터넷에서 봤던 초록의 화려한 미라벨 정원이 아니라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만 들어내고 있었던 다소 칙칙한 미라벨 정원이었다. 상상하던 미라벨 정원은 색색으로 꽃도 피어있고 나무는 푸른 잎들로 울창해져 있는 그런 모습이었는데 물론 겨울이라 그랬겠지만 너무도 달랐다. 단지 쨍쨍한 햇빛 덕분에 궁전 건물이 순백색의 화사함을 드러내고 있던 것이 다행이었다.짤츠부르크의 미라벨 궁전,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왔던 곳으로 유명하다.
정원 벤치에 앉아서 한동안 따사로운 햇빛을 즐겼다. 이 곳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햇빛이 쨍쨍한 날이 많지 않다. 그래서 햇빛이 드는 날이면 사람들 모두 공원이나 정원에서 한가로이 일광욕을 즐긴다. 날도 겨울인지라 따뜻한 햇빛을 쬐고 있자니 느긋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쿠어 정원에서 또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다가 잘자흐강변으로 나왔다. 강변으로 난 길을 따라서 조깅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같이 걸어다니는 관광객들도 많았다. 강변에 위치한 운치있는 카페들이 많았다.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돈을 최대한 아껴야하는 배낭여행객 신분에 경치 좋은 카페에서의 차 한 잔은 왠지 사치 같았다.
다리 건너에 있는 구시가는 가보지 않았다. 강변을 따라 이어져있는 구시가 건물만 대강 눈으로 훑었을 뿐이었다. 구시가는 다음날 제대로 돌아볼 예정이었다. 모차르트가 살았던 모차르트의 집 쪽으로 걸어갔다. 지도에는 분명 이 곳이 모차르트의 집이 맞긴 맞는데 관광객들이 전혀 없었고 다른 집들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옆에는 모차르테움이라는 음악 교육원이자 극장이 있었다. 유명한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도 이 곳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문이 닫혀있었다. 모차르트의 집과 마찬가지로 주위에는 관광객들도 거의 없었고 생각보다 썰렁한 분위기였다.모차르테움 Mozarteum. 음악교육원이자 실내악이 공연되는 극장이기도 하다.
신시가를 한가로이 거닐다보니 어느새 저녁이 될 시간이었다. 배가 고프기도하고 어서 펜션으로 들어가고 싶기도 해서 다시 중앙역으로 돌아와 짐을 찾았다. 또 햄버거 가게에서 저녁 끼니를 떼웠다. 케밥이나 햄버거, 핫도그로 끼니를 떼우는 일이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걸어서 5분에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펜션으로 향했다. 이름은 펜션 엘리자베스(Pension Elizabeth) 인터넷 카페에서 짤츠부르크 숙소로 추천받은 곳이었다. 값도 싱글룸이 40유로 정도로 매우 쌌다. 이틀 동안 호스텔에서 부대끼다보니 돈을 조금 더 내서라도 혼자 싱글룸에서 쉬고 싶은 생각이었다. 데스크에 있는 여직원이 굉장히 친절했다. 이제 점점 영어로 체크인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맨처음 빈에서 체크인할 때는 빠른 영어를 잘 못알아들어 고생했었는데 이제는 체크인할 때 여직원이랑 웃으면서 여유있게 대화할 수 있었다. 요금이 40 유로밖에 되지 않아서 싱글룸이라고는 하지만 시설은 별로 좋지 않겠거니 했는데 생각보다 깨끗하고 방도 넓고 좋았다. TV도 있어서 오스트리아 텔레비젼 방송도 실컷 볼 수 있었다. 짤츠부르크의 펜션 엘리자베스, 싱글룸 40유로 싸기도 쌌지만 방도 너무 좋았다. |
|
|
| 이 글의 관련글(트랙백) 주소 :: http://adari.tistory.com/trackback/105 |
|
|
둘째 날
배낭여행 |
2008/02/21 05:53
|
|
|
2008년 2월 4일 월요일
아마 내 기억으로는 그리 잠을 푹 자진 못했을테다.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하긴 했지만 처음 호스텔에서 그것도 외국에서 자는 잠이라 긴장 때문에 중간중간 깼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도 괜찮았다. 씻고 짐을 챙기고 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먹었다. 우유와 핫초코, 시리얼과 버터, 빵, 햄, 치즈. 지금이야 지겹지만 그 땐 처음인지라 아주 맛있게 먹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은 뒤 짐을 챙기고 체크아웃을 했다. 오늘밤은 꼭 Huttledorf 호스텔을 찾아서 그곳에서 자리라 다짐했다.
여행자용 24시간 대중교통 티켓(지하철 트램, 버스 모두 하루종일 탈 수 있다) 빈의 지하철 3호선(좌석이 마주보고 앉게 되어있고 열차가 작았다)
빈서역 코인락커에 짐을 맡긴 후 카메라나 필요한 것만 챙겨서 지하철을 타고 빈 구시가로 향했다. 빈의 지하철은 우리나라의 그것이랑은 생김새가 매우 달랐다. 우리나라는 좀 널찍널찍하고 시원한 느낌이라면 빈의 지하철은 생각보다 작고 아기자기한 느낌이랄까. 어쨌건 남의 나라 지하철을 타보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Stephan Platz에 도착. 역에서 올라오자마자 바로 거대한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슈테판 성당. 겨울철이라 아쉽게도 일부는 공사중이어서 성당의 제대로된 외관을 보진 못했다. 하지만 측면쪽이나 그 규모만으로도 위용을 내뿜기엔 충분한 크기였다. 성당 주위로는 넓은 슈테판 광장이 펼쳐저 있었고, 이른 아침인데도 꽤 사람들이 있었다. 성 슈테판 성당 (빈 구시가의 중심부에 위치)
슈테판 성당 한쪽으로는 빈의 최고 번화가라고 할 수 있는 게른트너 거리가 쭉 이어져 있었다. 우리나라 명동 거리처럼 (물론 밤문화가 발전되어 있는 우리나라 명동 거리와는 쨉이 안되지만) 수많은 상점들과 카페, 레스토랑들이 밀집되어 있었고 사람들도 많이 지나다녔다. 특히 명품 브랜드의 옷가게가 많아서 관광객들이 쇼핑을 자주하는 곳이었다. 아침 시간인데도 관광객들과 현지인들로 사람들이 꽤 지나다녔다. 게른트너 거리를 통과해서 국립오페라극장까지 나왔다. 세계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빈국립오페라극장. 오페라극장 앞에서 트램을 탔다. 빈의 구시가를 우리나라 지하철 2호선처럼 순환하는 1,2번 트램을 타고 구시가지를 한 바퀴 쭉 돌아봤다. 트램을 처음 타봤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차와 같은건데 트램을 타고 시가지를 구경하는 것도 나름 괜찮았다.빈의 구시가지를 빙빙 도는 1번 트램(이건 버스도 아니고 지하철도 아니고 그저 신기할 뿐)
트램이 다니는 링을 따라서 여기저기 볼 것이 많았다. 먼저 국립오페라극장부터 시작해서, 대학 강의에서 지겹도록 들었던 프로이트가 공부했다던 빈 대학, 미술사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왕궁과 갖가지 광장들, 시청사, 국회의사당 등등. 이 날 하루는 구시가지를 빙빙도는 트램을 타고 내리면서 구시가지를 구경했다. 슈테판 성당 부근에 있는 피가로 하우스도 가봤다. 피가로 하우스는 모차르트가 거주했던 집이었는데 그 곳에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했다고 해서 피가로 하우스가 되었단다. 모차르트가 실제로 살았던 곳이라길래 냉큼 들어갔더니 입장료 정말 비싸다.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 정도 했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별 수 있나 돈내고 들어가서 이것저것 봤다. 모차르트가 사용했다던 오르간부터 갖가지 가구들까지. 몇 백 년 전 모차르트가 실제로 사용했던 물건들이 바로 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했다.호프부르크 왕궁 중 신왕궁. 왕궁 내부는 휴관일이라 문을 닫아 보지 못했던.
호프부르크 왕궁도 가봤다. 역시 한때 엄청난 권세를 누렸던 합스부르크가의 궁전답게 궁의 건물이나 정원의 규모가 대단했다. 신왕궁은 문이 잠겨서 못들어가봤지만 구왕궁에는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이 구왕궁 내에 있는 악기 박물관이었는데 다행이 이 날 문을 열었다. 입장료, 또 난데없이 비쌌다. 별 수 있나, 그냥 내고 들어갔다. 정말 많은 악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구왕궁 내에 있는 악기 박물관
아주 과거의 악기에서부터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악기의 변천사까지. 바이올린이나 첼로는 한때 현이 여섯개였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볼만했다. 악기 전시관이 끝나자 이번엔 무기 전시관이 있었다. 선사시대때부터 중세,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인들이 사용해왔던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칼부터 시작해서 총, 엄청 무거워보이는 철갑옷, 석궁까지, 영화 속에서나 보던 무기들이 모조리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전신을 둘러쌌던 철제갑옷은 너무 둔해보였다. 이런 무거운 갑옷들 때문에 유럽인들이 몽고의 기마부대에게 패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비로소 이해됐다.
전 날은 하루종일 비행기를 탔었고 이 날이야말로 제대로 여행을 하는 첫 날이었다. 혼자 여행을 하다보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먹거리였다. 오스트리아는 물가가 너무 비싸서 제대로 된 레스토랑 집에 들어가자니 높은 가격도 걱정이었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혼자 밥을 먹기도 좀 그랬다. 그래서 빈에서는 거의 대부분 맥도날드나 조그마한 케밥집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특히 맥도날드가 그렇게 반갑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메뉴 주문도 수월했고 맛도 늘 먹던 맛이었고 가장 좋은 것은 구석 창가에 앉아서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혼자 밥을 먹기에도 딱이었다. 또 맥도날드는 어디에나 있었다. 구시가지를 거닐면 어딜가나 노란 M자 찾기가 힘들지 않았다. 거기에서는 세트메뉴가 5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7,8천원을 넘는다. 정말 비쌌다.
베토벤이 살았다던 파스콸라티 하우스를 찾아갔는데 아쉽게도 월요일은 휴관이라 문이 닫혀있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 걸음마도 못 뗐을 때 아빠가 하루는 거실에서 오디오로 베토벤의 5번 '운명' 교향곡을 틀었다고 한다. 그런데 애기였던 내가 그 오디오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그 곡을 끝까지 꼼짝도 않고 들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내가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 신동이나 천재가 된 것도 아니고 왜그랬는지는 기억도 안나고 모르겠지만 아무튼 결론은 베토벤이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파스콸라티 하우스는 꼭 보고 싶었는데 서운했다.베토벤이 살았다던 파스콸라티 하우스
시립공원도 가보고 도나우 운하도 가보고 쇼넨펠스가세도 가보고 하루종일 구시가지 이곳저곳을 걸어다녔다. 문이 닫혀있거나 못가본데도 몇 군데 있었지만 그런데로 만족하면서 다시 빈서역으로 되돌아가 짐을 찾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꼭 내가 가려던 호스텔에 가리라 마음먹고 그 호스텔을 찾았지만 역시 또 실패. 한참동안을 빈서역 근처를 해매다가 결국 포기하고 늦은 저녁에 되서야 또다시 움밧 더 라운지에서 체크인을 했다. 이 날 내가 있던 방에는 대만 학생 하나, 일본 학생 하나, 나까지 어떻게 하다보니 동양인들만 모이게 되었는데 다들 잠들고 피곤하고 해서 별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 밤늦게 자고 있는데 한 여학생이 내 침대 이층으로 올라가서 잠을 잔거 같은데 어느나라 사람인지 서양인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가운데 살색 건물이 이틀동안 묵었던 호스텔 움밧 더 라운지.
호스텔에선 꽤 유명하고 규모있는 체인점이다. 이곳 비엔나에만 체인점이 한 곳 더 있고 독일 뮌헨에도 한 곳 있다고 들었다. 규모도 크고 시설도 좋지만 다른 작은 호스텔들처럼 아기자기한 맛과 스텝들의 친절함이 조금은 부족한 호스텔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호스텔에서 외국인들과 친해져서 여행 후에도 이메일로 안부를 주고받는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난 그러지 못했다. 친근했던 나홀로집에 도둑닮은 프랑스인과 좀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야하는건데. |
|
|
| 이 글의 관련글(트랙백) 주소 :: http://adari.tistory.com/trackback/104 |
|
|
첫째 날
배낭여행 |
2008/02/21 04:51
|
|
|
이런, 입국한지 몇 날이 지났는데도 잠이 안온다. 시차적응이란 것이, 해외를 왔다갔다거리는 축구 선수들에게나 해당되는 건줄만 알았지 내가 몸소 겪을 줄은 정말 몰랐다. 집에서 밤낮없이 헤롱거리며 잠잤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몇 날이 흘렀다. 시간이라는 것만큼 겪고나면 빠르게 느껴지는 것이 없다.
2월 3일 일요일.
패키지 여행으로 해외에 나가보긴 했지만 아무런 도움없이 혼자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출국날짜가 다가오자 설렘만큼이나 긴장과 스트레스도 상당했다. 짐을 싸는 동안 챙겨도 챙겨도 뭔가 빠져있는 것 같은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것이 싫어서 최대한 백팩에 모든 것을 담으려 했다. 옷가지를 최대한으로 줄이고 남들이 꼭 챙긴다는 라면이나 김도 배낭에 넣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여행은 집을 나서고부터 고난이었다. 집 앞 공항버스 정류장에서 공항버스를 기다리다가 안오길래 놓쳤는줄 알고 다른 길을 해매고 있는 사이 내가 기다리던 공항버스가 유유히 내 옆을 지나갔다. 다른 버스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월미도 놀러갔을 때 탔던 공항버스가 노들길과 이어지는 길을 지난다는 것이 생각나서 겨우겨우 거기서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당장 오스트리아에서 떨어져서 쓸 유로를 환전했다. 그리고 폰 로밍을 하지 않는 대신에 국제전화카드를 샀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로밍 안하기를 잘한 것 같다. 국제전화가 생각만큼 어마어마하게 비싸지는 않아서 내가 샀던 2만원짜리 카드로도 충분했다.
1시 25분 비엔나행 대한항공. 이렇게 기내에 승객이 없는 비행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대한항공이 비엔나와의 직항로를 만든지 얼마 안되서 그런지 기내에 자리가 텅텅 비어 있었다. 내 옆에 어떤 사람이 앉을까 궁금했었는데 나혼자 두 자리를 여유있게 사용할 수 있었다. 늘 느꼈던 것이지만 기내식은 정말 맛있었다. 꼬박 12시간을 비행기 안에 있어야하는 장시간 비행. 낮시간이라 그런지 잠도 제대로 안왔다. 아시아나 비행기들은 좌석에 미니 액정이 있어서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대한항공은 그런 것도 아직 구비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큰 스크린으로 영화를 틀어줬는데 내 자리에서는 멀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정말 지겹고 지루한 시간이었다. 여행하면서 기차타거나 대기 시간에 보려고 가져온 피엠피에 담아온 동영상들 대부분을 이때 다 봐버렸다. 무릎팍도 여러 편 담았는데 생각보다 재미 없어서 실망이었다. 억겁의 시간이 흐른 후, 오스트리아 빈 슈펜하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기대보다 싱거웠던 입국심사를 거쳐서 공항 도착 층으로 나왔다. 여기저기 이름을 쓴 종이를 가지고 도착 승객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자니 홀로 여기에 왔다는 사실이 조금 쓸쓸했다. 한편으로는 조금 긴장하기도 했다. 난생 처음 나 혼자 외국에 떨어진 것이었다. 빈에 알아두었던 호스텔로 가기 위해 공항버스를 탔다. 다행이 내가 나온 출구 바로 앞에 빈 서역으로 가는 버스가 대기 중이었다. 'Go Westbanhof?' 'Yes' 이번 여행에서 처음 현지인과 나눈 대화. 버스에 오르니 거의 대부분의 승객들이 서양인들이었다. 내가 외국에 나와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다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그렇지, 여기서는 동양인이 소수지. 나는 어떤 여자 옆에 앉았다. 그 여자는 버스를 타는 거의 내내 핸드폰으로 통화를 했다. 독일어라 무슨 소린지 통 몰랐다. 빈 서역에 도착했다. 원래 내가 가려고 알아봐뒀던 호스텔은 Huttledorf Hostel. 미리 알아둔 안내글을 보면서 찾아가려고 했는데 이건 뭐 도통 모르겠다. 안내글과 상황이 전혀 맞질 않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Huttledorf 지하철역이 따로 있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빈 서역 근처 길가를 헤매면서 호스텔을 찾고 있던 도중 우연히 움밧 더 라운지 호스텔을 봤다. 여기도 알아봤던 호스텔 중 하나였지만 더 가고 싶었던 곳이 있었기에 지나치고 호스텔을 찾다가 결국 포기, 움밧 더 라운지에서 체크인을 했다. 처음해보는 체크인. 역시나 어려움이 있었다. 나름 영어를 듣는 것은 자신있었는데 이 여자 직원 어찌나 영어를 빨리 말하던지 뜻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어쨌거나 체크인. 움밧은 4인실 도미토리룸이었다. 배정되는 방에 들어가자 한 남자가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이름은 기억이 안나고 프랑스인이었는데 체코 프라하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생긴건 꼭 영화 나홀로집에에 나오는 키 큰 도둑처럼 생겼다. 친근했다. 그도 그렇게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프랑스어 억양으로 영어를 하는데 정말 최악이었다. 발음이 너무 드세서 알아듣는데 애먹었다. 그래도 신기하게 여러 대화를 나눴다. 서로 어디에 살고 어디를 여행하고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에서부터 여기는 사람들이 독어를 써서 불어와 영어를 쓸 줄 아는 자신에게는 너무 불편하다는 룸메의 불평, 창문을 열더니 여기 건물들은 상당히 모던하다고 놀라는 룸메에게 서울은 더 모던하다는 나의 고향 자랑까지. 물론 앞뒤도 안맞고 어법도 틀린 영어였겠지만 막상 부딪혀보니 이런저런 별 이야기를 다 나눌 수 있었다. 이층 침대였는데 나는 이층에서 고개만 쏙 내밀고 아래를 쳐다보고 프랑스인 룸메는 아래층에 앉아서 위를 쳐다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밤이 되자 다른 룸메이트들이 들어왔는데 스위스 여대생 두명이었다. 나도 그들도 모두 잠을 청하고 있는 터라 스위스인 룸메들과는 별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사실, 스위스 여자 둘은 너무도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기에 대화를 걸기 무섭기도 했다. 여행에서의 첫 잠자리.내가 처음 잤던 이층 침대. 호스텔 움밧 더 운지(Wombat The Launge) |
|
|
| 이 글의 관련글(트랙백) 주소 :: http://adari.tistory.com/trackback/103 |
|
|
루트
혼자생각 |
2008/02/01 19:03
|
|
|

2월 3일 13:25 KAL 인천국제공항 출발.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국내항공사 외에 생각보다 값싼 항공편들이 많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경유 공항에서 대기 시간이 하루에 임박하는 장시간 항공편들이었다. 공항 경유가 상당히 체력적으로 부담되기에 한 곳만을 경유하는 항공편을 찾기로 했지만, 한 곳만 경유하는 항공편이나 국내 대한항공의 직항이나 값은 거의 비슷해서 결국 KAL기 왕복 이용으로 선택.
2월 3일 16:55(현지시각) KAL 빈 슈페하트 국제공항 도착. 빈서역(Wien westbanhof) Hutteldorf Hostel 이용. 처음으로 묵게 될 빈에서 어떤 호스텔을 이용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빈에는 움밧더라운지나 Ruthensteiner Hostel 등 괜찮은 호스텔도 많았지만 결국 값도 제일 싸고 아침도 든든히 먹을 수 있는 Hutteldorf로 결정했다. 그리고 세군데 모두 서역 근처로 비슷한 곳에 몰려있기 때문에 만약 어느 한 곳에 방이 없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도 편할 듯 하다.
2월 4일 빈 시가지. 다음날 이용할 짤츠부르크행 기차표 예약.(호스텔과 가까운 빈서역에서 예약 가능) 마지막 일정에 빈으로 다시 돌아올 예정이므로 여유를 두고 구시가지를 구경할 예정이다. 음악의 도시이니만큼 빈에서 직접 듣는 연주회도 괜찮을 듯 한데 연주회 티켓 가격이 어느정도인지는 가늠할 수 없다. Museum Quartier에서 오스트리아 신인작가들의 그림 작품도 감상해도 괜찮을듯 하다. 국내 여행객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는 중앙묘지를 가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등의 묘지가 모두 모여있는 곳이란다. 몇 발자국 앞의 땅 속에 이들이 묻혀있다는 기분을 느끼는 것도 묘한 경험이 될 듯.
2월 5일 빈에서 짤츠부르크로 이동.(빈서역에서 기차로 잘츠부르크 중앙역으로 이동) 2월 6일까지 짤츠부르크 구시가지 여행. 숙소는 Pension Elizabeth아니면 YOHO Hostel 이용. 모두 중앙역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한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괜찮을듯 하다. 아 그리고 2월 5일 중앙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2월 7일 아침 이용할 린츠행 기차표 예약.
2월 7일 짤츠부르크에서 린츠(Linz)로 이동.(짤츠부르크 중앙역에서 기차로 이동) 린츠 도착 후 곧바로 체스키 크룸로프(Chesky Crumlov)로 이동.(LOBO Shuttle) 린츠에서 크룸로프로 이동하는 로보셔틀 봉고 예약 문의 메일보냈는데 인원이 나 혼자라고 힘들듯 하다고 답장이 왔다.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로보셔틀이 제일 괜찮은 이동 수단인 듯 한데 다른 봉고나 어쩔 수 없으면 린츠에서 체스키 부데요비치로 이동해서 그 곳에서 버스로 갈아타야 할 듯 싶다. 체스키 크룸로프 도착 후 중앙광장에 위치한 Traveler's Hostel 이용. 아마 이 날은 거의 하루종일 이동하는데 시간을 소비할 듯 싶다.
2월 8일 체스키 크룸로프 구시가지 여행 후 프라하로 이동. 오후 5시~6시. 프라하로 가는 버스 이용. 프라하 B호선 종점 Cerny Most 터미널 도착. 여행하는 곳 중 가장 작은 도시인 체스키 크룸로프. 워낙 시 자체의 규모가 작고 여러가지 볼 것들이 구시가지로 밀집되어 있어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주의할 것은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따로 코루나로 환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체스키 크룸로프성 근처에 있는 환전센터에서 환전. 저녁 프라하에 도착 후 A Plus Hostel 이용.(Florenc 버스터미널 Na Florenci street) 마찬가지로 프라하에는 유명하고 괜찮은 호스텔이 많았다. 미스소피와 A Plus Hostel 둘 중 한 곳 결정하느라 고민에 고민 거듭한 끝에 역시나 아침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는 A Plus Hostel로 결정.
2월 9일 ~ 2월 11일 프라하(Prague) 시가지. 프라하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여행지인만큼 둘러볼데가 상당히 많다. 다행이 시가지가 크지 않아서 도보로도 충분히 이곳저곳 이동이 가능하다. 3일 정도 동안 구석구석 갔다와볼 에정. 프라하 시계탑 광장에 있는 블루프라하에서 기념품 엽서 사는 것 잊지 않도록 해야겠다. 홀레쇼비체 기차역에서 브르노행 기차표 예약도 잊지 말 것.
2월 12일 프라하에서 브르노(Brno)로 이동.(홀레쇼비체역에서 기차로 이동) 브르노 반나절 둘러본 후 부다페스트로 이동.(그랜드호텔 맞은편 Student Agency 이용) 브르노에서 부다페스트까지 약 4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하니 늦은 밤이 되서야 부다페스트 버스 터미널에 도착할 듯 하다. 근처에 바로 지하철역이 있으니 지하철을 타고 망치네 민박으로 이동할 예정. 원래 한인민박은 이용하지 않을 예정이었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경험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어서 결정했다. 더군다나 부다페스트 세체니다리에 가까워서 야경을 보기에도 적합한 숙소같았다.
2월 13일 ~ 2월 15일 오후까지 부다페스트에 머물다가 빈으로 이동.(중앙역에서 기차이용) 부다페스트는 영화 글루미 선데이에서도 나왔듯이 우울의 도시. 글루미 선데이의 레스토랑 모델이었던 Gundel에서 한번 식사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헝가리 물가가 좀 낮아서 그렇게 많이 비싸진 않지만 걱정되는 것은 복장이다. 복장을 빌려준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일단 가서 알아봐야 겠다. 빈에 다시 돌아온 후 숙소는 그대로 Huttedorf에서 묶거나 아니면 새롭게 움밧더라운지를 가던지 둘 중 한 곳으로 갈 예정이다.
2월 16일 빈 시가지(시간있으면 빈숲까지) 가장 가볼 곳은 토요일마다 열리는 빈 벼룩시장.
2월 17일 빈 시가지 둘러보고 오후 늦게 빈 슈펜하트 공항에서 인천으로 출국. 마지막 날이니만큼 가장 기대되는 일정이 있다. 일부로 출국날짜를 일요일에 잡은 것도 그 유명한 빈소년합창단의 합창을 현장에서 직접 라이브로 듣기 위해서다. 구왕궁예배당에서 매주 일요일 9시 미사가 시작되는데 그 때 딱 한 번 빈소년합창단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그 후 못가본 빈 시가지 내의 명소를 천천히 둘러본 후 슈펜하트 공항으로.
2월 18일 12:50(한국시간) 인천국제공항 도착.
루트 짜기.. 처음가보는 배낭여행, 해외에 나갈 기회는 몇 번 있었지만 혼자 일정을 다짜고 이동편까지 정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