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는 방법 중 하나가 아이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다. 시선과 손가락으로 (그리고 약간의 호들갑과 함께) 주변에 다른 대상을 가리키며 그것으로 아이의 관심을 돌려놓기만 하면 아이는 본인이 왜 울고 있었는지도 잊은 채 새로운 대상에 관심을 쏟으며 울음을 그치게 된다. 이런 케케묵은 전략을 제일 잘 써왔던 건 정치인들이었다. 외부의 적을 설정하고 내부의 이목을 외부로 돌리면 집권층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불만을 쉽게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나쁜’ 정치인들에게 외부의 적이란 더할 나위 없는 친구였다. 그래서 나쁜 정치인들은 평화를 싫어한다.

소득주도 성장정책이라는 기조가 등장하기 시작한 건 불과 1년 전의 일이다. 소득주도 성장은 단기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통화정책이 아니다. 소득주도 성장이 목표로 하는 건 거시적인 선순환 구조이다. 가계의 소득향상에 따른 내수 활성화로 성장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내겠다는 취지다. 본래 어떤 경제정책이든 단기적인 부작용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다만 그 부작용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큼의 장기적인 기대효과가 있기 때문에 밀어붙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1년 사이의 즉각적인 경제지표를 두고 그것이 마치 (아직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은) 정책의 실패를 의미하는 시그널인냥 얘기하는 건 성급한 태도 같다.

내수 침체의 원인은 일자리 부족이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가처분소득의 감소에 있다. 선순환 고리를 만든다는 게 결국 순환 구조 중 어느 지점을 먼저 건드리느냐에 대한 문제인데, 사실 정부가 민간 투자를 아무리 장려해도 내수 경기가 나아지지 않는 한 기업은 절대 먼저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기업의 투자가 우선되지 않는다면 그 다음으로 할 수 있는 건 내수를 살리는 방법밖에는 없는데, 따라서 최저임금을 인상해서라도 가처분소득을 늘리려는 것이 선순환 고리를 만드는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공장의 해외 이전을 염려하기도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되물어보고도 싶다. 우리가 언제까지 동남아시아나 제3세계 국가들과 임금경쟁력을 두고 싸워야 하는지. 언제까지 그 임금경쟁력에 목매어 자국의 노동자들을 희생시켜야 하는지. 경제가 성장할수록 임금경쟁력이 낮아지는 건 어느 정도의 소득수준을 가진 나라라면 절대 피해갈 수 없었던 수순이었다. 그에 따라 정부와 민간은 여러 노력들을 통해 돌파구를 찾았다. R&D 투자로 고부가가치 산업을 키우기도 했고 노동생산성 향상에 힘을 기울이기도 했다. 최고의 경제대국 미국을 보면 대통령이 협박을 마다하지 않고 기업들을 다그쳐 자국에 공장을 유치하기도 했다. 꼭 임금경쟁력을 갖추고 있어야만 일자리를 보호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니, 임금경쟁력으로 일자리를 지킬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나버렸다고 해야 더 맞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인맥 축구’라는 워딩으로 조롱을 즐기는 이들이 있지만, 축구는 원래 인맥으로 하는 거다. 감독의 스타일마다 잘 맞는 유형의 선수는 따로 있다. 본인의 스타일에 맞는 선수를 고르는 건 전적으로 감독의 재량이다. 선수 선발을 두고 감독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다수가 인정하지 않는 선수를 선발한다고 해서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 감독의 선수 선발 권한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과거 히딩크가 김남일이나 이을용 같은 무명의 선수를 발탁하는 일도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결과로 평가하면 된다. 다만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최대한 자유롭게 보장해주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 할지라도 어떤 감독 밑에서는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감독과 선수의 궁합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독이 본인 입맛에 맞는 특정 선수만 기용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는 다른 팀에 있는 선수를 본인의 팀으로 데려오기도 한다. 사리가 조르지뉴를, 무리뉴가 마티치를 각각 데려왔던 것처럼.

사실 축구에서만 이런 경향이 있는 건 아니다. 대부분이 마찬가지다. 누구든지 본인과 잘 맞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하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리인 것 같다. 만약 어떤 상사가 자기 밑에 둘 부하직원을 뽑는다고 해보자. 물론 어떤 실측화된 데이터(실적, 평가성적, 경력 등)를 기준으로 선별할 수도 있지만, 이런 데이터들이 항상 최선의 결과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성향이나 취향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성격이나 태도, 의사소통 방식 등이 잘 맞지 않으면 아무리 실력이 좋은 상사와 부하직원이더라도 삐거덕거리는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본인이 알고 있는 직원 중에서도 가장 본인과 잘 맞았던 직원을 뽑아오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안전하고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인맥이라고 하면 눈에 쌍심지를 켜다가도 한편으로는 인맥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있는 사회생활에서 기회라는 건 대부분 사람이 사람을 끌어주면서 찾아오는 법이기 때문에 인맥이란 것의 중요성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그것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인맥이란 건 객관적으로 실측할 수 없는 경험과 감각의 영역이라는 게 문제다. 애초에 이 주관적인 영역은 ‘관리’와는 거리가 멀다. 관리라는 건 특정한 의도에 따라 결과를 통제하는 것이다. 실적이나 성적은 투자를 할수록 그 성과를 기대할 수 있고 심지어는 외모 또한 화장을 하고 운동을 하고 말끔한 옷을 사서 입으면 나름대로 잘 ‘관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인맥은 다르다. SNS로 댓글을 주고받고 이따금 안부 인사를 나눈다고 해서 인맥을 잘 관리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알고 지낸 사이라고 해서 중요한 순간 나를 끌어주고 나를 추천해주고 내 상품을 사주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평소의 모습이다. 평소의 내가 보이는 성품, 태도, 진정성 같은 것들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주변은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다(‘나’ 또한 항상 주변을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순간순간의 지각적인 경험이 축적되어 ‘나’에 대한 주변의 판단을 이루고 그것을 토대로 인맥이 구축된다.

물론 인맥이라는 말이 그렇게 순진한 의미로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잘 알고 있다. 실제로 ‘낙하산 인사’처럼 불합리적인 성격도 내포하고 있는 게 이 ‘인맥’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맥이란 의미 자체를 사회적인 병폐 정도로 단순화시키는 건 큰 오류다. 인맥이란 건 그렇게 쉽게 무시할 수도 없고 무시되어서도 안 된다. ‘인맥 축구’라는 워딩이 처음 등장한 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였다. 당시 올림픽 축구대표팀을 이끌던 홍명보 감독은 당시 유럽에서 뛰었으나 소속팀에서 큰 활약이 없던 박주영을 와일드카드로 발탁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홍명보 감독이 박주영을 선발한 것이 아니냐며 ‘인맥 축구’라는 워딩을 만들어냈고 조롱했다. 하지만 박주영은 홍명보 감독이 기대하던 바로 그 포지션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고 대표팀은 올림픽 동메달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남겼다. 그로부터 6년 후,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의 김학범 감독은 성남 감독 시절 본인이 데리고 있었던 황의조를 발탁했고, 일각에서는 또 ‘인맥 축구’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리고 조롱의 대상이 된 황의조는 현재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후보였던 우즈벡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포함 5경기에서 8골을 넣고 있다.